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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04. 2023

이제 못 보는 거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요

 죽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두렵구나. ㅡ<레 미제라블> 장발장, 코제트


 투병 기간 동안 남편은 '환자를 위한 기도'에 많이 의존했다.

ㅡ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 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마르첼로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주님의 손으로 일으켜 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본인도 의료진도 주위 사람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던 듯 남편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기력은 쉬이 회복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아침 눈이 마주치는 첫 순간마다 기대와 달리 최악의 컨디션이라고 호소해 왔다. 말하는 그이도 듣는 나도 힘든 나날이었다. 2년 반의 투병에 지쳐가면서 지금 이 시간으로 흘러왔다. 식사가 힘들어졌다.


 人命在天. 한 달 후가 되었든 일 년 후가 되었든 이제 육신을 벗고 자유로운 영혼 여행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온 듯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의 시간이 한 발 한 발 짙게 그림자를 드리워왔다.

 조심스럽게 선종 기도로 바꾸었다.

ㅡ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마로첼로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善終ㅡ 임종 때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곁에 앉아 묵주 기도도 바치고 아버지 하느님이 남편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구원하신다는 내용의 긍정 확언 메시지들을 반복하여 들려주었다. 둘만 있으니 타인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시간 공간의 제약도 없이 가능할 때마다 거듭거듭 그 내용들을 들려주었다.

 정신이 말짱한 어느 한순간 남편이 입을 떼었다.

 "그만 좀 하지."

 어지간히도 성가스러웠던 모양이다. 무색해진 나는 민망하게 웃고 말았다.

 남편이 말을 이었다.

 "딱 당신 적성이야, 당신은 그러고 살 것 같아."

 "당신은 이런 병에 안 걸릴 거야."

 "참 천진해, 성경 공부를 해 가지고ᆢ."

 내가 성서백주간 대표봉사자 역을 맡아 있을 때 일이다. 노심초사 한 명이라도 더 회원을 늘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보고 스스로 자원해서 모임에 들어가 3년 간 빼먹지 않고 성서통독과 묵상을 해낸 남편이다.


 힘들게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의식이 혼미해져 갈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손 꼭 잡고 소리 내어 기도를 들려주는 일뿐이었다.

ㅡ마르첼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환한 빛을 따라 나에게로 오너라. 모든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내 곁에서 편히 쉬어라. 나는 전지전능한 하느님, 사랑의 아버지이다.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장하다, 고맙다.ㅡ

 피곤해지면 옆에 같이 누워 쉬기도 하면서 남편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맙다. 많이 섭섭했을 나의 잘못들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

 한 순간 또렷하지만 힘없는 목소리로 남편이 말했다.

 "일일이 대답 안 해도 되지?"

 역시 남편답다. 양심에 찔린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내가 너무 날로 먹으려는 심보였나?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내가 선종 기도를 바치고 있는 어느 한순간 남편이 눈을 반짝 뜨고 물었다.

 "그럼 이제 못 보는 거야?"

그리고는 덧붙였다.

 "이대로라도 좀 더 있고 싶은데ᆢ."

 "당신하고 같이 간다면 몰라도ᆢ."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나는 꽤나 당황했다. 남편의 입장에서 인간적인 본능으로 지니고 있는 욕망을 내가 너무 쉽게 간과한 것을 바로 들킨 기분이었다.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내 모습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어색한 미소로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다시 만나겠죠. 그런데 뭔가 좀 다른 차원으로 만나는 것 아닐까요? 일대일의 육체를 가진 대상으로서가 아니고 맑고 정화된 영혼으로 집착이나 미움 없이 따뜻하고 환한 4차원적 존재로 가볍게 만나지 않을까요?"

 어설프게 임기응변으로 떠올린 그 말이 왠지 나에게도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너무도 많이 날카롭게 대립했던 우리 둘.


 일대일의 고유한 인연으로 만나 진지하고 유일한 관계를 요구하고 상대와 내가 온전히 하나 되기를 원했던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 이 세상에서 원하고 갈구했던 사랑, 그로 인해 기뻐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면서 고마워하기도 원망하기도 했던 사랑. 이제 다시 우리들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없겠구나 하는 가슴 시린 날카로운 통증이 날아왔다.

 남아 있는 나에게도 떠나가는 그에게도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절절한 마음이었다.


"이제 못 보는 거야?"


 만약 남편이 다시 한번 나에게 그 말을 물어 온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요."

 그래도 슬픈 것은 마찬가지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 땅에서는 다시 못 볼 글라라 성녀를 멀리 떠나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끝내 담담하지만은 못했던 것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들 말하는 것일까? 세상의 삶이 조금은 힘들고 소외된다 할지라도 죽음보다는 낫다는 것일까?


 벗어 버리지 못하고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적인 약함, 이기심과 질투와 불안, 나태. 그로 인해 이루지 못하고 완성하지 못하고 꿈꾸기만 했던 理想 속의 사랑. 그 사랑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아픈 모습이다.

 어리석음, 妄. 여전히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선택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요.


 코로나가 계속되고 투병이 이어지면서 남편은 몇 년째 주일 미사 참례를 빼먹고 있었다. 의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흔들리는 신앙.

 집으로 신부님이 오셔서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 성체를 모시게 해주는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몇 차례 권해 보았지만 남편은 반기지 않았다. 자신이 불경스러운 말을 하게 될 것 같다며 거절했다. 1년 전 속주회 수도원장 신부님을 집으로 모시고 와 대의 시간도 가져 보았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임종 마지막 두 주간은 누워있는 자기를 혼자 두고 내가 주일 미사 가는 것도 섭섭해했다.

 "주일 미사 갈까요? 말까요?"

 "말아야지."

 한 치 망설임 없이 단호하다.

 "네, 알았어요."


 그러던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받을게."

 바로 구역장에게 병자성사를 부탁했다. 성당에서는 환자가 성체를 모실 수 있느냐? 몇 시가 좋겠느냐? 질문이 왔다. 오늘 오후 2시 이후면 언제라도 좋겠다는 통화를 끝내고 나니 바로 주임 신부님께서 2시에 성당에서 출발하신다는 연락이 왔다.

 눈에 띄는 대로 집 안팎을 정리하고 남편의 방에 십자고상과 촛불을 갖춘 탁자를 마련했다.


 오후 2시 10분, 주임 신부님과 수녀님, 여성 총구역장과 16 구역장, 이웃 안나 씨가 집으로 오셨다. 신부님은 우리를 모두 나가 있게 한 다음 누워 있는 남편의 침대 옆 의자에서 고해성사를 주셨다. 잠시 후 닫았던 방문을 열고 수녀님의 도움을 받으며 신부님의 집전 하에  종부성사 의식을 봉헌했다.

 남편은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동자와 해말간 얼굴로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모든 의식에 진지하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성체도 모셨다. 마침 병문안 와 있었던 큰딸 글라라가 함께하며 44분 29초짜리 동영상을 남겼다.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인 7월 4일, 화요일의 일이었다.


 종부성사, 병자성사

ㅡ세례를 받고 의사 능력이 있는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에 놓였을 때 받는 성사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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