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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29. 2024

막내 화이팅~♡

 살아 있는 우리들의 귀한 시간

 2024년 8월 28일, 수요일.

아침 일곱 시의 동네 골목은 한산하다.  이미 사방을 환하게 밝힌 늦여름 아침 햇살과 주택가 높은 담 위로 뻗어 나와 진분홍 어여쁜 꽃송이들을 매달고 바람과 친구 되어 한들거리는 배롱나무 짙푸른 가지가 골목의 주인 행세를 한다.

 옥색 하늘을 배경으로 무성한 초록 잎들 속에서 활짝 얼굴을 드러낸 매력 만점 꽃송이들을 핸드폰에 담았다. 마음에 드는 자태를 담기 위해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가며 움직여 본다. 상공에 걸려 있는 귀한 선물 하나를 핸드폰 속에 고이 챙겨 넣었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던 고개를 땅으로 내리는 순간, 마음은 잠시 접어 두었던 어두움 속으로 다시 가라앉는다.

 오늘은 네 살 아래 막내 남동생이 큰 수술을 받는 날이다.

 새벽 5시 알람을 맞춰 놓고 자정을 넘어 잠자리에 들었던 어젯밤. 핸드폰 화면에는 4시간 10분 후 알람이 울린다는 안내 자막이 떴다.

 멀리 수도원에 계시는 신부님께 생미사 봉헌을 부탁드리고 본당 6시 새벽 미사에 참석했다. 동생이 힘들고 긴 치유의 시간을 잘 지나올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는 환희의 신비 5단, 묵주 기도까지 바쳤다.


 미사 중,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엄마 생각이 났다. 2002년 봄, 86세로 동생네 집 목욕탕에서 샤워를 끝내고 쓰러지신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1959년, 마흔을 넘긴 나이에 장남과 스무네 살 터울 지는 막내를 임신했을 때 엄마의 고뇌는 깊었다. 일곱 형제 중 다섯째인 나는 다섯 살, 두 살 터울 내 아래 여동생은 세 살이었던 그때.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나보다 열네 살, 여덟 살 많은 두 언니들로부터 그 당시 깊이 고민하셨던 어머니의 갈등과 번민을 전해 들었다. 당시로서는 노산이었던 해산의 진통이 시작되자 동네 조산원의 도움을 청해 놓고 산방으로 들 때, 댓돌 위에 벗어 놓은 당신의 하얀 고무신 두 짝을 내려다보며 

 '내가 다시 저 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을 하셨다는 서러운 말을 먼 훗날 어머니로부터 직접 들었다. 늘 씩씩하고 강건했던 어머니가 잠시 지으시던 처연한 표정. 다행히 어머니는 막내가 마흔을 넘을 때까지 살아 계시면서 험난한 길을 걸어가는 막내를 많이 도우고 보살피셨다.


 그러면서 늘 하시던 말씀.

 "우리 ㅇㅇ는 누나가 넷이나 되니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

 그런 막내가 예순을 넘은 나이에 열 시간이 넘게 큰 수술을 받는 날이니 떠나신 지 20년이 넘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무심할 수 없었나 보다. 묘하게도 어제, 8월 27일은 성녀 모니카 기념일이었다.


 부지런하고 강인하셨던 어머니는 열심한 불교 신자셨다.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절에서 나누어 주는 쌀 봉투를 맡아 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쌀을 모아 큰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꽤 먼 거리에 있는 공원 아래 절까지 날라 주시던 어머니. 늘 사람들이 들끓었던 우리 집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두 명씩, 시도 때도 없이 누렇고 두꺼운 봉투에 쌀을 담아 들고 열려 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오시던 모습. 마당 한가운데 놓여 있는 나무 평상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방앗간이었다. 아련한 옛날, 60년 전의 일이다.


 7남매를 하나같이 헌신적으로 보살피시며 최선을 다해 돌보시던 어머니. 강한 노동으로 무릎이 아픈 것 말고는 약도 병원도 거리가 멀었던 어머니. 86세까지 왜 노화의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혼자 씩씩하게 버티시며 가지 많은 나무에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막느라 노심초사, 애쓰시는 일생을 보내셨다.


 돌아가시기 2,3년 전, 여든을 넘으신 나이에 처음으로 경희한방병원에 일주일 간 입원하셔서 무릎 통증과 두통을 다스리던 때, 어머니는 나의 권유로 가톨릭에 입교하셨다. 병원원목팀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셨다. 세례명은 모니카.


 삶의 허무에 갇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는 자식의 회개를 위해 온 마음과 몸을 바쳐 기도하신 어머니, 성녀 모니카.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시간과 어머니의 희망을 신앙에서 찾은 어머니, 성녀 모니카.

 마침내 그 아들은 회개하여 자기 자신을 찌르던 악습으로부터 벗어나 큰 빛인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로 우뚝 섰다. 자신이 남긴 불후의 고전 <고백록>에서 그는 안타까이 외쳤다.

 ㅡ늦게야 당신을 사랑하다니,

 오래이면서 늘 새로운 아름다움이여.

 이다지도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다니.ㅡ

그리고 자진해서 순교의 길을 걷는다.


 10여 년 전, 동생도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 라파엘. 치유의 천사.


 오래 전 세상 떠나신 어머님의 간절한 모성과 전능하신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동생이 큰 수술과 힘든 회복의 길을 잘 걸어가길 간구하는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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