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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28. 2023

영원한 5월의 소년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인디아나 존스 2><구니스>에 나왔던 아역 배우가 이후 영화계를 떠나 무술 지도사로 있다가 최근 다시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2023년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상 소감이 감동적이어서 공유해 보아요.


 위 글과 함께 가족 카톡방에 동영상 세 편이 올랐다.


 ㅡ와우,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첫 번째 기회를 주신 분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뵙게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 출연하여 상을 수상하게 된 키 호이콴의 수상 소감 중 일부이다.

 삼천 명의 난민들이 탄 배를 타고 부모님과 함께 베트남을 빠져나온 키 호이콴. 그는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2>의 아역 배우로 발탁되었다.   

   그의 할리우드 대작 출연은 기적이었다.


 ㅡ내가 영화에 출연한 건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었고 용기를 주었다. 그때 번 돈으로 가족을 위해 집을 살 수 있었고 부모님이 베트남을 떠나면서 떠안은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그 후 다시는 그런 전성기를 누릴 수 없었기에 두려움과 공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어지는 영상은 더욱 감동적이다.

 ㅡ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은 내게 첫 배역을 주신 분이다. 배우 생활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그는 나를 잊지 않았다. 그분은 나에게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왔다. 38년 간.

 감독님은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항상 거기에 계셨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약자에게로 향하는 귀한 사랑을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거장의 진정한 멋이, 깊은 인격이 향기로웠다. 이 향기가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시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나아가 회복 탄력성까지 높여주는, 힘센 선한 영향력이라는 감동이 왔다.


 피천득 님이 생각났다.

 지난겨울 읽었던 선생님의 수필집 <인연>.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사랑하여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은 유명 인사들도 많다고 한다. 책과 음악과 자연을,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후학들에게 유산으로 남기셨다.


 진정한 멋은 시적 윤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멋 속에는 스포츠맨십 또는 페어플레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저속한 교태를 연장시키느라 춘향을 옥에서 하룻밤 더 재운 이몽룡은 멋없는 사나이였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

 ㅡ멋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얼었던 혈관이 풀리고 흐린 피가 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젊음'이 초록빛 '슈트 케이스'를 마차에 싣고 넓어 보이는 길로 다시 올 것만 같다.

 ㅡ早春

 이른 아침 정동 거리에는 뺨이 붉은 어린아이들과 하얀 칼라를 한 여학생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사람이 귀한 것을 배우러 간다.

 슬픈 일을 많이 보고 큰 고생하여도 나는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센티멘털하지 않다.

 거울을 들여다볼 때나 사람을 바라볼 때 나 늘 웃는 낯을 하겠다는 나의 결심은 아마 가능할 것이다.

 ㅡ新春

 주제꼴이 초췌하여 가끔 푸대접을 받는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ㅡ낙서

여린 마음, 웃는 얼굴들. 참고 견디고 작은 안정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들 산다. 다들 가엾다. 정상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들은 다들 착하다. 남을 동정할 줄 알고 남이 잘 되기를 바라고 고생을 하다가 잘 사는 것을 보면 기쁘다.

 ㅡ 토요일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읽었던 몇 편의 수필들을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 긴 세월 저 뒤로 까마득히 밀려나 있는 시간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바로 어제런 듯 장면 장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여리고 풋풋했던 감성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선생님은 따뜻한 내용과 서정적인 묘사로 무심코 지나가 버릴 법한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훈훈한 긍정의 샘을 길어 올리신다.

 

 불평, 불만, 분노가 끼어들 틈이 없다. 서정성 짙은 문학적 향기를 담은 문장들은 읽는 이를 설레게 한다. 바닥에 깔려 있는 겸손함은 읽는 이를 훈훈하게 데워 준다.

 '영원한 5월의 소년'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어른을 남기신 책으로 다시 만나니 그 인연으로 이 시간이, 이 삶이 덩달아 아름답게 채색된다.

 선생님은 내가 필요할 때마다 산호와 진주가 되셔서 이 책 속에 살아계실 것이다.


 *깊고 깊은 바닷속에 너희 아빠 누워 있네. 그의 뼈는 산호 되고 눈은 진주 되었네.

 ㅡ셰익스피어 <태풍> 1막 2장 <에어리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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