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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20. 2023

삼우제

Remember Me

 2023년 7월 16일

장례식 다음날인 일요일에도 비는 계속 이어졌다.

 가족 카톡방은 봉안당 문에 새겨질 비문과 들어갈 사진을 정하느라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다.

 그러던 중 아들이 글을 하나 올렸다. 오후 1시.

 ㅡ정말 신기하게 방금 되게 크고 화려한 나비가 저희 집 창 앞에 와서 저희 가족들이랑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가 제가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 가지러 간 사이에 날아가 버렸네요.ㅡ

 두 딸들이 바로 응답했다.

 "와, 네이버에 찾아보니 나비가 영혼이랑 관련이 있다고 적혀 있네요. 아빠가 마지막 인사를 진우네 가족에게 하고 떠나셨네요."

 "그런 얘기 많이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진우 가족한테 고맙다고 대표로 인사하고 가셨나 봐요."

 금세 뿌옇게 흐려지는 핸드폰 창에 나도 답글을 달았다.

 "나비, 아빠 맞을 거다. 너희들의 반가운 인사 잘 받으셨을 거다. 되게 크고 화려한 나비, 이 雨中에 ᆢ. 역시 매력적인 분이시다."

 아들네 아파트는 24층이다.


 다음날 며느리가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베란다 방충망 바깥쪽에 크고 화려한 나비가 한 마리 눈에 띄길래 처음에는 코팅 장식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날개를 움직이길래 세 식구가 다 모여 '예쁘다, 신기하다.' 하며 나비랑 한참 놀았어요."

 어떤 모양이었느냐고 자세히 물으니 아들이 바로 핸드폰을 뒤져 가장 비슷해 보이는 나비 영상을 하나 찾아 주었다. 검정과 노랑의 크고 화려한 호랑나비였다.


 참 많이 힘들어했고 여렸던 사람인데 그 본성 안에는 저리 아름다운 고귀함을 상처받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본인도 주위 사람들도 그 안에 숨겨져 있었던 그 본성을 좀 더 확실히 인지했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고 덜 외로웠을 것을. 하지만 이제 와서 아쉬움은 접어야 한다. 마음에 날카로운 통증이 새겨졌다.


 다음날인 7월 17일, 월요일은 삼우제였다. 三虞祭. 망자의 혼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장례가 끝난 후 지내는 세 번째 제사.

 새벽 6시, 본당 연미사를 신청하였다. 며칠간 계속된 장례 일정으로 아이들 모두 심신이 지치고 피곤할 것 같아 혼자서만 조용히 참석할 예정이었다.

 전해 들은 세 아이들이 모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검은 정장 차림으로 모두 시간에 맞추어 달려왔다. 성당 맨 앞자리에 나란히 서서 아빠를, 남편을 위한 삼우제 연미사를 봉헌했다. 이웃 안나 씨도 어슴푸레한 새벽 미사길에 같이 나서 주었다. 나도 누군가의 아픔에 이렇게 변함없이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고 일러주는 어른도 치밀한 계획성도 없이 갑작스레 닥친 일에 경황없이 치르는 장례식이었다. 그런데도 알게 모르게 끝까지 빠뜨리는 것 없이 격식에 맞게 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발인날 갑곶성지에서 드린 미사가 초우제, 다음날인 주일날 본당 새벽 미사로 바친 연미사가 재우제 그리고 오늘 새벽 함께 드린 미사가 삼우제로 이어졌다. 이끌어주시는 커다란 힘에 감사드리며 남편이 모든 짐 내려놓고 천상 낙원에서 영원 복락 누릴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였다.

 미사 후 신부님과 수녀님, 연령회장님께서 따뜻한 인사를 나누어 주셨다.


 일찍 문을 연 베이커리에 들어가 방금 만든 신선한 샌드위치와 따끈한 커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함께 영화를 한 편 보자고 의논이 되어 있었다. 집 근처 메가박스에서 예약해 두었던 '미션 임파서블 7'을 보았다. 둘째를 임신 중인 며느리는 영화 상영시간에 맞춰 와서 합류하였다.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대전제 아래 아슬아슬한 액션과 수려한 경치들을 즐길 수 있는 순수 오락 영화였다.


 영화가 끝난 후 점심을 먹으러 함께 들른 식당, 멕시코 정통 음식점 <슈가스컬>. 작년 신정에 손주 다섯 명을 포함해 삼대 모든 가족 열세 명이 같이 외식을 했던 곳이다. 그러고 보니 1년 반 전의 일이다. 코로나 문제도 겸해서 발병 후 외식을 금기시하던 남편을 설득해 모처럼 온 가족들과 함께한 마지막 외식 장소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정말 우연한 일치다. 게다가 <슈가스컬> 상호명답게 실내 장식이 온통 해골 그림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의 분위기를 그대로 따온 듯하다.


 멕시코에서만 열리는 '죽은 자들의 날', 'Day of the Dead' 축제.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1년에 3일간 가족과 친지를 만나러 오는 고인들을 위해 성대한 축제를 연다.

 화려한 색깔로 장식한 설탕 해골과 죽음의 꽃이라고 부르는 마리 골드 촛불로 무덤을 장식하며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과 음악을 준비해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고인들은 1년에 한 번 가족들을 만나러 세상에 온다. 그런데 고인의 영혼이 이 세상에 오기 위해 통과하는 검문소가 있다. 이승에서 기억해 주는 이가 없으면 그 영혼은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쓸쓸히 저승 세계에 머물러야 한다. 이승 사람들의 망자에 대한 기억은 그들을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내는 유일한 길이다.

 Remember me. 나를 기억해 줘.

 세상 떠난 영혼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남편, 아버지, 김만규 마르첼로 님.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근심, 걱정, 불안, 고통,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한 마리 화려한 호랑나비로 우아하게 날아올라 아름다운 천상낙원에서 당신 마음에 흡족한 아버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사랑, 따뜻하고 선한 이웃들의 넉넉한 사랑 듬뿍 주고받으며 영원복락 누리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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