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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23. 2023

모두 함께일 때 더 좋아요

  친교와 화합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2002년 이후 2018년까지는 내가 수놓아 만든 병풍을 이웃끼리 1년 동안 작은 계를 모아 구입한 강화産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홍동백서, 조율이시 격식을 갖춘 제사상을 차려왔다. 시동생네 가족과 우리 가족들이 함께 모여 순서에 맞춰 절을 하고 술잔을 올렸다. 처음 몇 년간은 시어머님도 상경하셔서 며칠씩 묵어 가셨다.

 2년 간의 귀촌 생활과 코로나 확산, 남편의 발병으로 제사가 많이 간소화되었다. 경제 사정이 힘들어진 수도원에 조금 넉넉한 미사 예물을 봉헌하고 본당의 합동위령미사에 혼자 참석하는 것으로 대체해 왔다.

 이제 코로나 규제도 풀리고 투병도 가닥을 잡았으니 나름 제사의 정신을 이어갈 새로운 틀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유튜브의 위대한 이슈에서 마음에 와닿는 가르침을 만났다.

ㅡ 현대인들은 이제 마음을 믿지 않는다. 죽은 조상들의 마음도 안 믿는다. 사실 죽은 조상들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다. 조상의 마음은 후손에게 와 있다. 그분은 돌아가셨어도 우리 마음에 살아 있다. 어떤 조상의 후손인가에 따라 어떤 마음을 쓰느냐가 다르다. 자기 뿌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뿌리가 튼튼할수록 나무가 잘 자란다. 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 조상이 어떤 분이고 어떤 아픔으로 살았고 어떤 자랑스러운 일을 했는지 아는 일이다. 그분들의 수치와 실수도 우리의 마음이고 그분들의 자랑도 우리의 마음이다. 이걸 인정할수록 열등감이 줄어들고 자랑스럽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선다.

 돌아가신 조상이 나를 지금 여기에 있게 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걸 등한시하는 것이 아프고 안타깝다.

 제사의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ㅡ


 기본을 정했다.

 첫째,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둘째, 진심을 담는다.


 딸네 두 가족, 아들 가족 모두가 참석 가능한 날짜가 까치설날인 섣달 그믐날로 정해졌다. 설날 당일에는 딸들은 시댁에, 무남독녀인 며느리는 친정에 갈 것이다.


 식사는 점심 한 끼, 외식으로 정했다. 연휴 첫날이니 편하게 늦잠을 자고 천천히 준비해서 1시 30분에 다들 식당으로 바로 오기로 했다 .

 돌 지난 손녀까지 열세 명의 식구가 우리 집 가까운 식당에 모였다. 호칭도 다양하다. 고모, 고모부, 이모, 이모부, 외삼촌, 외숙모ᆢ.


 멕시코 요리로 넉넉하게 메뉴를 골라 식사를 끝내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즐기다 집으로 향했다. 준비해 두었던 과일상을 앞에 두고 손주들은 윷놀이 판을 만드느라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었다.


 "얘들아, 먼저 우리 조상님들께 기도부터 바치는 게 어때?"

 "네에, 좋아요."


 가톨릭 전례에는 장례나 기일에 바치는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가 있다. 이번에 새로 마련해 놓은 기도책을 꺼내왔다. 본당 성물방에 놓여 있는 아홉 권을 몽땅 다 사다 둔 것이다.

 반반으로 인원을 갈라 내가 속한 쪽이 계송 선창을 하고 또 남은 반이 응송을 했다. 마무리로 중ㆍ고생인 두 외손녀가 돌아가신 조상을 위한 기도문을 읽었다.

 세배시간이다. 손주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넙죽 절을 하고 아이들도 세배를 했다. 덕담과 용돈이 오고 갔다.


 어느덧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이 되었다. 윷놀이는 다음을 기약했다. 이틀에 걸쳐 만들어 놓은 갈비찜과 떡국떡 2kg, 유정란 한 팩씩을 챙겨서 들려 보내었다.

 출발 준비를 하던 둘째 사위가 말했다.

 "어머니, 이 기도책 좀 빌려가도 될까요?"

 내일 본가 제사 때에 쓰고 싶단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 가정으로 돌아갔다. 남은 연휴 사흘은 또 각자 사정에 맞게 잘 쓸 것이다.


 이튿날 설날 아침, 11시 주일미사 겸 합동위령미사에 참석했다.

 ㅡ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분들과 함께 이 한 해의 출발을 봉헌하는 날입니다.

 소중한 가족, 이웃, 감당하기 힘든 사람과 사건들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시다.ㅡ


 오후에는 시동생과 동서가 다녀갔다. 동서가 문화센터에서 빚었다는 예쁜 화분과 컵세트, 견과류를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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