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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un 05. 2024

긍정을 선택해야 하는 의무

  Life is beautiful

 경산에서, 청주에서, J와 S가 집으로 왔다. 부산지역 고등학교 연합서클 흥사단아카데미에서 같이 추억을 쌓았던 여고동창 친구들이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 아카데미 수련회에서 여러 선후배들과 2박 3일, 3박 4일, 단체숙박을 한 적은 있지만 이리 셋이서만 밤을 보내는 일은 처음이다.

 여름에는 거제도 구조라 바닷가 마을 초등학교 마룻바닥 교실에서, 겨울에는 양산 영취산 자락 통도사 절 아래 여관집에서, 수십 명이 함께 묵으며 빡빡한 프로그램에 따라 기상 체조부터 교수님의 강연, 주제별 분담토론 등 꽤 진지한 시간들을 보냈던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멀리 서울에서 내려오신 김형석, 안병욱 교수님이 강연 단골 연사이셨다. 네이버에서 정다운 두 분의 얼굴을 뵈오니 새삼 밀도 높았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온다.

 J와 S. 둘은 서울대로 진학했다.

 참, 그러고 보니 10여 년 전 충북 보은 기대리 명상공동체 선애빌에서 셋이 같이 사흘을 묵었던 일도 다.


 이번 모임은 작년 말 치른 S의 딸 결혼식이 동기가 되었다. 많은 하객들에 둘러싸인 혼주 S가 말했다.

  "언제 같이 한번 만나자."

 두어달 후 셋이 만나 가볍게 집밥 저녁을 먹고 우리들의 특기이자 보물인 담소를 이어갔다. 좋은 영화도 한 편 보자며 넷플릭스로 찾아 켜 놓은 <페터슨> 화면은 저 혼자 흘러가고 우리들은 수다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새벽 2시 반, 정신 차려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단장을 끝내고 동네 카페에 들러 이제 막 만들어진 신선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아침을 해결했다. 집 뒤 둘레길을 잠깐 산책하고 다른 일정에 맞추어 먼저 출발하는 S를 배웅해 주고 돌아선 서초역 6번 출구.

 길 건너 흰물결갤러리에 걸려 있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Des Brophy 초대전

 Life is beautiful

 2023년 12월 7일(목) ~ 2024년 1월 31일(수)


 J와 함께 갤러리로 들어섰다. 1층과 중층, 2층 전시실을 가득 채운 환한 그림들은 한결같이 밝고 명랑했다. 생동감이 넘쳤다.


 국적이 미국이고 본업이 경찰이라는 작가는 말한다.

ㅡ아일랜드에서 형제가 여섯 명이나 되는 대가족에서 자랐어요. 1950년대 아일랜드는 경제 사정이 몹시 나빴죠. 그런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오는 걸 좋아했고 음악이 있으면 우리와 함께 항상 춤을 췄죠. 제 그림 중에 춤추는 노년의 여성들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의 춤추는 모습이 마음에 깊이 남아 그런 유쾌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잘 웃어요. 그림 속에서 자신이나 가족,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그게 그들을 즐겁게 만드나 봐요. 제 작품을 사 간 사람들 중 유난히 의사가 많아요. 병원 대기실에 걸어두면 아픈 환자들이 기분도 좋아지고 치료든 불안감도 해소된다는 거예요.


 즐거운 장면을 그리면 제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걸 알 수 있어요. 폭풍우 치는 하늘과 거친 파도를 그릴 때는 저도 잔뜩 긴장해서 그림 안에 집중하게 되죠.    

 사람들이 경계를 풀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기쁨을,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에너지를 느끼면 좋겠어요. 딱 두 단어, 기쁨과 에너지, 그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예요.ㅡ


 사소한 일상을 긍정적으로 공유하는 노인들의 경쾌한 삶을 그린 그림. 작가가 말한 대로 기쁨과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가벼워지는 마음과 미소 지어지는 얼굴.

 어머니의 긍정적이고 이타적인 삶이 아들의 작품 세계를 밝고 환하게 빛내고 있었다.

 그 그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저렇게 살아야지. 아이들에게 저런 어머니상을 남겨 줘야지.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의 독립적인 의연함에다 Des Brophy의 어머니가 뿜어내는 긍정과 기쁨을 덧입혀야지."


 부활절이 있었던 4월과 가정의 달인 5월. 이제 10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는 남편과의 사별이 다시 한번 큰 빈자리로 다가왔다. 나의 상실감도 크지만 아이들의 공허도 깊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혼재해 있는 상실감과 그리움, 싸아한 아픔은 흐르는 시간 속에 녹아들어 내보이지 않는 마음속 깊은 곳에 점점 무겁게 가라앉아 가고 있다. 더 깊고 더 진하게.   

 하지만 이 모든 것 품어 안으면서 잊지 않으려 한다.

 긍정을 선택해야 하는 의무.

 Life is beautifu, 인생은 아름다워.


 이 제목으로 마음 깊이 파고들었던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1997년 작, 제2차 세계대전 시 유태인 살인 공장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말기암을 앓는 아내 염정아와 그의 남편 사회복지사 류승룡이 엮어가는 2022 작 우리나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역경에 처한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 사랑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여 준다.

 주제는 기쁨과 에너지,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 Des Brophy의 그림들과 똑같다. 긍정적인 선택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며 축복이다.


 Life is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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