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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위로자

성서백주간

by 서무아

121주에 걸쳐 구약, 신약, 전체 성경을 통독하는 성서백주간.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3년 간의 성경 읽기, 묵상, 나눔, 성서백주간이 끝났다. 33기 아멘반이라는 이름으로 형제님 두 분과 자매님 다섯 분, 일곱 분이 함께해 왔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언제 이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냐며 다들 놀라워한다.

그래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구나. 그 사이 남편을 떠나보낸 나의 상실을 조용히 함께 애도해 주었으며 나의 70세 생일을 따뜻하게 축하해 주었다.


10여 년 성서백주간 가족이 되어 2년 간은 대표라는 자리까지 맡아 열과 성을 바쳤지만 늘 바빴고 시간 없다는 핑계로 겉무늬만 요란하게 뛰어다녔다.


세 아이들이 모두 결혼을 하고 독립하여 각자의 보금자리를 찾아간 시간. 46년 간의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남편과 둘만 남은 시간. 서울을 떠나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년을 남편의 고향, 함안에 머물렀다. 그곳 귀촌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온 본당. 정신적인 나의 귀향이었다.


성서백주간을 찾았다. 이번에는 시작하는 마음부터 달랐다.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성껏 읽고 정성껏 기록을 남겼다. 100페이지짜리 대학노트 14권, 1354페이지로 된 나만의 성경이 탄생했다. 내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매주 토요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성당 교리실에서 만나 일주일 간 정해진 분량대로 읽어 온 말씀을 나누었다. 말씀으로 위로받고 반원들에게 격려받으며 하느님 사랑에 푹 빠진 시간들이었다.


읽기 일정은 꼭 성경 순서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일치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만드신 프랑스의 마르셀 르 도르즈 신부님의 깊은 묵상과 의도에 따라 시대 순으로 조금씩 순서가 바뀐다. 통독의 제일 마지막 순서는 요한묵시록이 아니라 요한복음이다.

만약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될 때 구약 46권, 신약 27권, 총 73권의 성경 중 한 권만 가져야 된다면 어느 책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절대적인 대다수가 선택한다는 요한복음.

마지막 7주에 걸쳐 읽고 쓰고 생각하는 요한복음은 뜨겁고 깊었다.


제일 마지막 날인 121주째의 독서, 요한복음 18장 ~ 21장.

ㅡ예수님이 잡히시고 고통받는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신다.

예수님이 심문받는 대사제의 저택 안뜰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나는 저 사람을 모르오."

두렵고 떨리는 긴 밤이 지나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 그는 뜨겁게 흐느꼈다.

3년 세월.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스승으로 섬기며 따랐던, 행복했던 시간이 한순간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손에 잡히지 않는 한 줌 물거품처럼. 그분을 잃은 뻥 뚫린 가슴속에 고통스러운 죄책감만 가득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상실과 회한만을 안고

예루살렘을 떠나 터덜터덜 고향 갈릴리의 바닷가로 돌아온 베드로.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21장 3절.

"우리도 함께 가겠소."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21장 4절.

"얘들아, 뭘 좀 잡았느냐?" 21장 5절.

"못 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21장 6절.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주님이십니다." 21장 7절.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한가히 배로 노 저어 갈 수 없었다. 그립고도 그리운 스승님을 어서 빨리 만나 뵈어야 했다.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물에 뛰어들어 그분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겉옷을 갖추어 입는 흠모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21장 12절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21장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이 세 번이나 거듭된다.


끝없는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는 예수님과 면목 없는 죄인이 된 베드로의 재회 장면.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연약하심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반복하시는 예수님, 통회의 마음을 똑같은 답으로 세 번 고백하는 베드로.

예수님께서 사명을 주신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가슴에 싸한 통증이 밀려왔다. 어느새 남편과의 재회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 너무나 그리운 마음. 정말 좋아했으면서, 정말 고마워했으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미안함. 만약,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꼭 다시 만나 면목 없어 고개 숙여 고백하고 싶은 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을 당신은 아십니다."

3년 간의 성서백주간 통독이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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