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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1. 2023

그날, 그 시간

 단 한 번의 순간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다." 수 틀리면 고집 세게 입 꾹 다물어 버리는 어린 나에게 성질 급한 어머니는 종종 이런 말로 당신의 답답함을 드러내곤 하셨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의 그 기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 나와 달리 남편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세세콜콜 자기표현을 아주 잘한다. 투병 중에도 여전했다.

 뽀송뽀송 잘 마른 인견 홑이불을 턱밑까지 꼭꼭 눌러 덮어 주면

 "부드러움 88이야."

 나름 성심껏 음식을 차려놓고 첫술을 뜨는 남편 코앞에서

 "맛있지요?"

물으며 대답을 재촉하면 말없이 열심히 꽉꽉 씹기만 하다가 한참 후에야 근엄한 표정으로

 "아직 삼키지도 않았어. 타임머신 1487처럼 몰아치지 마."

 예민한 사람의 섬세한 표현 앞에서 때로는 그 참신함에 경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에 쓴웃음 짓기도 한다. 자기애적 언어유희 앞에서 피식 웃어 버릴 때가 많다.


 7월 8일 토요일.

 아이들과 손주들, 여덟 명이 아빠,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왔다. 남편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유동식만 조금씩 삼킨다. 얼굴은 다 알아보고 몇 마디씩 이야기도 나눈다. 차례로 인사를 드리고는 편히 쉬시라고 하며 침대 옆을 떠나 거실로 모인 아이들은 서로의 안부와 소식을 나눈다. 어린 조카들 재롱 보는 일과 돌보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진다. 조심하느라 서로 주의를 주지만 곧 똑같은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나는 방문을 조금 열어 놓은 남편 곁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아이들은 배달 음식을 주문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7월 9일 일요일.

 어제 다녀간 둘째가 오늘은 어제 못 온 사위랑 같이 왔다. 침대 발치에 앉아 앙상한 아버님 손을 잡은 사위의 얼굴에 눈물이 맺힌다. 지켜보는 마음도 함께 시큰해진다.


 7월 10일 월요일.

 출근한 아들에게서 오늘 저녁 아빠에게 들러 자고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괜찮다며 말렸다. 아들네 집에도 20개월이 채 못된 어린 손녀와 엄마 뱃속에서 7개월째로 접어든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 왕복 거리도 멀다.

 막상 밤이 되어 남편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그냥 둘 걸, 괜히 오지 말라고 했나? 후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1시간 간격으로 계속 남편의 상태를 살피며 밤새 집안을 오락가락했다.


  날이 밝았다. 7월 11일 화요일.

 아이들의 바쁜 아침 업무가 한바탕 지나갔기를 바라며 오후 두 시경 가족방에 카톡을 넣었다.

ㅡ 아빠가 많이 쇠해지셨다. 오늘 같은 날 2,30분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만 날씨도 궂고 그러네.ㅡ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오겠다고 답을 보내왔다.

 "아이들이 모두 다 온대요. 조금 기다리세요."

  시, 다섯 시, 여섯 시. 차례로 세 아이들이 왔다. 방문을 닫고 일대일로 아빠랑 잠깐씩 시간들을 가졌다. 남편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 길다. 함께 저녁을 시켜 먹고 둘째 셋째는 아빠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큰애는 자고 가겠다며 잠옷까지 챙겨 왔다. 처음 있는 일이다. 중3, 고2 두 손주들의 등교와 사위의 출근이 있으니 귀가를 종용했지만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말하기에 나도 그냥 받아들였다.

 남편 방문을 활짝 열어두고 계속 드나들며 저녁 시간을 보내었다. 열 시가 가까워지자 이젠 모두 잠자리에 들자며 각자의 방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두세 차례에 걸쳐 계속 남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10시 10분경 뭔가 남편의 몸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이 조용해졌다. 옆방에 있는 큰애를 불렀다. 둘이 남편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가슴에 살짝 손을 올려놓았다. 점점 조용해진 가슴은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임종이었다. 10시 15분.

 ㅡ여보, 아빠, 수고 많으셨어요. 고생하셨어요. 아무 걱정 마시고 편안히 천상 낙원으로 향하셔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섭섭했던 많은 것들 용서해 주세요.ㅡ

 간절한 마음으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들을 들려주었다.


교우들에게서 전해 듣고 유튜브로 알게 된 정보에 따라 남편이 가입해 두었던 상조 회사로 전화를 넣었다. 우리가 원하는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곧 모셔 가겠다고 했다.

 남편의 상태를 좀 더 보살피며 손을 잡고 몸을 만졌다. 너무나 긴장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둘이서 해오던 일을 이제는 나 혼자 처리해야 한다. 착하고 믿음직한 세 아이들과 그 배우자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어른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둘째 부부도 연락을 받고 바로 집으로 왔다. 어느덧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밤중 조용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운구를 맡은 상조 회사 직원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을 안내하며 우리 집 현관으로 먼저 들여보내고 뒤따라 현관을 들어섰다. 그 순간

 '아, 남편이 다시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앞이 흐려졌다. 남편의 침대 옆에 앉아 남편의 몸을 만지며 소리 죽여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았다. 꽤 시간이 흘렀나 보다. 옆에서 큰애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왔다.

 "엄마, 아저씨들이 기다리고 계셔요."

 얼핏 정신을 차리니 상조회사 직원 두 명이 방문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가지고 온 들것으로 남편을 옮겼다.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을 배려하여 비스듬히 앉힌 자세로 옮겨갔다. 눈물에 가리어 미처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나는 돌아섰다. 도저히 같이 따라나설 수가 없었다. 딸 둘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우리 곁을, 내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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