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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pr 12. 2024

 분분한 낙화

   생성과 소멸의 반복

 아침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반포천 산책길. 퐁퐁퐁 팝콘 터지듯 너도나도 꽃망울을 터뜨리며 하루가 다르게 눈앞 가득 펼쳐지는 벚꽃구름들. 너도나도 질세라 앞다투며 나날이 더 흐드러진 자태로 하늘을 온통 고운 분홍으로 환하게  치장시긴다. 그러나 겨우 일주일 남짓. 속삭이듯 살랑이는 미풍의 섬세한 손길에도 기다렸다는 듯 하늘하늘 나풀대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아무 망설임 없는 말끔한 얼굴로 몸을 뉘일 땅으로 향한다. 분분한 낙화.

 미약한 떨림으로 살포시 내려앉는 자리에는 이미 앞서 온 친구들이 수북이 쌓여 마련된 따뜻한 침대가 포근히 그를 맞이한다. 어떤 고통도 회한도 없이 친근한 동료들의 품에 포옥 파묻혀 버린다. 한 생을 완성하고 아무런 흔적도 아쉬움도 없이 흔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어머니인 대지와 한 몸이 되어 버린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아주머니의 부드러운 파마머리 위에도 한 잎 곱게 내려앉았다. 까만 머릿결에 대비되어 더욱 돋보이는 연분홍 고운 꽃잎 한 장.


 어제, 4월 11일은 사별자 모임, 사랑마루 제5 기가 출발하는 날이었다.

 오후 2시, 용산 성당.

 위령 미사와 이어지는 간담회에 한 발 앞선 선배로서 초대를 받았다.


 우리 다섯 명 중 한 명은 여행 중이라 네 명이 참석했다. 먼저 만나 같이 점심을 먹은 뒤 성당으로 향했다.

 이번 기는 아홉 명으로 출발했다. 옹기종기 풀 죽어 앉아 있는 그들의 조그마해진 모습. 바라보는 마음이 짠했다. 지금 그들의 귀에 무슨 말이 들리겠는가?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  안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6개월 전인 작년 10월, 남편 떠난 지 삼 개월 만에 참석했던 이 모임이 그때 나에게는 얼마나 슬픈 자리였던지. 함께 공감해 주고 따뜻하게 토닥여 주었던 이 프로그램의 모든 진행 내용과 신부님 수녀님을 포함한 봉사자들의 변함없는 세심한 보살핌이 참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던 시간이다.


 간담회 중 우리 차례가 되어 한 명씩 일어나 소감을 나누었다. 우리보다 앞선 3기 선배들 두 분도 생생한 경험담을 따뜻하게 나누어 주었다.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아들을 포함하여 두 아들과 어머니, 세 사람이 매일 오후 한 시 반, 미국 시간으로는 저녁 여덟 시에 줌으로 아버지를 위한 연도를 백일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바쳤다는 이야기는 완전 감동이었다.

 발표가 끝나자 미리 원고를 준비해 오신 거냐며 좋은 내용 유익하고 고마웠다고 수녀님이 모두를 격려해 주셨다.


 우리 넷은 자리를 옮겨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 긴 시간을 슬픔에 사로잡혀 보내지 말자.     

 나답게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나의 욕구에 소홀하지 말자.

 우리는 먼 길을 이만큼 먼저 건너온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주위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무조건 칭찬하자. 고맙다고 말하자.

 내 문제와 상대방의 문제를 구분하자.

 상대방의 단점이 안쓰러워 보여야 한다.


 한 분이 웰다잉 프로그램 강사 활동을 하고 계신 덕에 유익하고 알찬 나눔을 하게 된다. 웃음 띤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공감과 격려에 집중한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길어진 봄날, 홍도화가 곱게 핀 길가 카페의 선선한 야외 테라스에도 어느덧 저녁 햇살이 엷어졌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와 함께 서로의 평강을 빌었다.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ᆢ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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