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전철, 서울역 플랫폼 4-3
2025년 10월 14일 화요일.
9시 28분 서울역 발, 경주행 KTX 승차권이 예매되어 있었다. 집에서 43분이 소요된다는 네이버 맵의 정보를 참조하여 30여 분 넉넉하게 일찍 집을 나섰다. 2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는 신도림역은 밀려오고 쓸려가는 거대한 인파로 항상 북적인다. 8시 30분, 지하철 안은 출근길 고객들로 가득 찼다.
노량진역, 용산역을 거쳐 남영역에서 서울역으로 달리고 있는 전철 안. 입구 가까이 서 있던 젊은 여자 한 명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다들 놀라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다급하게 흔들기도 하고 119를 부르기도 하고 전철 안 응급 전화기를 꺼내 들기도 했다. 바닥으로 가라앉은 여자의 몸은 쉬이 일으킬 수가 없었다.
다행히 차는 곧 서울역 플랫폼에서 문을 열었다. 출근길 젊은 여성 서너 명이 축 늘어진 여성을 떠안고 내렸다. 4-3 플랫폼. 마침 그 앞에 4인용 벤치가 있어 끄트머리 한 곁에 환자분을 걸터앉혔다.
벤치 한복판에 60대로 보이는 여성 노숙자 한 명이 옆에 큰 가방을 올려 두고 앉아 있었다. 옆에서 벌어지는 다급한 소동에도 아무 관심 없이 정면만을 응시하며 바위처럼 굳건한 자세를 그대로였다.
공손하게 청을 넣었다.
"아주머니, 조금만 이쪽으로 옮겨 주실래요?"
거듭되는 요청과 다급한 웅성거림에도 그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 잠깐만 옆을 한 번 봐주세요. 사람이 쓰러져서 119를 불렀어요."
그 여자분은 악에 받친 큰 소리를 내질렀다.
"119에 실려 가야 될 사람은 나야, 나! 목이 얼마나 아픈데. 꼼짝도 못 해."
옆을 돌아볼 생각도, 조금만 자리를 내줄 생각도 전혀 없이 장승처럼 벤치 한가운데에 버티고 앉아 불평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할 수 없이 환자를 좁은 벤치 한 귀퉁이에 상체만 눕혔다. 같은 색 칼라 티셔츠를 입은 역무원 두 명이 다가왔지만 주위를 어슬렁거릴 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같이 내린 젊은 여성들이 성심성의껏 돌보고 있고 119 요원도 곧 올 테니까 하는 생각으로 잠깐 지켜보고 있던 그 자리를 떠나 두세 발짝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한 순간 이건 아니라는 강한 힘에 밀려 다시 돌아섰다. 나이 많은 내가 할 일도 있을 것 같았다.
힘 없이 누워 있는 환자의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았다. 창백한 얼굴, 여리디 여린 몸매. 깨끗이 감아 빗은 긴 머리카락이 땀에 젖은 얼굴 위로 엉켜 붙었다.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런데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 뭉클, 참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연약하고 가냘픈 생명체인 우리들 모두에 대한 연민. 평소에 무심했던 생명의 소중함. 손가락 사이사이에 지압을 넣고 손가락 끝을 꼭꼭 눌러가며 튕겼다. 모두 다 같이 손을,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다시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팔다리를 주무르며 계속 대화를 유도했다. 스물아홉 살이라고 했다. 핸드폰 비밀번호를 침착하게 또박또박 알려 주며 회사 전무님께 연락을 취해 달라고도 했다. 환자의 팔 밑에 깔려 있는 핸드폰을 찾아 쥔 젊은 여성이 재빠르게 응대했다. 환자는 긴장을 푼 듯 갑자기 손가락이 뒤틀리며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놀란 우리들은 열심히 팔다리를 주물렀다. 나는 목 뒤 머리 부분에 손가락을 대고 마사지와 지압을 해 주며 날숨과 들숨의 긴 호흡을 유도했다. 천천히 다시 의식을 찾은 그녀는 순순히 최선을 다해 반응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그만 소리를 내었다. 자기는 빈맥이며 전에도 이런 적이 있다, 아버지께 연락을 했으며 손에 약을 쥐고 있었는데 쓰러지는 순간 흘려버린 것 같다는 말을 했다. 표정이 성실하고 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느새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 벤치 중간을 차지하고 있던 있던 아주머니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당신으로서도 더 이상 버틸 면목이 없었던 모양이다. 환자의 몸을 끌어올려 다리까지 편히 눕게 했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던가? 119 구급대의 도착이 생각보다 늦었다. 출근길 러시아워에 갇힌 모양이다. 119와 계속 통화를 시도하며 재촉하던 여성이 전화 지시를 받았다. 입을 다물고 호흡을 하게 하란다. 다 같이 열심히 들숨과 날숨으로 환자와 호흡을 맞추었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하는 환자의 선한 의지가 귀하고 고마웠다.
드디어 119 구급 대원 두 명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옆에서 돌보던 이들은 지금까지의 상황 정보를 알려 줬다. 그리고는 잠시 뒤로 미루었던 각자의 출근길로 총총이 멀어져 갔다.
시계를 보니 기차 출발 시간까지는 아직 15분이 남았다. 2층 대합실까지 마구 뛰었다. 여유 있게 일행들을 만나 승차에 성공했다.
늘 미적거리다 시간에 빠듯하게 움직이는 편이라 첫길인 용산역에서 1분 차이로 나주행 기차를 놓친 적도 있다. 결국 강변역 동부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이용해 기차로 먼저 떠난 일행들과 나주에서 합류했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30분이나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니, 그래서 이런 상황을 만났다니, 절박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그 시간 그 장소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십 년도 지난 그 옛날, 임신 중 출근길 지옥철 2호선 안에서 산소 부족으로 두 번이나 쓰러졌다던 둘째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둘째는 결국 대기업 직장을 그만두고 어려운 재도전을 거쳐 다른 길을 찾았다. 그때 태아였던 외손녀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 있다.
예의 바르게 갖춰 입은 검은색 바지 정장 차림으로 그 힘든 와중에도 또박또박 침착했던,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웠던 그녀가 건강을 되찾고 활기차게 자신의 꿈을 잘 이루어 가길 바란다.
이 땅 젊은이들의 각박한 삶이 건강하고 의미 있게 활짝 펼쳐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