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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발 곰탕

by 서무아

아산 병원 소화기 내과에서 암 진단을 확정받고 난 후 일주일 간 입원하여 치료에 필요한 각종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치료 계획이 세워졌다. 2주 항암과 2주 휴식, 이어서 5주 항암과 방사선 치료. 그리고 한 달 휴식 후 수술과 회복.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모두 외래로 이루어졌다.


남편은 매일 왕복 2시간 거리의 병원 길을 도보와 전철로 오고 갔다. 운동 시간으로 작정하여 셔틀버스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숨이 차서 진땀을 흘리기도 하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힘들기도 했지만 묵묵히 꾸준히 정확한 시간을 지키며 치료에 임했다.


항암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육체적인 고통과 그에 대한 정신적인 두려움은 가족 모두의 마음을 아슬아슬 조바심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보통 약이 아닌 만큼 약을 먹는 시간과 양을 정확히 지켜야 했다. 방사선 치료 시간에 맞추자면 새벽 6시에 식사를 해야 하는 날들도 꽤 많았다. 언제 불거질지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가족들 모두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큰애는 약해진 발바닥에 올 수 있는 통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체공학적으로 제작된 운동화를 종류별로 세 켤레나 마련해 왔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애용했다는 브랜드 상품은 해외직구로 구입했다. 적절한 보습제로 매일 발바닥을 마시지하고 편한 신발을 골라 신고 하는 노력 끝에 초기에 발바닥 물집은 쉬이 잡았다. 약사인 둘째는 필요한 영양제를 종류별로 준비해 줬고 안과 전문의인 아들은 아빠 치료의 총책임자가 되어 매일 저녁 본가에 들러 모든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큰애는 발등과 발바닥이 조이지 않게 폭이 넓고 충격 흡수 기능이 높은 고성능 운동화를 고르기 위해 사위랑 둘이서 하루 날을 잡아 한 나절이나 백화점 신발 코너를 다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 남편은 엄청 부담스러워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꼼꼼한 점검을 거쳐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그에 맞는 신발을 잘 골라 신고 다녔다.


2주 동안 항암주사 치료와 약 복용이 진행되면서 평소에도 약한 편인 손가락 끝 피부가 점점 얇아져 갔다. 물기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남편은 세수도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했다. 신문지를 깔고 아침저녁 꼼꼼히 손발에 수분 크림을 바르고 말리는 일이 큰 일과가 되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측정한 몸무게를 그날 날짜의 달력에 기록했다. 남편은 체중을 잴 때마다 별 의미없는 일이라고 투덜댔지만 하루도 빼먹지는 않았다. 채근을 해서도 안 되고 완전 무심해도 안 되는 중간 지점의 반응으로 모든 일상을 배려해야 내가 편했다. 다행히도 별 체중 변화 없이 2주가 무사히 지나가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동시에 행하는 5주 치료 과정에 들어갔다.


가슴 부위에 시커먼 경계선이 그어지고 샤워가 금지되었다. 목 쇄골뼈 부분에 수분 크림을 규칙적으로 두텁게 발라서 피부가 짓물러지는 것을 최대한 미리 예방하라는 주의를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알려 주시고 책을 통해 알게 된 주의사항들을 명심해서 잘 지켰다. 엄청 힘들고 귀찮다고 매번 짜증 부리면서도 규칙 준수에 철저한 남편은 성실하게 매일 아침 저녁 그 일을 빠뜨리지 않고 잘 해내었다. 덕분에 큰 부작용의 고통은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암 진단 첫날부터 아들이 가장 강조했던 고단백 섭취를 위해 거의 한 끼도 빠짐없이 식탁 위에는 육류 고기와 어류 생선이 올랐다. 아들은 간혹 냉장고 문을 열고 육류 식자재가 준비되어 있는지를 점검하고 직접 주문해 주면서까지 신경을 썼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삼시세끼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 준비에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었던 나도 매번 다시 바싹 긴장하곤 했다. 난각 번호 1,2번으로만 골라 구입한 달걀도 하루 2개 정도는 거의 매일 먹었다. 짧은 소식주의자 아빠에게 영양 보조 음료도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구입해 주었다. 매일 두 팩씩 간식으로 꾸준히 섭취해야 한다고 매번 격려했다. 남편은 힘들게 지켜 갔다.


방사선 치료 둘째 주가 끝나가면서 백혈구 수치가 뚝뚝 떨어졌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잠시 중단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하던 혈액 검사를 매일 했다. 낮은 백혈구 수치 때문에 치료를 못 받고 맥없이 귀가하는 날이 닷새나 이어졌다. 심하면 백혈구 수치를 높이는 주사를 맞아가며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이런 일이 흔하다고 했지만 가족들 모두 초긴장 사태가 되었다. 특히 환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오래 전 젊은 성당 교우 한 명이 유방암 치료를 받는 동안 닭발을 고아 먹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전화를 걸어 상세한 경험담을 들었다. 재래시장인 이수시장으로 향했다. 1킬로 6천 원짜리 닭발 한 봉을 구해 왔다.

