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무아 Oct 05. 2023

힐리언스禪마을

 온전한 휴식

 몽고 천막처럼 생긴 숲 속 유르트 건물 안. 넓은 원목 마룻바닥이 쾌적하고 정갈하다. 젊은 여자 선생님, 소리치유지도사가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단아한 모습에 매력적인 기품이 있다. 놋쇠로 만든 듯한 각기 다른 크기의 동그란 그릇들이 앞에 놓여 있다. Singing Bowl.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타원형으로 반원을 그리며 선생님을 향해 빙 둘러앉았다. 소리 파동치유와 싱잉보울에 관한 짧은 해설이 끝난 후 모두 편안하게 천장을 향해 드러누웠다. 눈도 감았다.


 지도사가 천천히 북채 같은 도구로 싱잉보울을 두드린다. 그릇의 크기와 두드리는 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들이 난다. 진원지를 떠난 소리가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며 텅 빈 공간 속으로 오래오래 퍼져 나간다. 맑고 고운 소리와 파동이 희미하게 오랜 여운을 남기며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집중하여 소리를 듣고 파동 에너지를 느끼며 그 속에 온전히 자기를 내려놓고 맡기며 비우는 치유 과정이다. 지도사는 중간중간 낭랑한 육성을 넣으며 명상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귀로 느껴지는 소리와 미세하게 몸으로 느껴지는 파동에 집중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남편의 영혼이 속세의 모든 번뇌와 회한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로이 아무 곳에도 속박받지 않고 온전한 빛과 사랑의 나라로 나아가길 간절히 기원했다.

 유난히도 힘들어하고 외로워했던 사람. 예민하고 섬세했던 사람.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었던 사람. 전지전능하신 분의 품 안에서, 어느 인간에게서도 기대할 수 없었던 그 큰 사랑 안에서 모든 것 믿고 맡기며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기를, 아파하지 않기를, 외로워하지 않기를.


 3박 4일, 강원도 홍천 힐리언스선마을에 머물렀다. 49재 다음날인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모든 여정이 친구 E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여름철 끝무렵의 홍보행사로 2+1 상품이 나와 있는 것을 잡은 것이다.

 N이랑 셋이 올 예정이었다. 출발 당일 아침 N이 코로나 확정 진단을 받아 식비가 포함된 선불 숙박료를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불참하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본인 N은 출발 전에 알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3인실을 둘이서 쓰게 되었다.


 인가와는 동떨어진 깊은 산속에 고급스러운 문화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잠실에서 출발하여 50여 분 만에 도착한 시외버스 정류장, 설악 터미널에서 내렸다. 선마을에서 보내 준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를 달려왔다. 이름도 예쁜 홍천강은 넓어졌다 좁아졌다, 깊어졌다 얕아졌다,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맑고 풍부한 물길로 계속 옆을 지키며 우리와 함께했다.


 유기농으로 세끼 식사가 제공되는 깨끗한 식당,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개방되는 황토 찜질방과 인공 탄산 스파,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과 밝은 조명과 쾌적한 에어컨 공기가 제공되는 조용하고 편안한 도서관 춘하서가, 유일하게 핸드폰을 쓸 수 있는 공간 업무지원동, 숲 속에 자리 잡은 고요한 숙소들, 둘러싼 산속에 잘 닦여 있는 갈래갈래 둘레길, 따끈한 한 잔 커피가 맛있는 카페, 매일 저녁 식사 직전 숲치유가 진행되는 숲 속 빈터, 식후 각종 무료 세러피 교육이 행해지는 넓은 마루 강당 GX룸, 무엇보다 소중한 맑은 공기와 짙은 숲. 질 좋은 식사와 원하는 만큼 제공되는 간편복과 타월. 마을 이름에 걸맞게 조용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 곳은 꼭대기 부분에 자리 잡은 禪香동굴. 세심한 배려로 품위있게 조성된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氣를 느끼며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신비로운 명상의 자리였다.


 기상 직후 즐기는 찜질방과 스파, 식사, 오전 시간에 즐기는 커피 타임, 저녁 시간에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세러피  두 종류는 무조건 함께했다. 오손도손.

 저녁 8시부터 9시까지 유료로 진행되는 프로그램과 자유 시간은 각자 마음 가는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냈다. 따로 또 같이. 고마운 동행이 있어 외롭지도 번거롭지도 않은 귀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은 돌아드는 길목마다 그 얼굴을 드러내었다. 별로 즐기지 않는 운전을 맡아주고 도착해서는 좋아하는 남편을 기회 노려 꼬셔가며 번번이 애를 쓰고 다녔던 곳곳의 휴양림들 수목원들.

 눈에 선히 그려지는 곳은 자주 들렀던 양평 수목원. 둘레길을 걸으며 떨어진 밤도 줍고 주인장이 직접 연주하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차도 마시던 곳.

 이곳 선마을에도 함께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유난히도 비가 많았던 올여름. 이곳에서도 계속 흐리고 때로는 비까지 뿌렸다.

 마지막 사흘째 밤은 8월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음력 7월 16일. 14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다는 슈퍼 블루문이 뜬다는 날이다. 친구들의 떠들썩한 카톡방 덕분에 알게 되었다.

 마침 이곳 하늘도 맑게 개었다.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벤치에 둘이 나란히 앉아 온몸 가득 달빛을 받았다. 풀밭 위 여름밤 한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四十九齋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