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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Mar 21. 2023

생일 이야기

  춘분, 식목일, 단오.

 2월 13일, 제일 맏이인 외손녀의 생일을 시작으로 가족들의 생일이 줄줄이 이어진다.

 음력으로 2월 4일인 올해의 내 생일날은 2월 23일이었다. 양력으로 3월 9일인 며늘아기의 생일과 내 생일은 때에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서가 뒤바뀌곤 한다. 먼저 다가온 생일에 맞추어 가족 모두 함께 축하 시간을 가진다. 이어 3월 21일은 큰애의 생일, 엿새 후인 3월 27일은 둘째네 큰 외손녀의 생일, 4월 5일은 둘째 생일, 음력 5월 6일인 6월 19일은 아들의 생일이다.


 뒤이어 여름철이 되면 남편과 큰사위, 둘째 손녀의 생일이 있고 가을의 끝자락에는 올해 두 돌이 되는 손녀와 둘째 사위의 생일,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차가운 대기를 떠돌고 한 해가 마무리되는 12월 21일은 둘째네 외손자의 생일이다.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날이 되면 누구랄 것 없이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이 성인 여덟 명이 모여 있는 가족 카톡방으로 축하 메시지를 올린다. 주로 딸들이 그 일을 한다. 카톡방이 바빠진다. 다 함께 축하 인사와 답글이 오고 간다. 개인들끼리 선물도 주고받는 모양이다. 나도 축하 송금을 한다. 형편이 되면 주말을 이용해 누군가의 집에서 다 같이 모이기도 한다. 부모인 우리 집에서 모일 때가 제일 많다.


 우리 세 아이들의 생일은 재밌다.

 춘분, 식목일, 단오 다음날이다.

 억지로 꿰맞춘 느낌이 없지 않지만 나 혼자 의미를 부여하며 뿌듯해한다. 겨우내 밤이 낮보다 길었던 움츠림의 시간을 지나 이제 빛의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 3월 21일, 식물이 제대로 뿌리를 내려 생명을 키워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시작되는 식목일 4월 5일, 온 땅에 생명의 기운인 陽의 기운이 가장 강하다는 단오. 過猶不及. 너무 지나치면 버거울 수 있으니 그날을 하루 살짝 비켜간 음력 5월 6일, 단오 다음날.

 세 아이의 생일은 피어오르는 생명에 대한 설레는 기대감과 충만함을 안겨준다.


 오늘은 3월 21일, 큰아이의 생일날이다. 1978년 3월 21일 화요일.

 45년 전인 그날 아침의 기억이 뚜렷하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어제까지 만삭으로 근무했던 학교에 상황을 알렸다. 주 6일 근무, 산후휴가 한 달이던 때였다. 출근 준비를 서두르던 남편과 함께 택시를 고 병원으로 향했다. 부산 침례병원. 24세, 28세 얼마나 어리고 풋풋했던 부부였을까?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오 무렵, 건강한 첫째는 이 세상에서의 첫 호흡을 시작했다. 산모인 나는 침착하고 인내심이 강하다고 다음 출산 때도 꼭 이 병원으로 와 달라는 이상한 칭찬을 들었다. 그날, 춘분날의 그 촉촉이 봄비 내리던 거리의 차분한 분위기가 아스라이 그리운 한 풍경이 되었다.


 아가는 잘 자랐고 방긋방긋 웃으며 착했다. 부족한 엄마 아빠의 삐그덕거리는 집안 분위기로 많이 힘든 과정에서도 자기 자리를 한 번도 어긋나지 않고 착실히 잘 지켰고 걸어야 할 길을 성실히 잘 걸어왔다. 세 아이 모두 다 그러했다.


 큰애는 어느덧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순하고 여린 장녀로서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많이 힘들었던 시간을 엄마인 나는 너무 오랫동안 알지 못했고 헤아리지 못했다. 내 감정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숨어 있는 고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온 세월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심각하게 그 문제와 맞닥뜨려야 하는 시간이 왔다. 많이 아팠지만 나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딸의 고통이 너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한 번 미안하다고 표현하고 나니 정말 그동안의 나의 무심함과 엄마로서의 부족했던 점을 제대로 깊이 들여다보고 사과할 수 있었다. 60이 넘어서야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 것이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기워 갚을 수 있을까? 내가 좀 더 성숙하여 그런 아픔을 주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쉽기 짝이 없다. 이것은 세 아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고마운 세 아이들과 배우자들 그리고 예쁜 자녀들. 모두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 은총 속에 머물 수 있기를 간구한다.

 오늘 이 하루가 가기 전에 첫째의 생일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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