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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1. 2023

사모님, 물 한 잔 드릴까요?

 지금, 어디서, 무엇을 ᆢ

"남자들 중에는 뭐든지 집에 것 들고나가 길에 내다 버리는 사람이 있고 못 하나라도 주워서 집으로 들고 오는 사람이 있다. 김서방은 못 하나라도 집으로 들고 올 사람이다."

친정어머님 말씀이다.


 정말 그랬다. 남편은 거의 한 푼도 낭비하지 않았고 사치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는 더욱 그랬다. 박봉으로 시작한 1977년부터 최고 경영자로 끝난 2018년까지 40여 년간 한 푼 빠짐없이 월급 전액을 아내인 나에게 건네준 사람이다.


 장례 일정이 끝난 후 아이들은 함께 모여 부의금을 정리했다.


 결혼 후 남편과 내가 겪은 세 부모님의 부의금에 대해서 우리 둘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명단만 전해받았을 뿐 부의금 총액을 계산하지도 않았고 형제별로 들어온 액수만큼 나누어 가지지도 않았다.

 심지어 2002년 봄에 치른 친정어머니 장례식 때는 결혼 후 처음 겪어 보는 큰일이라 명단까지도 챙겨 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전액을 그 당시 책임지고 초상을 치르던 막내 남동생 부부에게 넘기고 말았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남편 앞으로 꽤 큰 금액의 부의금이 들어왔을 터이다.

 2002년 가을, 아버님 때는 남은 돈 전액을 어머님 통장으로 만들어 드렸고 2015년 봄,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비슷한 금액의 돈을 형제들 공동기금으로 막내 동서에게 맡겼다.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세 아이들과 그들의 배우자들로 인한 조문객들이 꽤 많았다. 한창 왕성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 각자의 지인들을 찾아내어 분류를 하고 각자의 몫으로 나누었다. 답례품을 준비하고 상황에 맞게 부부끼리 의논을 맞추어 인사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와 남편 몫으로 된 명단과 액수도 잘 정리해서 건네주었다.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고 부의금도 꽤 많은 금액이었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대하며 마음 한구석이 싸아해 왔다. 아픈 소식을 전하게 된 미안함이 컸다. 언제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될지 ᆢ.


 입금하기 위해 은행으로 가는 길, 돈을 들고 가는 마음이 계속 울컥거렸다. 번호표를 뽑고 차례가 되어 창구 앞에 앉았다. 직원이 알려 주었다. 천만 원을 넘는 입금, 출금, 송금은 모두 검색 대상이 된다고.

 나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남편 부의금이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창구의 여직원 앞 작은 의자 위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 가슴 깊숙한 곳까지 통증이 찾아왔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계속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에게 직원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 왔다.

 "사모님, 물 한 잔 드릴까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서 나오는 익숙한 길, 이 길 위에도 숱한 남편의 발자국이 찍혔을 텐데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언제까지 이 모든 길을 혼자 걸을 것인가?

 남편 방 책상 위에 놓인 영정 앞에서도 수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어디서, 무엇을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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