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곳
책꽂이 한 귀퉁이에 들쑥날쑥 꽂혀 있는 낡은 공책들이 꽤 많다. 얇은 것, 두꺼운 것, 큰 것, 작은 것. 여기저기 서른 권이 넘는다. 계획적이거나 꾸준하지 못한 탓에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른 공책들이 그때그때 다양한 필기도구와 필체들로 제각각 씌어진 품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필사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심리책, 소설책, 시집, 수필집, 신앙서적 등에다 만화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영화와 연극, 전시회, 연주회 관람 기록, 일지 메모나 일기, 편지글 초본도 있다. 외양이 지저분하다 보니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매번 다시 그 자리에 꽂아 둔다.
아무 노트나 펼쳐 아무 페이지나 읽어 보아도 다시 다른 곳에 옮겨 적고 싶은 좋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깊이 생각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내 삶에 반영하기보다는 닥치는 대로 읽고 베끼고 또 다음 책으로 넘어가기 바빴던 내 남독 습관이 남긴 흔적들이다.
그런 나의 독서 습관과 필사 습관에 별 불만은 없다. 매번 읽어서 좋았고 베껴 쓰느라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책을 읽기보다 이 노트들을 한 권 한 권 정독하는 것이 더 요긴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내 눈길을 오래 잡아 둔 문장을 옮겨 본다.
ㅡ 세상에는 불가항력의 일들이 있다. 서산에 지는 해, 내리는 비, 죽음 등. 어쩔 것인가?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면 그것에 대항해서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내몰든가 신경쇠약에 시달리든가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과의 싸움을 그만두면 우선 걱정의 상당수가 줄어든다.ㅡ
이 글과 연관되는 또 하나의 페이지를 발견했다.
2011년 11월 15일, 화요일의 기록이다.
50대 끝무렵이었던 그날의 일정이 꽤나 빡빡하다.
10시 ~ 12시 30분
합정역 7번 출구 성서백주간 본부 봉사자 교육.
1시
안국역 4번 출구 또는 종로5가역 5번 출구 김밥집 알바 동생 방문.
2시
광화문 흥국생명 지하 2층 세븐스프링스 식사. 윤경 엄마, 문정 엄마.
4시 30분
시네큐브 영화관 'Beginners' 영화 관람
8시
혜화동 대학로 'Oh, Brothers' 연극 관람
건강하지 못한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사랑을 지속하지 못하고 자꾸만 헤어지는 두 남녀의 이야기라고 간단한 설명을 붙인 영화 'Beginners'의 줄거리와 감상.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Oh, Brothers' 연극의 줄거리와 감상.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
ㅡ 어두운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겨우 가정을 꾸려 말단 경찰 공무원으로 새 출발한 맏형. 그의 완벽한 부인, 모범생 부인은 오랜 시간 아기를 간절히 원했으나 임신이 되지 않는다. 부부는 입양을 결정한다.
밀수꾼, 불법 입국자 안내 등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둘째 동생. 의대생들이 해부 학습용으로 쓰는 시체를 관리하는 시체실에서 일하는 막내 동생. 이 둘은 자기들이 빌붙어 사는 형을 위해 기발한 계획을 세운다. 형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이 집을 형이 싼 값에 살 수 있도록 가격을 폭락시키자는 비장의 계획이다. 막내의 직장에서 몰래 시체를 한 구 훔쳐 와 토막 내어 이 집 정원에 묻어 둔다. 어느 날 그것이 발각되어 이 집 가격이 폭락하면 가난한 형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입양 인터뷰를 하러 나온 입양기관 직원과 수상한 낌새를 채고 수사를 나온 경찰관 앞에서 동생들의 황당한 행동과 말 때문에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해가며 형은 계속 궁지에 몰린다.
그때마다 동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형, 우리가 도와줄게."
형은 외친다.
"돕지 마, 제발 돕지 마!!"
터무니없이 황당한 이 집안 식구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입양기관 직원은 화를 내며 돌아가고 경찰을 피해 여기저기 숨어 다녀야 했던 두 위법 동생들은 어머니를 만나 떠나간다.
부인은 병원에서 그렇게도 바라던 임신 소식을 듣는 것으로 연극은 해피엔딩을 맺는다.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맏형의 입장이 어쩜 그리 나와 똑같은지. 많은 형제들의 천방지축 생각과 말과 행동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짓눌렸는지. 그건 나 혼자 겪는 어려움인 줄 알았는데 머나먼 서양의 극작가가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을 이리 실감나게 그려냈을까?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형제 문제로 힘들어하는구나. 나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는 보편적인 문제구나.
참 많이 내게 위로가 되었던 연극이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창피해하고 많이 회피했는데 극 중의 주인공은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계속 벌어지는 황당한 사태를 온몸으로 막아내느라 정신없이 진땀을 흘린다. 자의든 타의든 결국 그 말썽꾸러기 동생들을 품어 안은 덕분에 임신이라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을까?
우리 인간에게 부모 형제는 어떤 의미일까?
내가 비빌 언덕이 아니라 그들의 비빌 언덕이 되어 주어야 하는 역할을 어느 누군가는 해야 되나 보다. 서로 주고받으며 동등하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부모 형제 관계가 될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축복받은 인생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나에게 짐을 주시면서 또한 그 짐을 견뎌낼 힘도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