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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01. 2024

할머니의 주말 외박

  限時的 同寢

 토요일마다 집을 비운다. 근무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군대 이등병의 초소 불침번이 아니라 칠순 할머니의 손주 잠당번이다. 주 5일 근무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퇴근하고 계시지 않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밤, 안사돈과 내가 각각 하루씩 6개월짜리 손주의 잠당번을 맡는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어린 손주. 이제 생후 6개월로 접어들었다.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혼자 잘 놀기도 한다. 하지만 잠깐이다. 졸리거나 지루하거나 배 고프다는 자기의 욕구를 소리로 표현하기 시작하면 어른 손이 가기 전까지 불만의 소리가 점점 더 높고 날카로워진다. 울음소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잠투정하느라 칭얼대는 녀석을 업거나 토닥여 재우고 한밤중 앵앵거리면 한두 번 우유를 대령하여야 한다. 기저귀도 갈고 배를 채운 녀석은 금세 콜콜 다시 잠들지만 노년의 할머니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조용히 밤 속에 머무른다. 통증 없이 조용히 누워서 쉴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 아닌가?

 조심스럽기만 한 어린 생명체가 잠시 뒤척이기만 해도 금세 긴장하여 몸을 일으킨다. 얼굴을 들여다보고 아기 상태를 살핀다. 거의 하룻밤 잠을 건너뛰는 셈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한 수 더 떠서 아주 잘 잤다고 말한다. 녀석이 많이 커서 하루하루 점점 더 수월해진다고도 덧붙인다.


 직장과 육아에 시달리다 모처럼 주말 늦잠에 빠진 부부와 세 살짜리 누나의 아침 시간도 최대한 보호해 줘야 한다. 조심조심 소리를 줄여가며 부엌살림을 살핀다. 안방의 세 가족이 일어나면 먹을 가벼운 아침을 준비한다. 과일을 깎고 달걀을 찐다. 다행히 밤새 잘 자고 일어난 아가 손주가 놀이기구에 앉아 기분 좋게 잘 놀고 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잠깐의 평화다.

 식구가 모두 일어나면 조촐하게 아침을 먹고 두 명의 아가들은 세 명의 어른들에게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는다. 집안 가득 순식간에 어질러지는 물건들로 눈길 닿는 곳마다 복잡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요구사항이 많은 두 아가들을 끊임없이 보살피며 돌보아야 하지만 이젠 그것도 일상화 되어 나름 평화롭고 따뜻한 아침 풍경이다.

 아이들의 늦은 아침 식사가 끝나면 대강 부엌 정리를 마감해 주고 내다 버릴 쓰레기들을 챙겨서 아들네 집 현관문을 나선다. 주말 근무가 끝났다.

 몸은 나른하지만 마음은 가볍고 뿌듯하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어린 손주들에게 필요한 손길을 줄 수 있다는 것, 이게 어디인가?


 돌아온 1인 가족 거주지, 우리 집. 완벽한 나의 휴식처. 도보로 20분 거리다.

 하룻밤 비워 두었던 서먹한 공간이 금세 익숙하고 편안한 얼굴을 되찾는다. 마음 는 대로 편안하게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보금자리다.

 신발 벗기 바쁘게 아들이 깔아 준 프리미엄 유튜브로 소설을 들으며 내 손길 기다리는 가벼운 일들을 처리한다. 냉장고 문도 열어 보고 의자에도 앉아 본다. 완전 휴식 시간이다.


 오뉴월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할머니로서 육아에 한몫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이 한 때이다. 밤에 통잠을 자고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어린이집에라도 다니게 되면 칠순 할머니 역할은 끝난다. 지금처럼 막중하지가 않다.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외국어로 된 인형들 이름 외우기, 어려운 게임 이름 알아듣기, 다양한 장난감 놀이기구들 작동 방법 익히기, 노래 제목 알아듣고 찾아주기ᆢ등, 많은 것들이 생소하고 낯설어진다. 소통이 어려워진다. 그때는 지금 같은 밀착 육아에서 졸업하는 때이다. 그때까지의 한시적 동침.


 보들보들 매끈매끈한 손주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가며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포근하니 품에 꼭 끌어안고 분유를 먹인다. 곤히 잠들어 있는 녀석의 예쁘기만 한 다섯 손가락을 살며시 내 투박한 엄지 손가락 하나에 포개어 감아 본다.

 달랑 거꾸로 안아 머리를 감기고 앙증맞은 조그만 욕조에 앉혀 미끄러지지 않게 한 손으로 잘 지탱하며 뽀득뽀득 얼굴을 씻기고 등과 배를 문지르고 오물오물 귀여운 다섯 손가락, 다섯 발가락을 벌려 따끈한 물속에서 조몰락거린다. 순둥이 손주 녀석은 내 손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목욕을 즐긴다. 고맙다.

 뽀송뽀송 마른 수건에 알몸을 감싸 안고 조심조심 욕실 문턱 밖으로 나와 구석구석 수분크림을 발라 주고 말끔한 새 옷과 기저귀로 갈아입힌다. 아기는 갓 올라온 새순처럼 보드랍고 여릿한 피부로 다시 예쁘게 피어난다.


 더 힘이 없어지기 전에, 아직은 할 수 있을 때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 무엇보다 아들과 며느리가 고마워하는 걸 보면 참 다행이구나 싶다. 사돈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젊은 부모들이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두 아가들이 하루하루 잘 자라고 있으니 그 또한 얼마나 고마운가?

 이 세상 모든 아가들과 부모들이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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