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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5. 2023

모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엄마는 좀 있다 갈게."

"네에 엄마, 엄마는 좀 쉬세요."

 "우리 둘이 갈게요."

 보호자 두 명이 동승할 수 있다는 운구차에 두 딸이 올라 병원으로 향했다. 사위는 손주 둘만 잠들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온전히 혼자가 된 공간. 모든 긴장과 통제가 무너졌다. 터져 나오는 통곡.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병원으로 향했다. 소란한 인적이 뚝 끊긴 한밤중. 적막한 아파트 복도에서 텅 빈 엘리베이터를 탔다. 차 한 대 없이 가로등만 환한 10차선 대로를 건넜다. 밤의 고요 속에서 장례식장 건물만 홀로 환하게 불 밝혀져 있었다. 아이들이 있다는 2층 사무실을 찾아갔다.


 운구차가 응급실로 가자 두 달 전 입원 치료한 진료 기록을 참조하여 당직 의사 선생님이 직접 차에 올라와 사망을 확인하고 병원 서무과에 들러 시체검안서를 발행받았다고 한다. 시간이 자정을 넘은지라 직원의 실수로 사망 시간 11일 22시 15분을 12일 22시 15분으로 잘못 발급하여 큰애는 그것을 고치러 다시 병원으로 가고 없었다. 돌아온 큰애가 말했다. 상사가 서류를 잘못 발행한 직원에게 꾸짖었다는 말.

 "그럼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때 시간은 12일 새벽 2시였다.


 식장을 정하고 제단 꽃꽂이 형식, 접빈 식사 종류, 영정 사진, 상주 복장 등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최소한으로 참여하며 의사결정의 주최자가 되었다. 두 애들은 적극 협조하며 기민하게 움직여 주었다.

 내일 당장 준비되는 식장이 없어서 시신은 하루 더 안치실에 모셔 두고 빈소는 13, 14, 15, 목  토 3일장으로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2시 반. 둘째를 심야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


 이튿날, 12일 아침이 밝았다.

 성당 주보 맨 뒷장 상단에 적혀 있는 연령회 회장님의 전화번호로 남편의 임종을 알렸다. 10시 미사에 참석하러 가시는 중인 듯했다. 입관, 장례 미사, 발인 등의 일정이 정해지고 성당 알림판에 부고가 떴다.

 11시에 나의 폐 ct가 예약되어 있었다. 아빠를 간병 중인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아이들의 배려를 간과할 수 없었다. 촬영을 끝내고 옆 건물인 장례식장에 다시 들렀다. 어젯밤 그 시간에는 닫혀 있어서 보지도 못한 채 예약한 10호실을 살펴보았다. 협소한 듯했다. 남편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최고로 해 주고 싶었다. 마침 내일부터 빈다는 1호실로 예약을 변경했다. 안치실과 병원 성당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길목에서 후드득 눈물바람이 몰아쳤다. 밤을 함께 지낸 큰애는 청소기를 돌린 후 자기 집으로 가는 중이다.


 하루의 여유 시간이 주어진 것이 큰 다행이었다. 두 달여 통 손질하지 못한 부스스한 머리를 짧게 파마하고 전신 마사지실에 들렀다. 다행히 예약 없이도 가능했다. 평소에는 다정히 나누던 대화 한마디꺼내지 못하고 죽은 듯이 그냥 누워 있었다. 눈가로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뜨거운 액체를 눈치채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동안 나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좌불안석이 된 아이들. 큰애의 기지로 마사지실에 연락하여 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동안의 긴장과 과로로 팽팽하게 극을 달리던 몸과 마음을 잠깐 내려놓았다.


 잠은 어디론가 멀어져 가 버린 밤, 이곳저곳 집안 정리에 들어갔다. 어수선한 남편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치밀하고 알뜰한 남편의 흔적들이 남편 대신 살아 숨 쉬고 있었다.


 13일 목요일, 10시부터 조문객을 맞이하기로 했다. 이미 본당 연령 회원님들이 나와서 제단을 정리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열 시를 전후하여 달려온 세 아이들과 사위, 며느리, 모두들 복장을 갖추고 각자의 자리를 정성껏 지켰다.

 엄청난 폭우 속에서도 많은 손님들이 다녀가셨다. 밤에는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고 휴식을 취했다.


