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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06. 2023

첫 길

 봉안당

 8월 첫날인 오늘, 한 줌 그의 뼈가 놓여 있는 강화 갑곶성지 봉안당으로 향했다.


 9호선 김포공항역

 김포 골드라인 구래역 2번 출구 300m  

 90번 버스 25개 정류장 40분 소요 청소년 수련관 하차

 도보 700m 갑곶 순교 성지


 네이버 앱에서 찾아낸 길이다. 편도 2시간 반이 걸리는 길. 승용차 없이 방향 감각 둔한 내가 혼자서 가보는 첫길이다.


 9호선, 김포 골드라인. 90번 버스.

 시작부터 눈앞이 흐려졌다. 지나가는 모든 길에 키 큰 그의 모습이 어려 있다.


 동작역은 차례차례 태어난 네 명의 어린 외손주들을 데리고 수시로 드나들었던 국립현충원이 있는 곳이다.

 호국지장사 앞 연못가,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몰려오는 잉어 떼들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던 어린 손주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깔고 낮잠 재우던 곳. 기저귀 차고 고이 잠든 녀석이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혹여 잠 깰세라 조심조심 함께 지켜보며 숨 죽였던 시간들.

 그와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없이 함께 걷던 산책길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노란색 은행 낙엽 가득 깔린 고즈넉한 길, 겨울이면 뽀드득 발 밑에서 소리 는 눈 쌓인 하얀 길, 초여름 칡꽃 향기 그윽한 흙길을 밟으며 쪽문을 빠져나가면 길게 이어지던 서달산 둘레길, 지금은 없어져 버린 아담한 단골 추어탕집과 늘 단정했던 사장님이 등 돌리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모습.

 노량진역은 아버님 어머님 제수 마련하려 때마다 생선 사러 다녔던 어시장이 있는 곳.

 김포공항이 있는 강서구는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외고와 8년을 살았던 단독주택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곳.

 김포는 2002년 퇴직금으로 마련한 아주 조그마한 우리들의 상가가 있는 곳. 

 골드라인 마산역은 그와 나를 소개해 준 부부가 2년 동안 살았던 곳. 그곳에서 어느 하루 점심 함께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네 명이 오손도손 정담 나누었던 기억.


 낯익은 곳은 낯익은 대로 낯선 곳은 낯선 대로 서럽고 아픈 길이었다. 눈물바람으로 다녀온 첫길이었다.


 11시 연미사를 봉헌하고 지하 봉안당으로 내려갔다. 3차 - 2 - 16. 아직은 마무리가 채 끝나지 않은 투명한 유리문 안에 놓여 있는 하얀 유골함. 그 앞에 새겨져 있는 낯익은 이름 석 자와 세례명 넉 자.

 눈물 콧물 속에서 연도를 바쳤다. 돌아서서 나오다 다시 가 보고 또 가 보며 텅 빈 봉안당 안을 서성였다.


 인적 뜸한 뜨거운 여름 오후 한낮, 내리쬐는 햇살 가득한 고요한 성지, 어디가 어디인지 물어볼 행인 한 사람 없는 낯선 시골마을, 언제 올지 모르는 시골 버스를 기다리는 텅 빈 아스팔트 길.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편 강화 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다시 돌아오는 황당한 실수를 저질러 가며 낯설고 먼 귀갓길에 올랐다. 긴 여름날 태양이 그나마 도와준 것일까? 이른 아침 집을 나서 어둑해져 돌아온 하루, 그래도 이제는 언제든지 혼자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소풍 삼아 훌쩍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하룻길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온갖 속박을 벗어나 자유로운 영이 된 그가 지상의 그곳에 머물 리는 없지만, 훨씬 평화로운 곳에서 훨씬 자유롭게 아무 티끌 없이 순수하고 맑은 본연의 모습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겠지만 육신을 입은 는 이곳을 맴돌 뿐이다.


 그가 머물렀던 마지막 공간, 성모병원 장례식장도 들러 보았다. 남편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던 1호실 입구에는 또 다른 낯선 이의 웃는 얼굴이 걸려 있다. 접수대와 식당에도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듯 나와는 무관한 다른 얼굴들이 그림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들의 길었던 시간, 그중에서도 마지막이었던 사흘의 짧았던 시간도 이미 과거의 한 순간으로 사라져 버린 지금 여기의 이 시공간. 어디에도 그는 없다.

 습관처럼 익숙해진 길을 따라 온통 뿌예지는 눈앞 풍경들을 지나왔다.


 마지막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1년 전 손녀의 백일 기념날 찍은 책상 위의 영정 사진. 약간은 초췌하고 단정하게 해맑은 눈으로 나를 마주 바라본다.   

 초점없이 먼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저 눈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끝까지 읽어낼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마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눈길 앞에서 혼자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나, 내일부터 수영 가요."

 이 한 문장에서도 왜 이리 눈물이 묻어날까?

 그에게는 이미 외계의 언어가 되었을 텐데.


  허우적거리며 슬픔의 늪을 헤쳐 나온 오늘 하루.

  2023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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