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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Sep 12. 2023

당신 덕분에 많이 누렸어

  쉽지는 않았지만 ᆢ

  묘하게 잠이 오지 않는 밤. 근원을 알 수 없는 마음속 물결이 끊임없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마음이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각성되어 있다.

뭐지? 뭘까? 왜 이렇게 흔들리지?

 

 남편이 떠나간 지 한 달 되는 오늘. 2023년 8월 10일, 말복.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모였다. 산청 한방마을에서 구입한 우슬초와 산도라지, 매년 친구가 챙겨 보내주는 대추, 재래시장에서 사 온 마,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까놓은 마늘 등을 넣고 폭폭 삼계탕을 끓였다.


 투병 기간 중 보내온 많은 위로와 기도, 먹거리 선물들을 기억한다. 관심과 사랑의 우정에 감사하며 없는 솜씨이지만 편안한 집밥 자리를 준비했다.


 2002년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에서 결성된 댄스팀, 여고 동창생 부부 다섯 쌍 열 명. 40대 후반의 열정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어색하게 짝꿍들의 손을 잡고 어설픈 스텝을 밟았던 젊은 우리들. 댄스 레슨보다 이어지는 골뱅이 무침 세면 국수와 커다란 500ml 손잡이 달린 유리컵에 담긴 생맥주, 톡톡 튀는 대화와 터져나오는 웃음을 더 좋아했던 우리들.


 돌아가며 각자의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자정이 넘도록 푸짐하게 펼쳐 놓은 상 앞에서 하하호호 남편들과의 공방전을 벌이며 40대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던 우리들. 댄스는 접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얼굴 보는 그 모임은 계속 이어져 왔다.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중의 한 명이었던 나의 짝 남편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제일 먼저. 이제 우리 모두 같은 운명의 출발선상에 먼저 것뿐이라고들 위로해 준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구태여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1시에 모여서 점심을 먹고 옛날 이야기부터 앞날 이야기까지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나누며 새삼 우리들의 나이를 확인했다. 저녁 식사를 배달시켜 먹으면서까지 이야기는 이어졌다. 저녁 9시. 아쉬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구입하여 딱 한 번 사용한 휠체어와 두 박스도 넘게 남은 단백질 영양 음료와 채 반도 쓰지 못한 환자용 기저귀 박스는 모두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하는 친구의 승용차 트렁크로 옮겨졌다.


 친구들이 떠나고 거실 한복판으로 끌어내었던 테이블과 의자를 제자리로 돌려 보내고 부엌 뒷설거지를 끝냈다. 어영부영 자정이 가까워졌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머릿속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진다. 함께 있었던 여덟 시간 동안 가볍게 웃고 조금은 눈물 비치기도 하며 일상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여덟 시간 내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남편의 부재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 돌아간 집에서 부부가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당연히 남편의 사망 이야기일 것이다. 그동안 함께했던 세월 속에서 수놓아졌던 알록달록 우리들의 이야기. 먼먼 옛날 이야기로 파묻혀 사라져가는 아득한 이야기.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쓰라린 이야기.


 혼자가 되니 애써 지었던 웃음, 무심한 듯 나누었던 일상의 소소함 뒤에 가려졌던 크고 깊은 슬픔이 바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애써 언급하지 않았던 상실감이 금세 이 공간을 꽉 채워 온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따라 창 밖 어둠 속 검은 하늘 위로 펼쳐지는 달과 구름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다. 조금씩 바뀌는 달과 구름의 움직임을 한동안 바라본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그가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잘 있어."


 임종을 며칠 앞둔 어느날 그가 말했다.

 "당신 덕분에 많이 누렸어."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는 너무나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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