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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3. 2023

고독한 싸움

  내 힘으로 ᆢ

 긴장과 아픔과 그리움 속에서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2023년의 7월이 하루하루 지나갔다. 천천히 쉬지 않고 흐르는 슬픔의 강이 되어.

 장례식 이후 바로 폭염이 이어졌다. 더위와 추위에 엄청 예민한 사람이었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아직 에어컨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씨에 이 무더운 대기 속을 벗어난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계속 창문을 열어 놓아 달라고 했다. 머리맡 창문을 향해 켜 놓은 선풍기 바람과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맞바람을 좋아라 했다.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운동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힘없이 내뱉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몸에 밴 습관들, 단 하루도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사람, 골프도 테니스도 등산도 어느 하나 뒤처지지 않는 선두주자였던 사람. 지금은 이렇게 침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임종을 채 일주일도 앞두지 않은 어느 날 새벽,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침대 위가 텅 비어 있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너무나 낯선 장면이었다. 급하게 시선을 넓히자 침대 아래 방바닥에 양반 다리로 앉아 있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라 침대 위로 들어 올리려고 서둘렀다. 남편은 내 도움을 거부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온갖 궁리로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 잡으며 애를 썼지만 힘을 잃은 팔과 다리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시간은 흐르고 침대 옆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둘이 마냥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여름밤, 희부염해 오던 바깥이 거의 환해졌을 때 위층 안나씨네로 전화를 넣었다. 실례를 무릅썼다. 새벽 다섯 시 반. 두 부부가 번개같이 내려왔다. 힘을 뺀 남편을 형제님이 덥석 안아 올려 침대 위에 바로 뉘어 주셨다.

 "왜 기다리셨어요? 한밤중이든 첫새벽이든 필요하면 언제라도 바로 연락 주세요. 이렇게라도 형님을 뵙게 되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나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틀 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나에게 몸을 맡겼다. 힘을 쓰지 않았다. 뒤에서 겨드랑이로 팔을 넣어 가슴을 껴안고 올리니 쇠약해진 남편을 나 혼자서도 침대 위로 바로 올릴 수 있었다.

 "왜 내려왔어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소멸되어 버릴 것 같았어."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고독과 고통. 어떤 위로의 말도 도움 되는 행동도 건넬 수 없는 무력감이 뿌연 안개가 되어 우리 둘 사이로 서늘하게 스며들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선선한 바람 부는 상쾌한 곳, 어떤 육체적 제한도 고통도 없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평안 누리는 곳으로 훌훌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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