저녁 나절 집에 들른 아들이 닭발 곰탕 얘기를 꺼냈다. 식도암 환우들의 카톡방에서 얻은 정보인데 백혈구와 호중구 수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마침 시장에서 사다 놓았다고 했더니 아들이 반색을 하며 반긴다.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이걸 어디서 구하나 걱정하고 있었어요."


네이버 검색에 들어가 닭발 곰탕 요리법을 알아보았다. 닭발 곰탕의 효능과 경험담들이 이어지며 상세한 요리 설명도 들어 있었다. 적힌 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1.먼저 밀가루를 뿌리고 닭발을 깨끗이 문질러 씻어낸다.


2.생강과 소주를 넣은 물에서 푸르르 한 번 끓여낸 다음 싱크대에 쏟아부어 하나하나 흐르는 물에서 깨끗이 씻어 건진다.


3.다시 물을 넉넉히 부어 생강, 대추와 함께 살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서너 시간 동안 푹 끓인다.


4.소쿠리에 받쳐 닭발만을 건져내어 닭발의 뼈를 모두 추려낸다.


5.추려낸 뼈와 대추는 따로 모아 다시 끓인다. 이때 대추는 터뜨려 준다.


6.발라낸 살 덩어리들을 믹서기에 담고 적당량의 국물을 넣어 건더기가 전혀 없도록 오랫동안 곱게 간다.


7.여기에다 처음 걸러 내놓은 국물과 뼈와 대추를 끓여낸 국물을 합하여 다시 폭폭 끓인다.


8.꽤 톡톡하게 제법 진한 농도가 될 때까지 푹 끓인 다음 사각 스테인리스 용기에 나누어 담아 식히면 묵처럼 말랑말랑하게 굳어진다.


9.냉장 보관하면서 세 끼 식사 때마다 한 컵씩 따끈하게 데워서 마신다.


막 완성하여 냉장 보관하기 전, 뜨끈뜨끈한 국물에 하얀 밥을 말아 쏭쏭 썬 파를 한 줌 올리고 후추를 살짝 뿌리면 구수한 명품 닭발 곰탕을 맛볼 수 있다. 포장마차에서 매콤한 뼈 없는 닭발 볶음을 안주 요리로 맛보았고 진한 고춧가루와 참기름 맛이 물씬 나는 짭조름, 보들보들 맛있는 닭발 찜요리를 먹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 손으로 닭발 요리를 해 본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곰탕으로.


매끼 식전 이것을 한 컵씩 먹은 덕분인지 별다른 조치 없이 다시 호중구의 수치를 회복하여 2차 5주간의 항암 방사선 치료를 모두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 음식에 까탈스럽지 않고 비위가 약하지 않은 남편은 꾸준히 닭발 곰탕을 잘 먹어 주었다. 수술을 위해 입원하는 바로 전날까지 거의 빠뜨리지 않고 계속 먹었다. 그동안 소비한 닭발은 무려 17킬로그램. 간혹 나도 맛보았는데 꽤 고소한 게 먹을 만했다. 완전 단백질 덩어리이다. 낮은 호중구 수치 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분들께 소개해 드리고 싶다.


시장에서 2킬로씩 사들고 온 봉투를 뜯으면 싱크대 개수대에 우르르 쏟아지는 닭발의 모양새와 노리끼한 비린내가 순간 비위를 좀 건드리기도 한다. 밀가루로 박박 문질러 씻어서 푹 고아낸 후 잘디잔 뼈를 추려내는 과정은 완전 시간 잡아먹는 일이다. 1킬로를 손보는 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럴 때는 핸드폰의 오디오 북이 좋은 친구가 된다. 펄 벅의 <여자의 천막>도 듣고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도 들었다. 읽어 주는 지니, 지니 라디오의 지니님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감사 드린다.


조그만 닭발 하나에 녹두알만 한 크기부터 조그만 막대기만 한 크기까지 열두,세 개의 뼈가 들어 있다. 빨리빨리 발라내지 않으면 식어버린 닭발은 살이 굳어져 뼈를 골라내기 어렵다. 굳어진 살에 뜨거운 국물을 넣어 믹서기에서 갈 때도 양을 잘못 조절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흘러 넘쳐 버린다. 아깝기도 하지만 뒷청소는 더 성가시다. 만드는 게 용이치 않다면 완제품들도 인터넷에 많이 소개되어 있다.

성장기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보양식이라고 한다. 요리를 즐기시는 분들은 한 번쯤 도전해 볼 만도 하다.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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