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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 사랑 목련화

손녀의 대학 입학식

by 서무아

학생들에게는 실질적인 한 해의 새 출발이 시작되는 3월.

3월을 하루 앞둔 2월 28일, 손녀 J의 대학 입학식이 있었다.

기쁘게 참석하여 점심을 함께할 계획이었으나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난감해졌다. 통깁스를 한 상태로 딸과 사위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 외출에 나섰다.


7시 30분, 목동 집에서 출발한 딸 부부는 8시 30분, 나를 태우러 왔고 우리 집에서 손녀가 입학하는 대학까지 또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어느덧 쉰을 넘어 대학생 딸을 두게 된 사위는 나를 귀가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느라 오늘 하루 다섯 시간 남짓 밀리는 도심길을 운전하게 되었다.


시작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학부형 관람석은 꽉 찼고 그 옆에 임시로 마련된 휴게 공간에서 흐릿한 화면으로 입학식을 볼 수 있었다.

입학 축하 어른들의 물결이 계속 이어지고 준비된 모든 공간이 사람들로 꽉 찼다. 식이 진행되는 한 시간 남짓 계속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크리스천 정신에 바탕을 둔 기도와 축하, 총장 말씀이 이어졌다. 요즘 사회에서 듣기 어려운 배려와 헌신, 나눔과 섬김을 이야기하는 진지한 분위기가 마음 깊이 감동을 주었다.

바른 인성을 강조하며 도전과 혁신이라는 주제로 미래 지향적인 꿈을 격려하는 총장님 말씀은 모든 청중을 사로잡았다. 10분 남짓, 꽤 길다고 여겨지는 연설을 원고를 전혀 보지 않으시고 진정성을 담아 또박또박 열정적으로 토해내셨다.


"여러분의 탁월한 선택에 이화는 충분히 보답할 것입니다."


이 한 문장으로 3819명 신입생들의 가슴에 자긍심과 애교심을 한껏 북돋우셨다. 1886년 1명의 학생으로 출발하여 현재 26만 동문을 배출해 낸 고귀한 전통을 기억하라며 진정한 권위를 갖춘 스승으로서 후배인 제자들에게 진한 사랑을 전해 주는 시간이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치가들도 국민들에게 저런 자부심과 희망이 담긴 연설을 들려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과 아쉬움이 간절했다.

나중에 손녀에게서 전해 들은 바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영어로 원고 없이 긴 연설을 하셨다고 한다.

18대 총장에 부임하신 지 한 달 되셨다는 반짝이는 총장님이 우리 아이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빛나는 대학 문화를 찬란하게 꽃 피워 가기를 소망한다.


이어지는 이화브라스앙상블의 Misty for Brass Quintet 축하 연주와 30대 젊은 미남 교수부터 70대 넉넉한 풍모의 인자한 노교수까지 열 명의 남성교수중창단이 춤과 노래로 준비한 익살스러운 입학축하 메들리공연은 참석한 모두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첫 손녀의 대학 입학을 지켜보는 자리.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감격적이었던 대학 입학식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2000년, 00학번, 25년 전의 둘째 입학식이 가장 뜨겁게 마음에 남아 있다.


그날, 그 자리도 두루마기 차림의 시골 할아버지를 비롯해 많은 학부형들로 대강당이 꽉 찼다. 명문대학에 아들, 딸, 손자, 손녀를 입학시킨 어르신들의 뿌듯한 표정들. 3월 초의 꽤 차가웠던 봄샘 추위도 아랑곳없이 훈훈한 열기가 공기 속을 떠돌았다.


박사 가운을 갖춰 입은 총장, 학장 교수님들의 폭넓은 검은 가운과 무거워 보이는 사각모들이 단상을 가득 채우고 엄숙하고 긍지에 찬 입학식이 진행되었다. 자랑스러운 후손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지켜보는 마음들도 뜨겁고 흐뭇했다.


마지막 순간, 신입생 환영 축하곡 순서에서 그 느낌은 절정에 다다랐다. 연미복을 갖춰 입은 풍채 좋은 남자 한 분이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온 강당 공기를 순식간에 우아한 선율의 떨리는 파장으로 바꾸는 화려한 반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곡이었다.


<목련화>


엄숙하고 딱딱하게 긴장되어 있던 분위기를 일시에 뒤집으며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반주도 잠시, 곧이어 확 터져 나오는 힘 있고도 화려한 테너 목소리가 식장을 한 치 빈틈없이 빛으로 가득 채웠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가진 한 명 한 명 신입생들은 모두 한 송이 꽃이 되어 '오, 내 사랑 목련화'로 피어났다.


희고 순결한 봄에 온 가인

새 시대의 선구자

배달의 얼

순결하고 강인하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아름답게 살아갈 젊음

하늘 보고 웃음 짓고 함께 피고 함께 지는 인생의 귀감

우아하게 향기롭게 영원히 값있게 살아갈 푸른 청춘


힘 있게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노래의 날개를 타고 내 마음도 한 송이 희고 순결한 목련화가 되어 봄날의 푸른 창공으로 넘실대며 날아올랐다.

축하곡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노래 <목련화>.

역시 멋진 학교라는 자부심이 학부모인 내 마음에도 묵직한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도 그 노래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25년 전 그 감동을 떠올리며 중학교와 대학교에 입학하는 두 손녀에게 축하 카드 빼곡히 <목련화> 가사를 써넣었다.

ㅡ 오 내 사랑 목련화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인생의 골목골목에서 만나는 새 출발. 이제는 내가 아닌 후손들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지켜보는 마음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여전히 뿌듯하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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