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Mar 06. 2023

내 생애 마지막 도전

 남도 삼백리 千年佛心 길

 봄맛 탐방 이틀째입니다. 지난밤 깊고 긴 단잠을 푹 잘 잔 숙소는 순천역 길 건너편에 자리한 '호텔 아이엠'입니다. 2인 1실에 친구와 배정받은 방은 아주 깔끔했습니다. 1인용 침대 두 개가 창문 쪽과 입구 쪽 벽에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하얀 시트의 이불과 베개는 정갈했고 포근했습니다. 소개 팸플릿에는 #청결 #친절 #안전, 기본에 충실한 호텔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5층짜리 아담한 신축건물입니다. 1층 기념품 숍, 3층 세미나 & 연회장, 5층 문화 공연 개최 가능한 옥상 정원이 있습니다. Air B&B 수준의 아침 식사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든든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호텔 앞에서 9시까지 모입니다. 카드 열쇠를 반납하러 프런트 데스크가 있는 2층으로 갔습니다. 입구부터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습니다. 백 권은 될 듯합니다. 개인 소유물이라 읽을 수는 있지만 빌려줄 수는 없다는 안내글이 적혀 있습니다. 주인장이 책과 친한 사람인가 봅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몇몇 일행들이 커피와 담소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중심인물은 호텔 사장님, 주인장이었습니다. 이곳은 이름만큼 많은 점이 독특합니다. 그중에서도 사장님이 가장 독특했습니다. 깔끔하게 단장한 멋스러운 차림으로 고객들의 이런저런 질문에 시종 웃음을 잃지 않고 밝고 진지하게 대답해 주고 있었습니다. 나랑 친구도 그 분위기에 합류했습니다. 대화를 즐기던 사장님이 자진해서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컴퓨터로 선곡을 하고 통기타를 들었습니다.


 김광석의 노래 두 곡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별하면서 살고 있는 거야 ~~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 보는 거야 ~~

 앙코르 요청에는 윤수현의 '여수 앞바다'를 불러주었습니다.

 돌아온다던 그때 그 약속, 파도 따라 들려오는데 ~~

 노래를 끝낸 사장님이 겸연쩍게 말합니다.

"아침부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바로 응대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투미(재미+의미) 여행 프로그램 운영 팸플릿도 주었습니다. 지역 혁신을 위해 지역 밀접 리더들을 위한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도 적혀 있었습니다. 사업 번창하기를 바라며 언제라도 장기투숙자로 다시 달려오고 싶다는 소망도 잠깐 품어 보았습니다. 다가오는 4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개최된다는 2023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가 기대됩니다. 한마디 감사 인사도 남겼습니다.

 "아침부터 우리 여행을 고품격으로 만들어 주시네요."


 9시 30분, 순천 드라마 촬영장에 도착했습니다. 60년대, 70년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이 정겨웠습니다. 높은 언덕 위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 푸세식 화장실의 똥을 퍼 나르는 똥장군, '고교얄개' '영자의 전성시대' 상영 간판을 달고 있는 극장, 재래식 부엌 부뚜막 한 귀퉁이 좁은 선반 위에 차곡차곡 쟁여져 있는 두꺼운 사기그릇들. 모두 눈에 익어 아련한 것들이었습니다.


 극장 옆에는 사이키 조명이 번쩍거리는 고고클럽도 있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스텝을 밟고 있는 듯 눈을 속이고 마음을 흔드는 현란한 사이키 조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게 만드는 사이키 조명의 위대함을 믿고 슬쩍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아 보았습니다. 트위스트도. 금세 숨이 찹니다.


 길 양쪽 전봇대에 묶여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그 위에 적힌 글자들도 따라 흔들리며 춤을 춥니다.

 '일시에 쥐약 놓아 남은 쥐 모두 잡자.'

 죽은 쥐꼬리를 잘라 학교 숙제로 제출해야 했던 60년대 국민학교 학생들을 요즘 아이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웃고 또 웃으며 여기저기 기웃거렸습니다.


 10시 30분, 선암사로 향했습니다.

 신선이 내린 바위, 仙巖寺. 웅장하면서도 포근하고 장엄습니다. 산이 많은 영남과 달리 넓은 평야가 많은 호남답게 깊은 산속에 자리한 절터도 넉넉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대웅전 뒤로도 계속 이어지는 너른 마당과 아담한 건물들이 마음속으로 눈 속으로 소옥쏙 스며들어 니다.


 여기서부터 오늘 여행 일정은 산행과 관광, 두 갈래로 나뉩니다. 조계산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에서 반대편 서쪽에 있는 송광사까지 걸어서 산을 넘는 산행과 버스로 이동하며 느긋하고 편안하게 두 절의 깊은 맛을 마음껏 즐기는 관광, 이 두 갈래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잠깐 갈등이 일었습니다.

