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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r 11. 2023

디지털이 건네준 선물

"분명히 잘 쓰실 거예요."

 집에 들르면 매번 아들은 남편과 나의 핸드폰을 점검해 준다. 2년 전쯤 어느 날, 한동안 둘의 핸드폰을 만지던 아들이 핸드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분명히 잘 쓰실 거예요."


 유튜브 프리미엄을 깔았다고 한다. 화면을 끄고도 소리만을 들을 수 있으며 광고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이나 나나 핸드폰 기능의 10분의 1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변화와 도전에 소극적이다 보니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매달 사용료까지 통장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니 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이 저리 진심으로 마음 써 주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그 신세계에 제대로 빠져들었다. 눈 뜨는 순간부터 포켓에 넣고 다니며 화면을 끈 소리만으로 유튜브와 함께한다.


 주로 국내외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즐겨 듣는다. 잠자리에 들 때는 물론이고 이른 새벽 잠에서 깼을 때도 다시 들으며  잠을 청한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환경과 행동들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작가들의 뛰어난 창작 능력에 감탄하기도 한다. 

 심리, 건강, 철학 강의들도 유익하고 흥미롭다. 말없이 밥을 먹는 식사 시간에는 마음 편하게 통기타 가수들의 흘러간 잔잔한 노래들을 켜둔다. 남편도 당신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들을 꽤 즐긴다. 별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노인 둘만 있는 집에서 각자 마음 맞는 절친을 한 명씩 데리고 있는 셈이다. 일상의 반복되는 쳇바퀴를 성실하게 돌릴 수 있는 힘이 된다.


 요즘은 고전 인문학자 고미숙 선생의 강의가 아주 재밌다. 동의보감, 숫타니파타, 티베트 불교, 주역,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등ᆢ. 귀에 속속 와닿는다.

 재물과 공부는 같이 가지 않는다. 바깥 활동이 닫혀 있는 어두운 시간은 공부하기 좋은 시간이 다. 읽기와 쓰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라. 미래는 자동화와 무인화로 사람들이 노동에서 많이 해방된다. 우정과 지성으로 철학하는 백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분 강의의 핵심 주제들이다.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디지털의 도움으로 다행히 내 시간의 많은 부분이 읽기와 쓰기, 듣기로 채워지고 있다.

  유튜브 듣기, 브런치 읽기 쓰기, 카톡 소통하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간들이 내 삶에서 가장 알찼던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아들이 앱을 깔고 가입시켜 준 브런치에서는 멋진 작가님들을 많이 만난다. 어쩜 이리 좋은 글들을 썼을까? 감동이다. 오늘은 젊은 작가 두 분이 강하게 와닿았다. 한 분은 서른 살 정도, 또 한 분은 마흔 살가량 나보다 어린 작가분들이다. 반 이상 필사해 가며 여러 편의 글들을 정신없이 읽었다.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에 나를 대입시켜 돌아보기도 하며 많이 배웠다. 그들의 깊은 지혜와 뛰어난 표현력이 진한 감동을 불러온다.

 그 작가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경탄하며 젊은 그들의 꽃길을 기원해 주었다. 분명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이고 나는 옆에서 그 향기를 맡는 행운을 누릴 것이다.


 공적으로는 코로나로 사적으로는 남편의 투병으로 인해 어둡게 닫혀 있는 긴 시간, 이렇게 풍요로운 선물 속에 머물 수 있는 디지털 세계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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