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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5. 2023

고마운 동행

 귀한 인연

 8월 14일 월요일, 음력 6월 28일. 남편의 생일이다. 여자 셋이 강화로 향했다. 나보다 한두 살씩 어린 교우 자매님들이 함께했다. 20여 년 전 목5동 성당에서 맺은 오래된 인연들이다.

 운영하고 있는 꽃집 하루 영업을 포기하고 기꺼이 차량 봉사를 해 주겠다고 나선 S. 종종 이른 아침 꽃 시장을 다녀가며 짧은 문자를 넣는다.

ㅡ 늘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람, 달리면서ᆢ

  서래마을 지나며ᆢ.

  잘 지내죠? 꽃 사러 왔다 주차장에서 샌드위치에 커피 마시며 생각났어요.

 궁금하여, 집 앞 지나가며ᆢ. ㅡ

 꽃보다 더 향기로운 마음이 담겨 있다. 확인하는 순간 바로 통화로 안부를 나눈다.


 S와 항상 단짝을 이루는 E 그리고 나, 오늘의 삼총사다. 목동에서 출발하여 승용차로 두 시간 가까이 달리는 초행길이다. 다행히 11시 미사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연미사를 봉헌하고 촛불을 밝히고 지하 봉안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깜짝 놀란 사실. 15년 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E의 남편 J 씨. 선산에 모셨다가 작년에 이곳 갑곶성지로 옮기고 매달 방문한다는데 남편과 나란히 같은 줄에, 불과 네 칸 떨어진 곳에 모셔져 있지 않은가? 그 바로 옆이 자매의 예약자리 그리고 남편의 바로 옆은 나의 예약 자리.

 셋은 다 같이 탄성을 올렸다. 놀라웠다. 아니 이럴 수가? 수천 구가 넘는 이곳 봉안당 안치소에서 이렇게 나란히 옆 줄로 만나다니. 반갑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미래의 이웃으로 함께할 수 있다니.

 짠하고 외롭게만 느껴지는 남편을 좋은 이웃이 되어 줄 J 씨에게 잘 부탁드렸다.

 아픈 마음을 감추느라 애썼지만 금세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속에서 함께 연도를 바쳤다.


 매달 한 번씩 혼자서 또는 아들이나 동생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다는 E의 안내로 맛집을 찾아갔다. 강화 초입인 이곳에서 40여 분 시골길을 달려 동막해수욕장을 지나 도착한 음식점.

 '하얀 꽃 메밀'.

 메밀가루를 주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한 상 푸짐하게 차려져 나왔다. 생일 맞은 남편이 내는 생일턱이라는 내 말에

 "마르첼로 씨,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인사말들을 던졌다.


 대답 없이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말.

 남편은 쑥스러워하며 말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을까? 남편 덕분에 가진 귀한 자리인데.


 다시 E의 안내로 바로 가까이 있다는 동검도 채플로 향했다. 조선시대 강화도와 한강으로 들어가기 위한 동쪽 검문소였다는 작고 아름다운 섬, 동검도.

 큰 섬 강화도를 바라보고 있는 동검도의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성당. 한국에서 제일 작다는 일곱 평 짜리 성당. 지키는 이 아무도 없이 늘 열려 있는 문.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 벽들.


 성당입구 벽에는 이런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ㅡ여기 이승에 초대받은 당신도 저 먼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 저 '깨달음의 언덕 너머'로 눈길을 한번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바로 여기 빈 방에 앉아서 저 광활한 갯벌을 바라보십시오.

 하늘과 바다와 산으로 이어진 저 생명의 갯벌, 바다를 바라보십시오. 당신의 염원은 간절해야 하고 당신의 결행은 단순해야 합니다.ㅡ


 남편의 평안을 비는 간절한 마음 한 조각을 담아 방명록을 남겼다.

 피안의 바다 건너 이승과 저승의 나뉨.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약속. 평안히 주님 은총 안에서 천상 복락 누리소서.

 할 일을 다 하고 떠나간 김만규 마르첼로 영혼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2023년 8월 14일.

 7월 11일 소천 후 첫 생일날♡

 아내 서베로니카 다녀갑니다.

 강화 동검도 채플.

 갑곶성지 하늘의 문 봉안당을 거쳐서. ㅡ


 한여름의 해가 저물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길. '대한민국 명장 홍종흔  Artisan Bakery'라는 곳을 들렀다. 넓은 규모와 뛰어난 전망을 두루 갖춘 인상 깊은 매장이었다. 진하게 풍겨오는 커피 향을 맡으며 연이어 줄을 서는 고객들. 갓 구워진 다양하고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계속 진열장 안으로 수북이 채워지고 있었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때우고 못다 한 회포를 풀며 오늘의 여정을 반추해 보았다. 아름다운 길이었다.


 선선해지면 여행 삼아 다시 함께 찾아오자는 약속을 남겼다. 어둑해지는 여름 저녁, 목동에서 S와 헤어진 E와 나는 서울성모병원 뒷산을 지나 서초역까지 함께 걸으며 도심의 저녁 산책을 즐겼다.

 어느덧 9시에 가까워진 시간. 서로에게 감사를 전하며 뜻깊었던 오늘 하루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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