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4만 달러였던 집값이 8천 달러로 급락한 영국 북동부 폐광촌. 슬럼화된 이 지역의 남루한 빈 집으로 시리아 난민들이 이주해 온다. 일부 현지인들은 부자촌으로는 보내지 못하는 난민들을 주민들도 살기 힘든 이곳으로 보낸다며 정부의 난민 이주 정책에 강하게 불만을 표한다. 이주 난민들을 배척하고 멸시하며 집요하게 괴롭힌다.
광부의 아들 TJ는 자신의 낡은 집 일부를 술집으로 개조하여 몇 안 되는 단골손님들덕에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시리아 난민들을 돕는 인도적인 일에 앞장섰지만 배타적인 몇몇 이웃들과 단골손님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힌다. 그들의 위협적인 폭력으로 자신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애완견 마라까지 목숨을 잃는다.
생의 모든 의미를 빼앗기고 깊은 좌절에 빠진 TJ의 낡은 집.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그동안 TJ의 도움을 받아온 시리아 난민 모녀다. 두 여자의 손에는 푸짐한 음식이 담긴 커다란 접시와 따끈한 냄비가 들려 있다.
그들이 말한다.
"말보다 음식이 필요한 시간이 있어요."
광부였던 TJ의 아버지가 사회적 약자였던 동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연대, 저항, 용기를 부르짖으며 내세웠던 구호도 그러했다.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
켄 로치 감독 <The old oak >
사별자 치유 프로그램의 모든 과정에도 이 철학이 짙게 깔려 있었다. 모임 때마다 과일을 포함한 고급 간식과 차가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고 눈에 띄는 찻잔과 접시도 봉사자님이 매번 당신 집에서 제일 예쁜 그릇을 챙겨 들고 오신다고 했다. 은은하게 푸른 광채가 나는 고급스런 도자기 작품들이었다. 두 손 안을 그득히 채워오는 컵 하나만 해도 꽤 무게감이 있었다. 그 속에 담긴 깊은 헌신, 변함없는 정성과 배려, 존중이 우리 사별자들의 허허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1박 2일, 여행길에서의 세끼 식사도 미리 꼼꼼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주변 유명 맛집을 검색, 예약하여 첫날 저녁과 둘째 날 점심을 맛있게 잘 먹었다. 음식점을 둘러싸고 있는 잘 가꾸어진 자연 풍경과 내부의 예사롭지 않은 실내 장식도 더불어 음식의 격을 높여주고 있었다. 둘째 날 아침, 휴양림 숙소의 맑은 공기 속에서 먹은 구수하게 끓인 누룽지와 깔끔한 밑반찬, 상큼한 과일 후식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깜짝 선물이었다.
함께 먹는 것의 중요성이 각종 세러피로 구성된 치유 프로그램 전 과정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마지막 시간인 8회 차, 차 명상 치유 시간에는 강사분이 직접 만드셨다는 녹차와 꽃차, 그 전날 밤새워 만드셨다는 한과가 등장하였다. 그렇게 준비된 차와 후식은 단순한 먹거리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 작업에 진심이신 강사님의 장인 정신이 흠뻑 녹아들어 있었다.
드디어 미리 공지된 대로 마지막 만찬 시간이 다가왔다. 신부님과 봉사자, 수료자, 선배 수료자 등 20여 명이 차량으로 성당을 출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경관 좋은 건물의 5층에 자리 잡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한강과 멀리 강 건너 여의도가 다 내려다 보였다. 어둠이 내리면서 점점 찬란한 야경으로 변해갔다. 미리 주문해 놓은 음식들로 금세 테이블이 가득 찼다. 맛있는 음식과 정겨운 대화와 위로, 격려 가운데 8주에 걸친 마지막 치유 모임이 끝났다. 말로만 아니라 음식으로도 많은 위로와 응원을 보내 준 고마운 시간들이 많은 분들의 노고와 정성 속에서 막을 내렸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커다란 사랑으로 저희들의 치유에 전념해 주신 신부님과 수녀님, 봉사자님들, 선생님들. 고개 숙여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함께 했던 이 시간, 이 장소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이 모임의 목적과 가르침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무상으로 베풀어 주신 모든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애도 (가톨릭 성경, 집회서 38,16~23)
얘야,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처럼 애도를 시작하여라.
죽은 사람의 처지에 따라 그 시체를 염하고 그의 장례를 소홀히 치르지 마라.
슬피 울며 통곡하여라.
애도는 죽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하루나 이틀 동안 계속하여 비난받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고 나서 너 자신의 슬픔을 달래라. 슬픔이 지나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마음의 슬픔은 기운을 떨어뜨린다.
불행 가운데 슬픔도 머무르니
마음은 가난한 자의 삶을 저주할 뿐이다.
네 마음을 슬픔에 넘기지 마라.
슬픔을 멀리하고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너는 죽은 이를 돕지 못하고 너 자신만 상하게 할 뿐이다.
그의 운명을 돌이켜 보며 네 운명도 그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어제는 그의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다. 죽은 이는 이제 안식을 누리고 있으니 그에 대한 추억만을 남겨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