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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23. 2023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

 일찍 눈 뜬 아침, 사흘째 아침이다.

 간밤에는 에어컨을 켜는 대신 밤새 창문을 열고 잤다. 희부염한 새벽빛이 창밖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다.


 눈에 선한 말이산 고분군으로 향했다. 읍내 중심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고대 아라가야 왕족들의 무덤터이다.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살던 집에서는 반대 방향에서 5분 거리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거의 매일 산책했던 곳. 어스름 새벽에는 새벽의 조용한 눈뜸이, 달빛 고운 밤에는 농염하게 무르익은 밤의 정취가 매력적이다. 낮은 낮대로 사방이 툭 틔어 있어 먼 곳까지 펼쳐지는 전경들이 광활하고 평화롭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 긴 시간 무던히도 애를 써 왔는데 2023년인 올해 그 숙원을 이룬 모양이다. 이틀 후에 공식발표가 있다고들 한다. 온 읍내는 잔치 분위기였다. 장마처럼 비가 이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곳곳에서 축하 야외행사가 치러지고 있었다. 넉넉한 음식들을 나누며 큰 목소리로 화합을 다지는 각종 단체들의 모임이 떠들썩하다.


 고분군은 3년 전보다 많이 정돈되고 다듬어졌다. 드러난 길가 흙 위로 뿌리를 뻗으며 어수선하게 자라던 대나무 숲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운 좋은 여름밤이면 신비로운 형광빛을 뿜으며 날렵하게 대숲 사이를 유영하는 반딧불이들을 만날 수도 있었는데. 멈춰 서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던 그 군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주위에 널려 있던 민가들도 많이 사라졌거나 군소유재산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못 박혀 있다. 군에서 철거를 목적으로 사들인 모양이다.

 덜 다듬어진 대로 편안하고 아늑하게 여겨졌던 정다움이 이제는 위엄을 지닌 품격과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숙연한 무덤 사이로 잘 닦여져 있는 산책길.

 이 길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대로를 두고 일부러 이 길을 빙빙 돌아 걸어 5일장을 다니고 도서관을 드나들었지.


 봄이면 지천으로 깔린 쑥을 캐고 여름과 가을에는 철 따라 들판을 다른 색깔로 옷 입히는 들꽃들을 만났지. 겨울에는 꽁꽁 싸맨 옷차림으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노랗게 변한 키 큰 풀들 사이를 걸었지. 언제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아름다운 곳, 함안 말이산 고분군.


 아담한 박물관 뜰을 지났다. 눈에 익은 길들을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둑길을 걸어 연꽃 테마파크로 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큰 연꽃 공원이라고 한다. 연못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잘 가꾸어진 산책길이 여전히 깨끗하고 한적하다. 7월이면 갖가지 연꽃들이 마다 다른 얼굴로 열 개도 넘는 넓은 연못들을 분홍과 초록으로 가득 덮는다. 제각각 명도와 채도가 다른 분홍과 초록들이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연꽃은 아라홍련이다. 700여 년의 잠을 깨고 피어난 꽃답게 청초하고 단아하다.


 꽃들은 이미 다 저버린 뒤다. 까만 연밥대가 껑충 솟아오르고 넓은 잎들은 힘을 잃고 축 쳐져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생뚱맞게 청초한 연꽃 봉오리도 간혹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참을 머물렀다.


 읍내 초입에 있는 자연 추어탕집에 들렀다.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시누부부와 넷이서 자주 함께 들렀던 곳, 식당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가장 많이 들렀던 청국장집, 자매식당도 변함없겠지. 사거리 한 귀퉁이 넓은 매장을 소유한 식자재 마트의 물건들도 그때와 다름없이 싼 가격으로 풍성했고 건너 각종 강정을 만들어 파는 뻥튀기 가게 사장님도 그대로였다.

 우리가 많이 맞춤구매했던 들깨강정 한 봉투를 샀다. 보너스로 꽤 많은 양의 다른 강정을 봉투에 넣어 건네준다.

 수시로 쑥떡을 맞췄던 떡집도 여전하다.


  그쳤다 개었다 하는 빗속을 걸어 동네 한가운데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성당으로 올라갔다. 평일 낮, 텅 빈 성당 안의 적막한 고요 속에서 그 시절 함께 했던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때 그 시간들은 어떤 에너지로 어디에 저장되어 있을까?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냥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무용한 것들일까?


 어제의 그 카페에서 형님 두 분을 만났다. 앞집 형님과 M 형님. 뒤늦게 며칠 전에야 비로소 남편 소식을 알게 된 앞집 형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신다. 덩달아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정중하고 예의 발랐던 남편을 인물 좋다고 참 많이 좋아하셨던 형님. 우리가 이사 온 바로 다음날 큼직한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과 갓 짜내린 고소한 참기름 한 병을 들고 문을 두드리셨다. 이웃으로 반가이 맞아주는 인사를 먼저 건네 오셨던 형님. 2년간 수많은 음식 그릇들이 수시로 오갔다.

 6개월 동안의 예비자 교리에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다  출석하가톨릭으로 개종하셨다.


  내가 떠나오면서 나 대신 성당 구역 반장을 맡아 주신 M형님. 작년에 발견된 암을 치료하느라 분당 서울대병원을 오르내리실 때 커다란 봉투 하나 가득 싱싱한 텃밭 상치를 따다 주시기도 했다. 경과가 좋아서 일상생활을 지장 없이 잘 유지하고 계셨다.

 가장 연세가 높으신 앞집 형님이 기어코 식사비를 내셨다. 어제 오늘 꼭 만나야 할 네 분을 얼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음에 걸리는 한두 사람이 더 있었지만 큰맘 먹고 건너뛰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우리들의 모습에 그동안의 세월의 흔적을 많이 남겼다. 이렇게 우리들이 나이 들어가는구나.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가기도 하는구나.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과 아쉬움은 시간 속에 맡겨 둘 수밖에 없다.


 그는 모든 곳에 있었고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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