 산행 쪽이 훨씬 유혹적입니다. 길 이름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남도 삼백리 천년 불심길.


 낯선 일행과 보조를 맞추며 끝까지 잘 갈 수 있을까? 네 시간 이상 걸린다는 너덜길 12Km, 깔딱길도 있다는데ᆢ.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길치인 데다 발바닥도 조금 신통치 않으니 말입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너덜길은 돌이 많은 비탈길이라는 뜻이었습니.

 그냥 한번 질러 보자는 심정으로 산행 쪽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확 밀려오는 부담감과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이게 내 생애 마지막 도전이 될지도 몰라.'


 조금은 긴장된 마음에 친구와 함께 둘러보는 선암사 넓은 경내의 깊은 정취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대강 둘러본 뒤 관광을 선택한 친구와 헤어져 산행 일행을 찾았습니다. 아뿔싸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운영자인 대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미 길을 출발했다는 말에 또 한 번 주저했지만 큰맘 먹고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못 먹어도 go~~!!.

 갈림길을 만나면 앞서 가고 있는 운영자와 통화를 해가며 길을 서둘렀습니다. 10여 분 후 저만치 산길 계단 위에서 몇몇 일행들이 대장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앞서가고 있는 선두주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일행 44명 중 산행을 선택한 이는 14명입니다. 저보다 연장자인 두 분, 부부가 계셨습니다. 틈만 나면 좁은 산길에서도 다정히 손을 잡고 다녔습니다. 오래전 저도 저런 풍경화 중의 한 등장인물이었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저보다 한 살 어린 60대 후반 한 분, 그 외에는 모두 팔팔한 4,50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으쌰으쌰,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열심히 걸었습니다. 나는 무릎 보호대도 스틱도 없이 트레킹화 차림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도구를 잘 쓰지 않긴 합니다.


 가파른 돌계단 길이 한 시간 이상 계속 이어졌습니다.

 精神一到 何事不成. 나는 할 수 있다. 집중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커다란 배낭을 지고 씩씩하게 뒤따라 오는 한참 어린 대장이 맑은 얼굴로 따뜻한 격려를 보냅니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 바로 발밑만 보라고 합니다. 지금 내딛고 있는 돌계단 하나하나에만 정신 쏟으며 그냥 발을 옮기라는 것이지요. 타성에 젖은 습관처럼 기계적인 동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이상은 힘들겠다고 느껴지는 순간, 기적처럼 돌계단 깔딱길이 끝났습니다. 해발 720m, 조계산 굴목재도 지났습니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유일하고도 유명하다는 산속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조계산 보리밥집. 커다란 온실 같은 비닐 가건물이 두 채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평상들이 여러 개 널찍하니 놓여 있습니다. 신을 벗고 평상에 올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팔천 원 짜리 비빔밥. 나물을 포함한 갖가지 반찬이 열 가지도 넘습니다.

 이 깊은 산속에서 귀한 진수성찬을 먹으니 오래 기억될 행복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모양은 찌그러지고 색은 벗겨진 낡은 알루미늄 양푼 술잔에 따른 시원한 막걸리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두 잔씩이나.


 송광사를 향해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씩 오르막도 만났지만 일도 아닙니다. 느긋한 산길을 편안히 걸었습니다. 천년 불심이 녹아들어 있는 정갈한 길. 계곡을 만나고 대나무 숲, 전나무 숲을 지나치며 아직은 새잎이 돋지 않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맑은 산세도 눈에 담았습니다.


 드디어 기와지붕 집들이 나타나고 그 아래로 송광사의 장엄한 전경이 펼쳐졌습니다. 절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을 향하는 순간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와 딱 만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또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버스로는 27km, 30분이 걸렸답니다. 절 아래 산나물 비빔밥도 별미였고요.


 왕복 30분쯤 걸리는 불일암을 다녀오는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佛日,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일체중생의 무명번뇌를 일깨워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법정스님께서 머무셨다고 알려진 불일암. 지금은 비어있는 듯 축담에 하얀 남자 고무신 한 켤레 놓여 있는 고즈넉한 암자에서 잠깐 아래를 내려다본 후 절 입구로 향했습니다. 약수도 마시며 송광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고려시대 16 국사를 비롯하여 훌륭한 스님들을 많이 배출한 僧寶宗刹 松廣寺. 높은 기개와 자부심이 오랜 전통으로 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4시 30분,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라 떠나온 서울을 향해 다시 출발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벼르고 벼른 생일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