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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7. 2024

서쪽으로 난 창

  박지향 Galadriel 님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들의 재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하며 떡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다볼 뿐이라는(p186) 작가님. 나는 이 문장을 그대로 빌려 써 본다.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고, 요리 잘하고, 사랑 넘치는 작가님, 작가님의 재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동시 <나무>로 우수상을 받으며 시인이 되셨다는 작가님.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출간했다는 책 <우리 엄마>. 삐뚤빼뚤 글을 쓰고 삽화를 그려 도화지를 자르고 풀로 붙여 만들었다는, 손바닥만한, 세상에 단 한 권뿐이었던 수많은 동화책들. 부모님의 기대는 의사였다고 하니 학업 성적도 우수했으리라. 본인의 희망대로 화가가 되었지만 2005년 문학마을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캐나다 한인문학가 협회회장을 역임하였고 밴쿠버 중앙일보에 글을 연재 중이라니 이미 글쓰기의 프로세계에 굳건히 발 딛고 계신다. 미모도 빼어나시다.


 글과 그림으로 갈고닦은 인문학적 소양을 장착하고 '사람 사는 세상'으로 부지런히 내딛기 시작했다는 사랑의 행보. 얼마나 고운 씨를 뿌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맺고 계실까?

 간혹 행간에 숨겨 놓은 고통들이 읽힐 때면 내 마음 한 귀퉁이에도 뭉근한 아픔이 차 오른다. 일평생이 행복하기만 하거나 불행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작가님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소망한다.

 작가님의 건강을.

 작가님의 평안을.

 집 뒤 2km에 달하는 산책로가 그녀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기를.


 작년 가을에 사놓았던 작가님의 책을 기억한다.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들이 하나 둘 늘어만 가는 소박한 책꽂이 앞에 섰다. 브런치 글 읽기와 글쓰기에도 빠듯하게 쫓기는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막상 책장을 펴는 일이 만만치 않다. 눈길 끄는 제목만을 보며 그 앞에 잠깐씩 머물렀던 책, <서쪽으로 난 창>.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다. 뜻밖의 큰 선물, 사랑으로 가득 채운 브런치 글 한 편을 건네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읽지 않는 자, 유죄.'

 대문 사진부터 울컥 마음을 울렸다. 자주 아프고 막막한 심정으로 떠올리는 장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의 마지막 장면이다.


 아무도 없는 듯한 나룻배 바닥에는 동그랗게 몸을 옹송거, 작고 노쇠한 할머니가 낡은 담요에 싸여 흐릿한 의식으로 몸을 뉘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공주'라고 부르며 있는 힘을 다해 여기, 이곳까지 살뜰하게 아끼고 부축해 온 남편은 이 마지막 길도 당연히 함께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뱃사공은 남편의 승선을 완강히 거부한다. 되찾은 기억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부부생활이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고 받은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할머니만을 태운 배에 올라 탄 사공은 이제 서둘러 노를 저어야 한다. 휘청거리며 물에 젖은 바짓자락을 끌고 비탄에 젖어 뭍을 향해 멀어져 가는 저 허랑한 남자 노인과는 반대 방향, 피안의 섬을 향해서.


 내 마음을 다 읽어내신 섬세한 작가님.

 최고의 고급진 집밥 요리를 담은 4단 도시락과 보온병에 담긴 된장국, 격조 높은 안목으로 고른 칠레산 포도주까지 담긴 정성스럽고 풍성한 소풍 바구니를 유려한 문장으로 펼친 글밥에 담아 보내셨다. 멀리 캐나다에서 2024년 8월 9일.


 나는 이틀이나 지나서 다른 작가님의 추임새를 받고서야 그 글을 읽었다. 데리고 자던 손주의 칭얼거림에 따끈한 우유 한 병을 타서 먹이고 말똥하게 이 깬 일요일 새벽 네 시. 두 살 터울, 시샘 많은 누나는 꿈나라에서도 엄마 아빠를 독점하여 안방에서 잠들어 있고 할머니 몫이 된 순하고 착한 어린 손주도 다시 쌕쌕 평화로운 잠나라로 빠져들었다. 일주일에 하룻밤 머무는 결혼 7년 차 아들네 집. 어둠 속에서 가만히 읽은 길고 뜨거운 한 편의 브런치 글. 조금 울었다. 뜨겁고 조용한 눈물.


 서쪽으로 난 창이 있는 방을 떠올린다. 창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일 것이다. 멀리 눈길 던질 수 있는 적당한 높이에 네모 반듯하게 단정히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자신이 선과 악의 판단 주체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죄인이 되어 동쪽으로 쫓겨난 이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시간을 막연히 꿈꾸며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낙원이 있는 서쪽. 저물어가는 저녁나절, 찬란하게 주위를 물들이던 장엄한 노을이 점점 자취를 감추다 이윽고 깜깜해지는 서쪽. 그 서쪽으로 난 창가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서 있을까? 그리고 나는?


 캐나다의 리타이어먼트 홈, 양로원에 입사하여 이벤트 코디네이터, 행사 진행 담당자로 근무하셨던 작가님은 그들의 적막한 등 뒤에서 말을 건다.

 ㅡ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당신의 이야기, 제가 대신 할게요. ㅡ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며 지내는 곳에서 리스너, 경청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평균 85세의 400명에 달하는 인생을 들었고 그중에 발표를 허락받은 42분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2023년 봄.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용서하고 용서받는, 위로하고 위로받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사랑의 꽃을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p6), 깊은 지성과 풍부한 감성으로 다정하게 공감하고 사랑스럽게 감싸 안은 아름다운 책.


 250여 쪽에 달하는 책 속에는 작가님이 읽고 보고 들은 수많은 책과 영화, 음악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불려 나와 독자들에게 귀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 다 찾아서 읽어 보고 관람하고 들어 보며 작가님의 풍요로운 감성의 세계에 같이 빠져들고 싶게 한다. 그러면 왠지 작가님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어느 쪽을 펼쳐 보아도 아름다운 인간의 향기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는 책. <서쪽으로 난 창>. 가장 아끼는 이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세상 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선물해 주신 작가님, 박지향 갈라드리엘 님.

 강인한 육체와 정신, 의지의 소유자. 남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놀랄 만한 통찰력으로, 자비심과 이해심으로 타인을 바라보았으며 많은 이들에게 선의를 베푼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요정. 위엄 있고 아름다운 귀부인. 절대 반지의 유혹을 물리친 유일한 인물. 갈라드리엘 님.


 건강하세요.

 평안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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