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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22. 2024

다시 열린 문

  동선, 이연 共著 <영화처럼 산다면야>

 모레 있을 출판기념회엘 다녀와서 쓸 생각이었다.

열여덟 편의 영화에 대한 두 분의 깊은 사색과 진한 감동이 넓고도 깊게 펼쳐지는 책, 동선ㆍ이연 지음 <영화처럼 산다면야> 리뷰.

 아침에 올라온 브런치 글 한 편이 그 마음을 지금 이 자리로 데려와 버렸다.


 매거진 <수다만 떨었을 뿐인데>의 스무 번째 글. ㅡ여름날은 시들지 않으리. 영화 <애프터 썬>. by 여름.ㅡ

 읽어 내기에 만만치 않은 긴 글이지만 매번 푹 빠져서 이 매거진의 모든 글을 읽게 된다. 캐나다에 계시는 동선 님과 서울에 사시는 여름 님, 이 두 분이 이번 책을 펴내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하는 제작일지 20편. 엄청난 양의 글들이 매거진을 통해 소개된다.


 이틀 후로 다가온 출판기념회를 코앞에 두고 있어서일까? 오늘 글은 더 많이 여름 님의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스스로 정의 내린 자신의 정체성.

 '가을인지 겨울인지 천지 분간 못하구 여름으로 달려가는 땡깡쟁이.'

 선배 언니의 입을 통해 밝히는 정체성.   '레퍼런스가 많아서 산만해.'

 이 두 문장에서 여름 님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읽고, 듣고, 보고, 느끼고, 만나고, 걷는, 그리고 쓰는 여름 님의 모습. 활활 타오르는 여름 님.


 도대체 언제 먹고 언제 자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묻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질문을 던진다. 그 모든 시간들에 대한 기억과 느낌을 어찌 이리 많이, 선명하게, 기억하고 기록하는가? 민감하게 깨어 있는 이들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민함과 그들에게 특혜로 주어지는 순간의 희열들이 그대로 전해진다.


 지금은 다 내려 버린 뜨거웠던 브런치 글들. 그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많은 글들을 기억한다. 오래 전의 인연 '사부'와 고등학생 '딸'에 대한 마음을 적었던 글. 가슴 깊숙한 곳에 아프게 와닿았다. 브런치에서 만난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의 뜨거운 교류에 대한 기록도 범상치 않다. 이번 출판기념회의 사회를 맡은 폴폴 님과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나보다 족히 20년은 더 젊은 그들이 서로를 향해 뜨겁게 뿜어내는 열정의 온도는 높았고  멀리까지 풍기는 향기의 강도는 했다. 나는 뒤에서 조용히 그들의 열정과 향기에 취하는 행복한 수혜자였다.  


  여름 님의 오늘 글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자유로운가요?

 그대의 固有時는 언제인가요?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아요.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입니다.

 문이 열리려면 먼저 닫혀야 합니다.


 나에게 닫힌 문은 14개월째로 접어든 남편과의 사별이다. 둘이서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으로 가꾸고 싶었던 시간과 공간들. 그 꿈을 가꾸는 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아주 어렵게 이어졌고 어느 순간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벗어난 닫힌 문이 되어 버렸다. 그 정원 안에서 마구 자라나던 날카로운 가시덤불과 엉클어진 넝쿨들. 그것들에 둘러싸여 찔리고 긁히며 아파했던 시간들.

 내딛을 한 치 앞, 발밑만 내려다보느라 미처 올려다보지 못한 높은 곳에 맺혀 있는 귀한 열매들과 무성한 풀숲에 가려 있어 찾아내지 못했던 작은 보석들.

 나는 아직 많은 한계를 지닌 이 땅에서, 남편은 모든 걸 떨쳐낸 자유로운 곳에서, 애도와 감사를 전하고 우리들이 연출하던 개구리와 전갈의 모습에 잔잔한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내가 찔렀던 독침, 내가 맞았던 독침.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서로가 자유로운 固有時를 누리고 있다고 꿈길에서라도 알려 주고 고마워하고 있으니, 천생연분임이 분명하다. 

 "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과 그리움, 이제 모두 내려놓는다.


 ㅡ 수영 못하는 전갈이 물살이 센 강을 건너려고 개구리에게 등에 좀 태워달라고 했어.

 개구리는

 "넌 전갈이라 분명 독침으로 날 찌를 거고 그럼 우린 둘 다 죽게 돼." 하면서 거절해.

 전갈은

 "절대 안 찌를 테니 제발 좀 태워 줘."

하고 사정했어.

 결국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우고 헤엄치며 강을 건너는데 강 중간쯤에서 전갈은 독침으로 개구리를 찔러 버려.

 개구리는 울면서 전갈한테 말해.

 "우리 둘 다 죽게 되는지 뻔히 알잖아? 근데 대체 왜 날 찌른 거야?"

 전갈은 거센 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죽어가는 개구리에게 울면서 말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독침으로 찌르는 게 그게 내 천성이라."

 영화 <크라잉 게임> 중에서. by 여름.ㅡ


 지금 자유로운가요?

 매 순간 나를 향해 물어보아야 할 질문, 명쾌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설혹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내가 선택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300페이지의 두툼한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멀리 캐나다에서 고층건물 시설관리기사로 일하면서 절반에 해당되는 양의 글을 쓰고, 책 표지를 비롯하여 살아 꿈틀거리는 이십여 편의 삽화를 그려 넣으신 동선 작가님. 굵고도 섬세한 작가님의 세계에 대해서는 감히 언급도 해 보지 못한 반 쪽 짜리 리뷰.

 급한 마음에 미완성 글 한 편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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