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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9. 2024

40대 남자의 치열한 삶, 아름다운 꿈

시골의 글 쓰는 책방 할아버지

 브런치 작가, 시골 서재 강현욱 님의 에세이집, <살짜쿵 책방러>. 출판사 '산지니'의 기획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작은 위로와 위안의 길을 찾는 에세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가로 12cm, 세로 20cm의 아담한 책이다. 표지도 아주 소박하다. 시골 서재의 귀여운 판 "달과 벗 그리고 글, 밭"이 앙증스럽게 그려져 있다. '펜 들고 삽 들고 삶과 책방을 그립니다.'라는 소개 문구와 함께.

 소망하는 꿈을 키우고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하는 넉넉한 사랑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초록이 주는 생명력과 그 뒤에 무심한 듯 서 있는 아담한 집에서 준비되는 따뜻한 밥상이 그려진다. 220페이지에 달하는 본문 속, 어느 한 페이지 빠짐없이 깨어 있는 성찰과 사랑의 행동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 판매 수익금은 전액 아픈 아이들의 긴급 의료비로 사용된다.


 전반부에는 '자연, 책 읽기, 글쓰기, 나를 살린 것들.'이라는 큰 제목 아래 한낮에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한밤에는 텃밭을 가꾸고 글을 쓰는 작가님의 삶과 생각을 들려주는 에세이 열 편이 실려 있다.


 시골 서재 부엌의 자그마한 동쪽 창으로는 밤이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만나는 일을 지켜보고(p34) 침실인 다락방 동쪽 창으로는 달기둥이 호수에 드리워지는 것을 바라보다 잠이 든다. 꿈을 꾸다 꿈으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p41)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는 창, 멀리 지나온 길을 성찰하는 창이 서쪽으로 난 창이라면 아픔을 딛고 자신부터 사랑하기 위해 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을 향해 한 발짝씩 있는 힘껏 앞으로 나아가는 창은 동쪽으로 난 창이다.


 작가는 동쪽으로 난 창을 향해 크게 날개를 편다. 3년 전에 마련한 청도 땅을 가꾸어 서재 건물을 짓고 텃밭 농사를 짓는다. 지난해에는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학했다.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참된 여행길 (p80)의 주인공이 되어 씩씩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은 나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일(p111)이라는 생각으로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자연을 가꾸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행복을 전하려 할 때 더 행복해진다(p111)는 기쁜 마음으로 찾아온 이들에게 정다운 대화와 따끈한 집밥 요리를 대접한다.

 텃밭을 서성이는 길고양이에게 '보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깨끗한 은그릇에 좋아할 만한 먹거리를 준비해 주고 갈대를 꺾어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다.

 자신의 별에서 정성스레 장미를 가꾸고 여우를 기다리는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한다.


 후반부에 소개되는 열 개의 독립 책방과 책방지기 이야기는 또 하나의 진한 꿈속이다.

 강화책방, 국자와주걱. 포항책방, 리본. 창원책방, 19호실. 단양책방, 새한서적. 문경책방, 반달. 통영책방, 봄날의책방. 안동책방, 가일서가. 영주책방, 좋아서점. 청도책방, 봄날. 대구책방, 환상문학.


 전국 각지의 이름난 동네책방들을 찾아 일일이 발품팔며 책방지기와 만나 나눈 정겨운 사연들이 실려 있다. '책방지기들의 꿈과 정성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 '종이와 책의 힘을 믿는 동네책방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작가님의 문학적 소양이 흠뻑 녹아들어 있는 소제목들과 주제를 담은 한 줄 문장들이 읽는 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통영책방, 봄날의책방에게 붙여놓은 소제목 두 문장은 끝내 내 마음에 큰 돌 하나를 던졌다. '사랑은 그곳에 남아', '그 시절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p164)

 통영 국제음악제가 열리던 밤이 생각났고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을 담고 있던 기념관들과 제자가 사모님으로 있는 교회를 찾아갔던 낮이 생각났다. 옆에 있었던 남편이 생각났고 죽음을 코 앞에 두고 독대하던 김약국의 절대고독이 가슴 시렸다.


 작가는 말한다.

 "초라하게 서 있던 그 시절의 나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녀가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사랑을 주고받던 묵직한 그 시절의 추억은 내 생애 얼마 남아 있지 않는 자부심 중 하나였다. 봉수골 벚꽃나무 아래 책방이 하나 있고 그곳에 사람이 있네. 그리고 사랑의 추억도 있었다."(p171)

 눈물 나게 하는 글, 읽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연을 글로 남기고 싶게 하는 매혹적인 화두를 담고 있다.

 책 전체에 흐르고 있는 몽환적이고 유려한 문장을 대하면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 떠오르고 아름다운 책방지기들의 맑은 이야기를 읽으면 무라야마 사키의 <오후도 서점 이야기>가 생각난다.


 삶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p216)

 오늘 내 삶의 기쁜 일은 강현욱 님의 <살짜쿵 책방러>를 읽은 일이며 뜨거운 마음으로 리뷰 한 편을 작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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