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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r 15. 2023

"저, 그날 깜짝 놀랐어요."

  성서백주간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은 본당 성서백주간 봉사자 월례회합이 있는 날이다. 10시 평일미사 후 3층 교리실에서 열린다. 3년의 코로나와 그 여파로 본당의 많은 단체 활동들이 활력을 잃고 규모도 대폭 축소되었다. 성서백주간도 예외가 아니다. 30여 팀 활발하게 진행되었 동아리 모임들이 지금은 채 10팀도 되지 않는다.

 성서백주간은 3년, 121주 동안 매주 정해진 일정 분량의 성경을 읽고 모여서 묵상 나눔을 갖는 신구약성서통독 모임이다.

 봄, 가을 2회에 걸쳐 매년 새 그룹원들을 모집한다. 3년 통독과정을 거친 뒤 본부 연수를 수료한 봉사자 한 명과 팀을 이루어 3년 간의 긴 여정에 오른다.

 3년 동안의 성서 통독과 묵상이 끝나면 봄, 가을에 걸쳐 수료식을 가진다.

 올해 35기, 새 그룹원 모집이 끝났다. 우리 본당에 성서백주간 프로그램이 도입된 지 18년째가 되나 보다. 5개 팀이 모집되었다.


 지난 십여 년 함께해 온 성서백주간에서 맺은 뜻깊은 인연들이 참 많다.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신 본부 신부님 수녀님과 봉사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해 주신 본당 신부님 수녀님, 서로 아끼고 사랑해 온 봉사자들 그룹원들.


 코로나 규제가 조금 느슨해지기 시작한 작년 이맘때 나는 다시 성서 백주간에 발을 담갔다. 혼자서 성경을 읽는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표를 비롯해 총무, 서기, 회계를 맡은 임원진들이 새로운 얼굴들, 젊은 층으로 완전히 세대 교체된 것이 무척 반갑고 보기 좋았다.


 우리 팀은 작년, 2022년 4월 말, 두 명으로 시작하여 일곱 명이 된 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매주 토요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함께한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으로 잠깐씩 쉬고 지난주 토요일인 3월 11일은 어느덧 36회 차가 되었다.

 묵상범위는 이사야서 8장~12장.

 솔로몬 사후 남북으로 갈린 다윗왕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이 예견된  BC 740년 경.

 창조, 타락, 심판, 구원이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 속에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징계와 사랑이 선포된다.


 오늘의 묵상구절로 나는 이사야서 12장 1절~ 6절, 구원된 이들의 감사노래를 선택했다.

 ㅡ 주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진노하셨으나 분노를 거두시고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 신뢰하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에게 구원이 되어 주셨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ㅡ


 당신이 창조하시고 늘 함께하시니 두려워하지 않고 믿고 따르는 순종의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1년 가까이 통독과 묵상을 이어오며 그룹원들은 가랑비에 옷 듯 어느새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반가워하는 성서 가족이 되어간다. 자매님 한 분의 통통 튀는 재치로 반 이름은 만장일치, 아멘반으로 정했다.


 50대, 60대, 70대 7명 중 그룹원 6명이 매달 한 명씩 차례를 맡아 묵상 나눔을 진행한다.

 시작기도, 복습, 성서지도공부, 본문묵상 나눔, 예습, 생활묵상, 마침기도. 이 순서에 따라 약 두 시간 동안 그 달의 진행자가 잘 이끌어간다. 서로 주고받는 가벼운 질문에는 성심껏 서로 아는 만큼 참여한다. 숙제로 넘겨지기도 한다. 봉사자가 결석을 해도 아무 지장이 없다.


 봉사자인 나는 36회 동안 두 번을 결석했다. 지난 주말 순천 여행을 다녀온 날도 그중 하루다.

 마침 그날 봉사자 임원인 데레사 자매가 우리 모임방에 들렀다. 내가 부탁한 사순실천달력 프린트물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봉사자인 나는 보이지 않고 낯선 얼굴인 우리 반원들이 활짝 웃으며 반겼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반원들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끼리도 잘해요!"


  봉사자 회합 시간에 그녀가 말했다.

 "저, 그날 깜짝 놀랐어요."

 한바탕 웃은 후 다른 봉사자들의 발언이어졌다.

 "우리 팀은 제가 못 나오는 날은 모두 쉬자고 해요."

 "진행을 부탁하면 모두 설레설레 머리를 저어요."

 "자꾸 그런 것 시키면 안 나오겠대요."


 저녁 시간, 봉사자 한 명이 카톡을 보내왔다.

 ㅡ베로니카 봉사자님, *** 인사드립니다. 오래전 백주간 수료식 때 대표 봉사자이셨어요. 흰 테이블보, 와인, 장미꽃 한 송이까지 정성스러운 테이블 세팅에 감동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성당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참 정성스러운 분이시구나 했어요. 그 후로 봉사자님 반에서 백주간 다시 해 보고 싶었는데 지방으로 내려가신다시어 또 놓치고요. 봉사자가 되어 다시 뵙게 되네요. 그러다 보니 이제 그 반 나눔은 들어볼 기회가 없어 아쉬워요. 어제 회의 때 진행 방식 다 오픈해 주시어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아직 왕초보라 너무 부족하고 배워야 하는데 가뭄에 단비 같았습니다. 감사드리고요. 점심이나 티타임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봉사자로서 또 인생의 선배로서 귀한 말씀 나누고 싶어서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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