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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l 28. 2023

집이 좋아.

던져진 주사위

 5월 16일, 혈변 때문에 응급실을 통해 들어온 병원. 수혈과 내시경 검사, 염증 치료 등을 받으며 4박 5일 간 머문 병원 생활을 남편은 무척 힘들어했다.

 투병 2년 3개월째. 수술, 재활,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응급실 진료 등등 거의 열 번 가까이 거듭된 입원 생활이다.


 소리와 빛, 냄새, 촉각, 모든 감각이 유난히 예민한 성정을 타고난 사람이니 더욱 그러하다. 살집도 없는 사람이 새 양말의 목 고무줄 부분 압박감이 싫다고 처음부터 세로로 서너 군데 가위집을 넣어 느슨하게 만들어서 신는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어릴 적 명절날 신었던 새 양말의 빡빡한 고무줄 때문에 피가 통하지 않아 빨갛게 멍들어 있었던 발목과 그 고통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그때 그 상황과 느낌이 어제런 듯 선연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1950년대 우리 국산품의 품질이 얼마나 조악했을까? 섬세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그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것 같았다.

 지방이든 도심 복판이든 한 번 다녀온 길은 다 기억해 내고 또 기억하기 위해 지도를 펴놓고 다녀온 길을 복기하곤 하던 그였다.


 의사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틀을 당겨 조기 퇴원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숨통이 트인 듯 편안해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침대 발치에 푹신한 방석을 깐 의자를 하나 더 놓았다. 머리 부분을 높여 놓은 침대 때문에 밖으로 밀려 나오는 발을 편안히 받쳐 주었다.


 식사량이 줄었다. 그동안 애써 노력하며 유지해 오던 세끼 식사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고 누워 있는 시간과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여러 가지 자극에 24시간 노출되는 환경이 힘들고 또박또박 정확한 시간에 제공되는 단조로운 병원 식사에도 지쳐버린 듯했다. 180cm의 큰 키에 긴 다리를 제대로 뻗기도 불편한 병원 침상도 남편에게는 한 가지 힘든 요인이었다.


 6월 26일, 호스피스 병동 첫 외래진료를 다녀왔다. 입원실 확보를 위한 첫걸음의 의미였다. 병실이 나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 대락 2주일 정도 걸린다는 설명을 듣고 돌아왔다. 딸 둘이 동행하며 처음으로 새 휠체어를 이용했다. 유사시를 대비해 구입해 두었던 것이다.

 이 진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남편의 항암 치료 거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 아팠지만 섣불리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7월 2일, 가까스로 일어나 내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서 열 발짝도 안 되는 화장실까지는 겨우 걸어갈 수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아직까지는 대소변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있다. 소변은 통에, 하루에 한 번씩 아침에 보는 대변은 화장실 양변기에.

 조그만 목욕탕 플라스틱 의자 위쪼그려 앉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을 뜨끈한 샤워기 물로 재빨리 씻어내렸다.

 샴푸를 두 번이나 써 가며 개운하게 머리를 감고 평소에  3ㆍ3ㆍ3을 철저히 지켜 충치 하나 없는 이빨도 며칠 만에 치약 칫솔질을 했다. 후다닥 손바닥으로 밀려 나오는 만큼만 때도 씻어내었다. 큰 발도 따끈한 대야물에 담궈 뽀득뽀득.

 보송보송한 새 타월을 깔아놓은 비데 변기 위에 걸터앉아 가까스로 새 옷으로 갈아입자마자 너무나 지친다며 바로 침대로 향했다.

 그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목욕, 내가 도와준 마지막 목욕이었다. 몸에 밴 배려, 젠틀한 신사의 몸짓으로 고맙다는 예의 바른 인사도 잊지 않았다.


 잠에 취해 있던 남편이 잠시 눈을 뜨는 순간 바로 묻는다.

 "여기 집이야?"

 나도 바로 대답한다.

 "그럼요, 집이에요."

 "아, 다행이다. 병원은 지옥이야."

 다시 눈을 감는다.


 점점 음식을 섭취할 수 없게 되었다. 수박물, 포도물, 복숭아물. 생과일을 갈아 건더기를 걸러낸 물을 입에 떠 넣어주며 내가 묻는다.

 "맛있죠?"

 담싹담싹 유순하게 받아 먹으며 대답한다.

 "응."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튿날은 삼킬 생각을 않는다. 이제는 물밖에 없다. 한 모금 힘들게 마신다.   

 "한 모금 더 마실까요?"

 "마셔야 돼."

 하지만 말대로 마시지는 못한다.

 6월 30일, 식사가 안 되니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빨리 선처 바란다는 재촉 연락을 넣었으나 자리가 나지 않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호흡과 과호흡이 반복되는 거친 호흡.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팔. 가만히 팔을 내려 손을 잡아 준다.


 7월 7일, 의식이 혼미한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날, 호스피스 진료실에서 연락이 왔다. 입원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으니 환자와 간병인 둘 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 결과를 가지고 입원 절차를 진행하라고. 간병인은 24시간 안에는 바꿀 수 없고 가족들의 면회도 제한된다.

 성인이 된 세 아이들이 있었지만 결정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누구나 원하지만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아 못 간다는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 입원할 것인가?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지금 상태로는 코로나 검사를 위한 거동조차 어렵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임종 시까지 남편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과연 어떤 선택이 도움이 될까? 다행히 아직까지는 욕창도 없고 암 통증도 없지만 그토록 극심하다는 암 통증이 시작되면 어떻게 할까? 우리 둘만 있는 이 공간과 시간들. 마음이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선택의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다.


 갈등 끝에 혼자 결정을 내렸다. 환자인 남편을 믿고 간병인인 나를 믿기로 했다. 버리지 않고 끝까지 도와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다. 미처 준비하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정보와 물건들로 요긴하게 많은 도움을 주는 주위 사람들이 그 증거다. 유튜브에서 죽음학 강의도 찾아 들었다.


 "여보, 여보!"

 다급하게 부르기도 하고 손을 잡아달라기도 한다. 옆에 앉아 손을 꼭 쥐고 있어도 아무 반응 없이 자신만의 외로운 여정에 혼자 머물러 있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동 입원보다는 집에서의 임종을 선택하기로 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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