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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일지 1

미끄덩~!

by 서무아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2주 전 그날,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낮 동안 큼직한 일 두 가지를 결정하고 처리했다. 예비 신혼부부와 부모인 이웃 교우 부부가 방문하여 3월 21일 이사를 하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나는 3월 20일 이 집을 비울 것이다. 또 하나는 성서백주간 마지막 날의 저녁 회식과 묵상 나눔.


금요일 밤인 어제에 이어 오늘 밤도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아들네 집, 14개월 차 어린 손주 잠 당번이 약속되어 있었다.

잠깐 들른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배낭 가방에 들어 있는 성경책을 꺼내고 과일을 챙겨 넣었다. 10시 30분. 예상보다 늦어진 시간에 분주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급한 마음은 발밑의 발걸음보다 늦어진 시간에 더 쏠려 있었던 모양이다. 늘 조심해서 다니던 이웃 아파트 입구의 경사진 길, 그 위에 눈이나 얼음은 없었지만 겨울밤의 차갑고 눅눅한 습기가 닳아서 매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촉촉이 내리 덮고 있었던 듯하다. 왼발을 내딛는 한 순간 미끄덩, 그대로 주저앉았다. 일어서지지가 않았다. 한동안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겨울밤 대로변. 집중하여 바로 옆에 있는 골목 경계석으로 옮겨 앉았다. 쭉 뻗어 다리를 펴고 전화를 넣었다.

"오늘은 너무 늦어서 못 갈 것 같아, 수고해."

며느리는 밝은 목소리로 잘 쉬시라고 대답했다.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찌릿찌릿 전해오는 통증을 참으며 5분여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순간 더 이상은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다. 후에 알게 된 이웃들은 왜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냐고 안타까워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넘어진 그 자리에서 바로 119를 부르는 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 뭘 몰랐던 것이다.


네이버 창을 열어 시키는 대로 발목 주위 빼곡히 파스를 붙이고 차가운 찜질을 해 가며 다리를 높은 곳에 두고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시커멓게 멍이 돋아나고 퉁퉁 부어 오른 왼쪽발과 다리를 최대한 보호해 가며 책상 회전의자를 이용해 아침을 차려 먹고 점심을 챙겨 먹었다. 일요일인 그날, 세 아이들이 모두 내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후 2시의 약속. 3시 경이 되자 모두 모였다.

경위를 전해 들은 아이들은 365일 진료를 하는 병원을 검색하였다. 아들 부부는 어디서나 손이 가는 어린 두 손주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큰사위의 승용차로 정형외과를 다녀왔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발목 위 조금 큰 뼈의 3분의 1 정도가 약간 벌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6주 진단을 내렸다. 압박붕대, 냉동치료, 레이저치료 등을 받고 조제약을 처방받았다. 반기브스와 함께 양 겨드랑이에 끼는 목발도 한 쌍 생겼다.

이렇듯 한 순간 부상자가 되어 버렸다.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세 번째의 방문 치료를 거쳐 지난 화요일인 25일, 근처에 있는 지인의 병원으로 진료처를 바꾸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안전을 위해 통기브스를 했다. 2주 후 경과를 보러 다시 진료를 갈 것이다. 매번 아들의 휴무 요일에 맞춰 진료 일자를 잡는다. 아직 멍은 시커멓게 남아 있고 여기저기 위치를 바꾸어 가며 순간순간 날카로운 통증을 보내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로 2주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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