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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03. 2023

四十九齋

  떠나간 영혼의 자리매김

2023년 8월 28일 월요일, 四十九齋.


남편의 49재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임종 7일째인 첫 재부터 7일마다 일곱 번씩 지내는 재의 마지막 날. 여섯 번은 본당 새벽 미사로 봉헌해 왔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로 나뉘는 시간. 눈물이 차오른다. 뻐근하게 조여 오는 가슴의 통증과 함께.


 불교적 전통이기에 환생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는 어긋나고 교회에서는 이 용어조차 쓰지 않지만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전통적인 민간 무속 차원에서라도 이날을 기념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최종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떠난 영혼의 안녕을 기원하며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


 전날 저녁 시간, 매번 반복되는 똑같은 질문이 내 입에서 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여보, 뭐 해요? 어디서 뭐 하세요?"

 출장을 떠난 것도, 연수를 간 것도 아닌 완벽한 부재. 돌이키거나 반복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경험.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던 상실감.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 끝내 울음으로 이어지는 아픈 질문을 나 혼자 거듭 반복해서 말해 볼 뿐이다. 돌아오는 것은 거대한 슬픔의 격랑.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다. 점점 격해지는 울음이 대화를 대신했다. 깜짝 놀란 친구는 이러다 안 되겠다면서 가까이 사는 딸을 부르라고 했다.

 "아니야, 괜찮아."

 "아이들에게 그럴 수는 없어."

 한참 동안 같이 마음 아파해 주는 친구와 울며 불며 하는 통화가 20분 이상 이어졌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좋은 곳으로 가신 거야."

 "임종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기도드렸어."

 "만규 씨, 이제 안 아프시죠?"


 한바탕 서러움을 쏟아내고 49재 전야를 견디었다. 혼자 봉안당으로 갈 계획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함께하겠다고 알려 왔다. 큰사위가 운전하는 승용차 편으로 딸 둘과 사위, 나, 네 명이 갑곶성지 성당의 11시 위령미사에 참석했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서니 저 끝자리에서 친정 막내 동생이 다가왔다. 멀리 단양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이곳 강화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도착하니 11시 10분이었다고 한다. 함께 지하 봉안당에 들러 연도를 바쳤다.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마음과 붉어지는 눈시울들.


 월요일 오전 진료에 빠질 수 없는 아들은 부랴부랴 서둘러 점심시간에 도착했다. 함께 카페에서 만나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딸들은 집으로 출발했다.

 아들과 나, 동생은 다시 봉안당으로 향했다. 연도를 마치고 귀갓길에 올랐다. 외삼촌과 엄마를 태운 아들은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것이라고 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시지만 맞벌이 만삭인 아내와 두 돌을 못 채운 어린 딸이 있는 집을 하룻밤이라도 비우기가 쉽지 않을 텐데.


 팥빙수 한 그릇을 나누어 먹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나와 네 살 터울진 60대 중반의 막내 남동생. 멀어져 가는 후줄근한 뒷모습이 짠하게 잔영으로 남았다. 사는 게 왜 이리 갈수록 가슴 시린 일이 되는 것인지.


 밤에는 아들과 한강변을 산책했다.

 "많이 힘들지?"

 "계시면 좋죠."

 어른들이 건강하게 오래 곁에 있어 주어야 하는 이유다. 홀로 남은 나라도 그 역할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는지.

 아이들 앞에서는 담담하게 오늘 하루를 잘 보내었다. 어젯밤 내 아픔을 오롯이 다 받아 준 친구 덕분이다.


 장례 일정 사흘 내내 한 살 차이 나는 시동생과 친정 동생 두 막내들은 끝까지 함께하며 자리를 지켰다. 자형과 형의 소천을 애통해하는 둘의 힘 빠진 모습이 마음 아렸다.

 3일장 장례를 치르고 단양으로 돌아가며 동생은 친정 형제들의 카톡방에 글 한 편을 남겼다.



하늘 편지


시절 ~~~

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기억 속의 아련한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망각의 세월 속에 묻혀버려져 가는 우리들이 되고 싶지 않은 바람이다


하얀 종이 위에 끝없이 써 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한없이 울어버렸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서로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오래전 흘러간 세월 속

내 고교시절의 어느 하루, 밤늦은 시간에 집 앞에서 접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하얀 제복을 입고 유난히 큰 키에 술에 취해 서 있었던 사람


그 사람과의 인연이 50여 년 가까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제 내 가슴에 먹먹한 아련함만 남기고 그분과의 이별을 고하고 돌아오는 단양의 남한강 줄기의 강물은 왜 그리 슬프게 흐르는지 ~~~


그분과 함께 거닐었던 길이었던 때문일까 .....


남들에게 표현하지 않는 깊은 정을 가진 사람


겉으론 차가운 것 같지만 항상 가슴이 따뜻했던 사람


자신의 삶보다는 부모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우선했던 사람


남들이 모르는 부분을 혼자만이 짊어진 짐으로 생각하며 얼마나 힘들었던 생이었던가요


감히 저는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한 당신의 삶에

감사함과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천상의 영원한 행복 누리시고

평온히 영면하소서


-막내처남 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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