 14일 금요일, 남편의 수의로 갈아입힐 양복과 와이셔츠, 속옷, 양말, 넥타이를 챙겨 들고 빗속을 걸어 장례식장으로 왔다. 커다란 우산으로 가린 덕분에 마냥 흘러내리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는 좀 덜 민망스러웠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빈소에 반가운 교우 한 명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눈물 났다. 3시 입관, 4시 장례 미사. 연령 회원분들과 많은 레지오 단원들, 조문객들이 줄지어 계속 연도를 바쳐 주었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기 전, 유족들을 위한 특별 고해성사 시간이 있었다. 자형을 특히 존경하고 따르는 친정 막내 남동생과 나 그리고 아들이 성사를 보았다. 아들의 성사 시간이 길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들어갔다. 두 주일 간 주일 미사 빠진 것을 비롯해 간단한 고백 성사를 보았다. 칸막이 없이 신부님과 나란히 앞을 보고 옆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신부님의 첫 말씀.

 "형제님의 그 모든 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나는 바로 대답을 드렸다.

 "네에 ~"


 미사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관이 제대 앞 중간 복도에 자리 잡았다. 아이들 결혼식 때 나와 함께 혼주가 되어 가슴에 꽃을 달고 활짝 웃던 사진 속의 양복을 그대로 갖추어 입은 남편이 그 속에 누워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본당 주임신부님의 따뜻한 집전과 연령 회원들의 경건한 기도, 교우들의 애잔한 성가 속에서 장례식장 2층 성당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추모의 정이 뜨겁게 피어올랐다.

 일주일 전 남편의 병자 성사를 집전해 주셨던 신부님께서는 장례 미사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 나와 가까이 지내는 구역장에게 전화를 하셔서 우리 가족의 상황을 세세히 물으셨다고 뒤에 전해 들었다. 그 구역장은 나의 여고 후배이면서 위층에 사는 안나 씨와 함께 세 쌍의 부부 여섯 명이 수년에 걸쳐 등산을 다니고 식당을 다니고 집집마다 방문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식사와 술을 나누곤 하던 절친한 사이였다.


 안나씨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녹음해서 보내 주었다. 아쉽게도 앞부분은 조금 놓쳤다고 했다. 덕분에 인자하고 깊은 목소리로 온 마음 다해 위로와 격려를 전하신 잊지 못할 감사의 장례 미사 강론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ᆢ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확실하면서도 또 가장 불확실한 것이 인간의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침묵뿐이지만 산 믿음은 이 침묵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을 가져왔듯이 우리들의 믿음 역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인해서 큰 희망으로 자리합니다. 오늘 주님의 품에 안기신 김만규 마르첼로 형제는 이렇게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믿으셨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서 체험하면서 사랑하셨기에 이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버님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젖어 있는 가족분들께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마 아버님에 대한 많은 기억들이 좋고 또 때로는 정말 쓰라린 기억들, 이런 것들이 생생하기 때문에 기억은 점점 더 생생하게 다가오고 어쩌면 슬픔은 더 커지고 때로는 그러한 죽음이 우리에게는 믿음의 시련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유가족 여러분, 죽음은 삶의 일부이지 결코 희망이 전혀 없는 끝맺음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고 묻히셨고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부활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은 우리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시면서 풍요로운 모든 것을 가지시고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몸소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셨고 또 우리의 병고를 대신 짊어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모두의 죽음까지도 물리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에 대한 믿음이 우리들 인간 삶에 따르는 여러 가지 도전과 고통, 어려움에 굳세게 대처해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서 분명하기에 우리 믿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시기에 그분을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온통 그분께 희망을 드리는 것 바로 그것이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자리가 결코 슬픈 자리는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온통 부활하신 주님께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기쁨이고 또 영원한 행복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이 여정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기쁘게 이겨낼 수 있는 그런 힘을 주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는 김만규 마르첼로 형제님 역시 주님께서 그러한 삶의 모습을 제시하셨고 그 삶을 충실히 따라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제 고인에게는 오직 승리만이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우리가 그것을 믿고 그래서 이제 하늘나라에서 가족들을 위해서 또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분께, 고인께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함께 나누고 또 그분의 도움을 청해야 되는 그런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느님을 만난 그 시간에 하느님을 만나는 그 아픔이 어쩌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고인을 위해서 특별히 지금 이 시간 많이 기도해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많은 위로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기도를 더 실천할 수 있도록 이 지상에서 순례자로 사는 동안 하느님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주님, 세상을 떠난 김만규 마르첼로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2023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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