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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7. 2023

가슴 시린 빈자리

 남은 자의 슬픔

 발인날인 7월 15일 토요일.

 그날도 비는 계속 내렸다. 벽제를 거쳐 강화 갑곶 순교 성지 하늘의 문 봉안당으로 향하는 여정. 봉안당은 작년 이맘때 큰애가 목동 본당 레지오 교우 형님들의 권고를 받고 사위와 함께 둘러보고 마련해 놓았다. 나도 남편도 오늘 처음 가 보는 곳이다.


 오전 9시 출발 시간에 맞추어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다. 운구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인원 여섯 명. 남편의 대학 동창 네 분과 사위 둘이 그 자리를 맡았다. 사흘 내내 세상 떠난 친구를 찾아와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물렀던 절친들. 멀리 강화까지 자신들의 승용차로 뒤따르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형제들, 친척들, 지인들, 교우들, 연령회원분들이 버스를 꽉 채웠다. 선두의 캐딜락 세단에는 남편과 나, 아이들이 탔다.


 대기를 가득 채운 습기보다 모두의 마음이 더 축축이 젖어드는 오늘 하루다. 열 분 남짓한 본당의 연령회 회원분들은 출발해서부터 돌아오는 시간까지 하루 종일 각 의식 때마다 격식에 맞는 기도를 정성껏 바쳐 주며 동행하셨다. 사흘 내내 우리 곁을 지키며 기도로 헌신 봉사해 주셨다.


  벽제 화장장. 한 사람의 일생이 한 줌 뼛가루로 바뀌는 곳. 문상객들은 모두 근처 식당으로 안내되고 아이들과 나는 가족 대기실을 지켰다.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담담하게 아빠의 투병생활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마음 아프고 슬프지만 모두 최선을 다했다. 아빠도, 우리들도ᆢ.


 아직은 따뜻한 유골단지가 아들의 손에 들려졌다. 갑곶 성지 성당에서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성당으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비는 잠깐 멈추어 주었다. 장례식장에서도 벽제에서도 운구를 운반하는 시간 동안은 비가 그쳤다. 남편의 가는 길을 위로해 주시는 커다란 사랑의 따뜻한 손길.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성지 신부님의 집전으로 간단한 미사가 봉헌되고 예약된 공간 안으로 남편의 유골함이 모셔졌다.

 모두의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 이제야말로 온전히가슴을 파고드는 이별의 시간. 하지만 절제된 고요 속에서 차례차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사랑한다, 고맙다, 평안하라는 말. 앞을 가리는 눈물.

 시간은 흐르고 모두들 무거운 침묵 속에 귀갓길 버스에 올랐다.


 한 사람의 일생을 묻고 돌아오는 길. 남편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그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의 빛과 그림자, 표면과 내면, 따뜻함과 차가움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힘들고 외롭게 얼마나 최선을 다하여 꿋꿋한 외길의 삶을 살아왔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며칠 후 이웃 한 명이 말해 주었다. 봉안당 마지막 인사 시간, 사람들이 거의 밖으로 다 나왔을 때 계속 침통하게 침묵을 지키고 계셨던 시누남편, 남편의 두 살 많은 매제분이 유골함 앞에서 대성통곡하며 오열하시더라고.

 "처남, 이렇게 허무하게 가려고 그리 열심히 살았나?"

 전해 듣는 순간 나에게도 오열의 격랑이 밀려왔다. 중학 동창으로 곁에서 지켜보며 서로의 일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사흘 내내 홀로 소줏병을 앞에 두고 참고 참으며 장례식장을 지키던 아홉 살 어린 막내 시동생, 멀리 부산, 마산에서 급히 상경하여 장례식장을 들어서면서부터 오빠, 오빠, 실신할 듯 쓰러지며 통곡을 토해내던 두 시누이. 없는 돈에 50만 원이나 부조하며 지방에서 올라와 고인이 되신 자형 곁에서 사흘 꼬박 빨개진 눈으로 머무르던 내 막내 남동생.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말문이 막히던 수많은 친지, 친구들.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한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는 처음 출발지인 서울성모병원 앞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잠시 비는 멈추었다. 함께해 주신 고맙고 귀한 분들께 한 분 한 분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한 채 아쉽게 길가에서 헤어졌다.


 장례식 사무실에 들러 사흘간 사용했던 상복과 비품들을 반납하였다. 경비는 어젯밤 늦게 둘째 부부가 모두 정산하였다.

 장례식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아들이 교통 상황을 살펴보더니 깜짝 놀란다. 높아진 한강 수위로 88 올림픽 도로가 통제에 들어간 것이다. 아찔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오늘 함께 해 주셨던 많은 분들의 귀갓길이 힘들어질 뻔했으니.

 유달리 남을 배려하는 남편의 순수한 마음과 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을 떠올렸다. 둘째를 임신 중인 며느리는 돌 지난 첫 손녀와 함께 오늘은 집에서 머물렀다. 귀가를 포기한 아들과 한강 산책을 나섰다.


 동작대교 위, 전망 좋은 구름 카페에 들렀다. 폭우주의보 탓에 카페는 텅텅 비어 있었다. 덕분에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강 건너 펼쳐지는 서울의 찬란한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들은 캔 맥주 하나, 나는 생수 한 병. 아빠의 투병 과정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 제일 힘들고 외로웠을 아빠와 그 곁을 지키는 엄마, 둘 다를 걱정해야 했던 아이들의 긴 시간도 이제는 막을 내렸지만 그에 못지않은 큰 슬픔이 내려앉았다.


 "아빠 생각 많이 나지?"

 "계시면 좋죠."


 내가 먼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다. 비켜 갈 수 없는 외길. 주어지는 대로 힘껏 잘 견뎌내어야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때로는 홀로 때로는 연대를 맺으면서.

 눈에 띄는 물건마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마다 눈물 속에 흐려지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시간이 약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믿을 뿐이다. 남은 자들끼리의 위로로 이 아픔의 시간들을 미약하게나마 따뜻하게 워 본다. 허무한 마음을 잠깐이나마 서로의 감사로 다독였다.


 "엄마,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기억해요."

 "엄마, 엄마가 다 해 주셔서 저희들은 편했어요".

 "엄마, 엄마는 100점 만점에 200점이에요."


 다행히 지난달 말에 우리 집으로 초대하여 오빠와 형님, 처남을 만나 식사를 하고 얼굴 마주하여 담소를 나누었던 시동생 시누이, 시매부도 아픈 마음을 감추고 따뜻한  인사를 남겼다.

 "끝까지 잘해 주셔서 조카들과 언니에게, 형수님께, 처수씨께 감사드립니다."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눈시울만 뜨거워진다.


 이제 모두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너무 빈자리가 큰 사람을 떠나보낸 뼈 시린 아픔을 지니고.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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