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Aug 26. 2023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최고의 배필

 100분의 1도 제대로 보답을 못하지만 찾아오셨던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식사 모임을 기회 되는 대로 마련해 본다. 식당을 이용하기도 하고 집으로 초대하여 집밥을 나누기도 한다. 매월 3금, 7월 21일의 대학 모임과 23일 주일, 이웃사촌 네 분과의 점심, 27일 일꼬스모 모임 저녁은 밖에서 대접해 드렸다.


 26일 수요일은 아들의 중학교 때 학부모 네 명의 오래된 모임이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있어 퇴근 후 저녁 시간에 편하게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볍게 삼계탕을 준비했다. 기름기 하나 없이 닭 껍질을 모두 벗겨내고 깻잎 듬뿍 넣은 깻잎전을 부치고 도토리묵을 쑤고 가지나물과 묵은지 볶은 것을 곁들였다.


 몸이 많이 좋지 않다는 한 분이 빠지고 셋이서 오손도손 얘기를 이어갔다.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다시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유튜브로 들은 일본 단편 중 하나를 떠올렸다. 아사다 지로 작품.  <나의 마지막 엄마>

 당신에게는 살면서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1971년에 시작한 유나이티드 홈타운 서비스 프리미엄 클럽에 가입하면 미국 전역에 32개 빌리지와 백 명이 넘는 페어런츠를 확보하여 잃어버린 고향을 부활시켜 지난날들로 돌아가는 라이프 스토리를 제공한다.

 서비스 주제는 귀향이다.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자기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과 공간을 접수하면 고객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비슷한 분위기의 배경을 조성하고 그에 걸맞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주문한 손님이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준다.


 퇴직을 하고 노년층에 접어든 소설 속 주인공은 황혼 이혼을 당한다. 그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된 어머니와의 어릴 적 고향 마을에서의 상봉을 주문한다. 500만 엔을 지불하고 지시대로 따라가 보니 과연 옛날의 그 고향에서 살아계신 어머니가 자신을 맞아 주었다. 가정과 사회의 모든 것에 지치고 밀려나 외로운 늙은이가 된 그를 품어 주었다. 다정하고 그리운 어머니가 너무나도 따뜻하고 너무나도 애틋하게. 울컥해지는 주인공을 따라 나도 같이 울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 소설이 생각나며 수없이 삐그덕거렸던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디서 어떤 단추를 잘못 끼었는가 뒤돌아보고 싶어 던진 질문이었다.

 둘 중 한 명은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너무 안일하게 목표의식 없이 지낸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 평생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준비 기간으로 삼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남편이 떠나간 지 보름째 되는 날. 나는 신혼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를 몰랐던 임종 전의 시간. 내가 물었다.

 "자기는 언제가 제일 좋았어?"

 남편이 대답했다.

 "당신과 사귀면서 결혼을 할 거라고 양가에서 결정했을 때야."

 기력이 쇠해 있으면서도 열심히 보충 설명을 했다. 나를 만나기 직전, 고3이었던 그의 남동생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 그의 집안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아주 힘들고 어려운 어두운 시기였다고 한다.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그는 해양대학 4학년 2학기 대대장을 맡아 학창 시절의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수석 졸업을 했다. 네 살 차이 나는 나는 국립사범대학 2학년 재학 중, 그야말로 폴폴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나 같은 밝은 모범생이 새 식구로 오게 된 것을 부모님과 동생들이 모두 기뻐하고 반겼고 그때가 자기는 가장 좋았다는 것이다.


 같은 과 친구의 소개로 만나 시작된 3년의 연애 기간, 우리는 정말 서로 많이 좋아했다. 그는 나의 로망이었고 나는 그의 로망이었다. 50년 전의 일이다. 

 잠시도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았던 달콤했던 시간들. 백여 통씩 주고받은 설익은 열정들이 가득했던 연애 편지. 깍지 껴 잡은 두 손을 같은 포켓에 찔러 넣고 부산역에서부터 구포 다리를 건너 낯선 시골 마을까지 걸어갔던 첫눈 내리던 날. 첫 키스, 첫 섹스. 모두 남편과 함께였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며 나의 연애 중계방송을 즐겨 들었던 동창 친구가 며칠 전 나를 울리고 웃겼다. 너희 남편이 워낙 젠틀하고 섬세했잖아. 둘이 해운대에서 데이트하다가 네가 들고 있던 시집이 파도에 실려가 버렸댔어. 그다음 데이트 때 너희 남편이 똑같은 시집을 사 와서 건네주었는데 책장 맨 앞 속표지에 이렇게 써 놓았더랬어.

 '태평양으로부터의 선물'


 또 있어. 우리 과에서 제일 먼저 결혼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네 남편이 이렇게 말했댔어.

 "우리도 저 뒤에 같이 서서 오늘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네가 그 말을 들려주면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몰라.

 그 결혼식의 주인공 두 부부가 나와 남편을 소개해 준 한 쌍의 커플이어서 우리 둘 모두 그 결혼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다음 해 우리도 결혼식을 올렸다. 1977년 9월 18일.


 스물셋, 스물일곱의 미숙한 어린 신랑 신부. 졸업과 동시에 갓 출발한 직장생활에도 미처 적응하기 어려운 신혼부부에게 결혼과 동시에 지워진 효도와 우애의 무거운 짐들. 넉넉하지 못한 출발. 부당하게 여겨지는 침범. 거기서부터 결혼생활의 갈등은 시작된 듯하다.


 너그러운 소통보다는 싸늘한 삐짐과 고집스러운 침묵으로 일관했던 우리 둘. 뜨겁게 화해해도 바로 반복하는 어리석음. 너무나 후회되는 부분이다. 내면아이의 결핍으로 인한 왜곡된 방어기제를 둘 다 휘두르고 둘 다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연약함을 까발리고 폭로하기보다 덮어주고 품어줄 것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야 뜨겁게 와닿는 가르침을 그때 그 신혼시절로 돌아가 그대로 다시 해 볼 수 있었으면. 내가 정말 좋아했던 그 사람, 내 남편과 함께.


ㅡ사람 관계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없다. 먼저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라. 먼저 사과하는 이는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를 소중히 여겨 아끼기 때문이다.ㅡ


2023년 7월 26일

작가의 이전글 삼우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