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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l 24. 2023

어인 대접 이리 받나

 선종 2023년 7월 11일 22시 15분

 입관 7월 14일 15시 00분

 장례 미사 7월 14일 16시 00분

 발인 7월 15일 09시 00분


 진단받은 지 2년 5개월, 남편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힘든 투병 생활을 접었다. 당신이 태어난 달에 꽉 채운 72세의 나이로 영원한 안식처로 옮겨갔다.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


 빈소가 차려진 13, 14 이틀 간은 폭우가 쏟아졌다.

 유난히도 비를 좋아하던 남편의 영혼을 위로라도 하는 것일까?

 젊은 시절, 비가 오는 밤이면 한번 나가보지 않겠냐고 청해왔다. 당장 따라나서는 나. 둘이 같이 우산을 받쳐 들고 가로등 밑을 지날 때면 우산을 젖히고 고개를 들어 뽀오얀 수은등 밑으로 까만 밤하늘에 점점이 하얗게 뿌려지며 흩날리는 빗발을 구경하고 강가로 나가 높아진 한강 수위의 넘실대는 격랑을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다. 상을 치르는데 날씨가 이리 궂으니 걱정 들을 일이긴 했지만 나로서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너무나 비를 좋아했던 사람.


 하지만 문상객들의 하의와 신발이 순식간에 다 젖어 버리는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그 세찬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상객들이 다녀가셨다. 남편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 나를 위로하고 힘 돋워 주려는 사람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세 아이들과 배우자들을 격려하고 아픔에 동참해 주려는 사람들이 굵은 비를 뚫고 조문을 와 주셨다.

 그중에서도 같이 늙어가는 동창들의 조문은 더욱 살갑고 고마웠다. 빈소가 차려짐과 동시에 경남여고 44회 리본을 단 기품 있고 소담한 하얀 국화꽃 꽃바구니가 배달되었고 교기가 우뚝하니 빈소 입구에 자리 잡았다.


 짬짬이 내 눈길을 끄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50년도 더 지난 먼 옛날 우리들의 푸르름을 기억했고 빛나는 청춘 시절의 모태가 된 아련한 보금자리를 떠올렸다.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모교. 그 큰 울타리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보석 같은 친구들. 아프고 시린 마음이 조금은 덜 흔들리게 묵묵히 받쳐 주는 깊고 오래된 뿌리였다.

 부산이라는 지역적 고향은 떠나온 지 이미 40여 년이 지났지만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 함께하는 이 동창회라는 공동체는 영원한 정신적 고향으로 남아 있다.


 우리 44회는 올해 70세를 맞아 10월에 있을 재경 총동창회 행사에서 무대에 오르는 영광을 맞이했다. 부산에서는 4월에 있는 총동창회 행사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끝내었다.

 공연을 코앞에 둔 서울 친구들은 그날의 참석 인원 모두가 우리 가요 두 곡을 함께 부르기로 했다. 몇 년을 끌어온 코로나로 인해 성대하게 이어져 온 전통이 많이 빛을 잃었다. 6월 말부터 조촐하지만 성심성의껏 연습에 들어갔다.

 매주 목요일 오후 1시~3시.

 장소는 재경 총동창회 사무실.


 10년 전 60세 기념 공연으로는 왈츠와 차차차 두 가지 댄스로 63 빌딩 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 볼륨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몇 달에 걸쳐 열심히 연습했던 시간들. 혹여 동작이나 순서가 틀릴까 봐 바짝 긴장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같이 춤추던 친구들. 무대의상을 준비하고 연습 장소를 확보하고 지도 선생님을 모시고 매번 풍성한 간식을 준비하느라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임원진 친구들. 그 시간들에 대한 추억과 남아 있는 영상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우리 동창들의 성실과 저력이 맺은 아름다운 열매들이다.


  병원을 거부하고 집을 선택한 남편의 간병에 집중하면서 이번 연습은 마음에서 지웠다.

 지난주 화요일 11일, 남편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고 20일인 오늘, 노래 연습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먼저 들르겠다는 동창의 연락이 왔다. 와서 얼굴 보고 점심을 사주겠다고.


 우리는 10시 반에 만났다. 울며 위로받으며 점심을 같이했다. 나선 김에 친구를 따라 합창 연습에도 참여했다. 안아 주는 친구, 손을 잡는 친구, 안타까운 눈길을 건네는 친구. 금세 눈이 빨개지며 울컥했지만 애써 참고 평온하게 합창 연습에 임했다.

 공교롭게도 준비한 노래 중 한 곡의 제목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에게는.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따라 부르며 참 묘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에 계속 사로잡혔다. 더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이런 고백을 이끌어내는 그분의 섭리와 사랑에 마음을 맡기는 수밖에ᆢ.


 쓰던 종이 한 장, 필기구 하나, 함께한 50년 세월까지 있는 그대로 모두 남겨두고 홀홀히 사라져 버린 사람. 너무나 허망하고 믿어지지 않는 빈자리는 어떻게 막아 볼 수 없는 눈물바람을 불러오지만 내 앞에 주어진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은 또 잘 살아 내어야 한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우리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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