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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21. 2023

모텔 W

  3년 만에 다시

 이튿날 아침, 식사를 끝내고 소파에 나란히 앉은 시매부가 말을 꺼내었다.


"다시 이런 시간 내기도 어려울 텐데 오늘은 여기저기 좋은 곳을 같이 드라이브나 합시다."


 다시는 이런 시간을 내기도 어려울까?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는 우리들. 슬그머니 일어나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흘러내리는 눈물과 격해진 감정을 잠시 다독이고 소파로 돌아왔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시매부가 조심스레 다시 말문을 열었다.


 "처수씨, 다 누리고 사이소.

 누리지 못할 게 뭐가 있습니꺼?

 나는 어딜 가도 큰소리치고 꿀리지 않지만 가방끈이 짧아서 허할 때가 많습니더.

 처수님은 다 누리고 사이소.

 애들 셋 다 잘 되어 있겠다, 뭐가 부족합니꺼? 뭐가 없습니꺼?

 행복하게 다아 누리고 사이소."


 따뜻하고 간곡한 충고며 위로였다. 나는 말없이 손수건만 적셨다.


 애초 마음먹은 대로 함안으로 향했다. 혼자 시외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시매부가 운전을 맡았다. 편도 50분 거리, 폭우 속. 차창 밖 와이퍼가 빠른 속도로 급하게 움직였다.

 함안군청 앞. 내가 원하는 곳에 나를 내려 주고 시누 부부는 마산으로 돌아갔다.

 꼭 필요한 물건만 가볍게 챙겨 넣은 배낭과 크로스백 하나, 그리고 우산. 나흘 동안 나와 함께할 동반자들이다.

 2년 동안 눈에 익숙했던 거리와 건물들 앞에 마주 섰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자주 들렀던 카페로 향했다.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 앞을 지나가야 했다. 9층 짜리 시골 읍내 홀로 아파트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멀찍이서 한참 지켜본 좁은 앞마당은 인적 없이 고요했다. 우리 집은 602호였지.

 아파트 앞 잡초가 무성했던 공터에는 새 건물이 들어섰다. 1층은 산뜻한 롯데리아 간판까지 달고 있었다. 엉성했던 삼거리도 로터리 형으로 정비되어 잘 포장되었다.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옛날 철로를 자전거길로 바꾸어 가는 작업이 그동안 많이 진척되었다. 없었던 다리도 생기고 길가로는 예쁜 화단들이 자리 잡았다.


 카페는 운치가 더 깊어졌다. 흔들 그네가 놓여 있는 넓은 잔디밭 위 바깥뜰에는 시원스러운 조경수들이 그새 무성히 쑥쑥 잘 자랐고 오목조목 아담하게 꾸며진 정겨운 실내도 한층 더 아늑해 보였다. 자주 얼굴 익혔던 안주인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심히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굳이 인사를 당기지는 않았다.


 미리 연락해 두었던 A와 K에게 문자를 넣었다. 함안 성당의 주춧돌 일꾼들이다. 그들과 삼총사였던 Y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폐암이었다. 나와 동갑내기다.

 카페로 찾아온 둘은 남편과 Y에 대한 애도를 나누며 같이 마음 아파했다. 훌쩍 떠나 버린 Y를 그리워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눈시울들을 붉혔다.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한 거리는 그 무엇으로도 좁힐 수가 없다.


 교외에서 특별식 점심을 대접받고 추천을 부탁해 두었던 모텔까지 안내를 받았다. 읍내에 있는 모텔 W. 5층 끝방이 주어졌다.

 시간에 쫓기는 A와 K가 떠났다. 이틀 후 주일날이 함안본당 91회 본당의 날이라고 했다. 해마다 그날이 되면 인근 학교 강당을 빌려 교우 전체가 참여하는 성대한 체육대회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모텔방에 가방을 넣어 두고 마음먹었던 목적지로 향했다. 산인에 있는 입곡저수지, 입국군립공원. 가는 길은 3년 전보다 훨씬 더 잘 정비되어 있었다. 데크길도 지나며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입구가 나타났다. 저수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까지만 건너 보고 돌아섰다. 남편과 함께 사진도 여러 장 남긴 곳이다. 같이 걸었던 산책로 일주가 눈에 선하지만 혼자 도전하기에는 안전상의 문제가 있었다. 겁나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아직은 해가 긴 여름날도 어느덧 뉘엿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혼자이니 무슨 일이든 더욱 조심하고 차분해야 한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다시 한 시간 길을 걸어 읍내로 돌아왔다.

 웬만하면 마산으로 와서 자라는 시누의 전화를 두 번이나 받았다. 마음 한쪽이 싸아해져 왔다.


 급한 불을 껐으니 기어이 저녁을 같이 먹자는 A와 K를 다시 만나 가벼운 샌드위치를 함께 먹고 모텔로 돌아왔다. 모텔 입구까지 따라와서는 주인아주머니께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외부 숙박 시설에 나 혼자 묵는 일은 난생처음이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자주 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나이가 많다는 것이 조금은 편하고 자유롭다. 내일까지 이틀밤을 이곳에서 머무를 것이다.

 이부자리에서 풍기는 강한 락스 내음이 조금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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