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손자 K는 2주일 후면 두 돌을 맞는다. 누나 S는 지난달에 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둘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누나는 위층 형님반, 동생은 아래층 아우반.
2025년 11월 8일, 토요일. 어린이집 운동회 날이다. 아들이 운전하여 나까지 다섯 명이 운동회 장소인 한강변 둔치에 도착했다. 식이 시작되려 하는 열 시 직전이었다.
줄을 쳐 놓은 바깥쪽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아 짐을 내려놓고 본부석 앞으로 모두 모였다. 손자와 같은 반인 아가 친구가 다가와 손을 잡고 둘이 활짝 웃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금세 서로 다른 쪽으로 관심이 바뀐다. 꽉 잡았던 두 손이 순식간에 풀린다.
어른, 아이 다 모여 개회식이 시작되었다. 확성기를 통해 커다란 마이크 소리가 울려 퍼진다. 큰 소리로 애국가가 연주되고 국민의례가 시작되자 손자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처음 경험하는 야외 행사의 낯선 분위기가 두려운 모양이다. 불안해진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1주일에 한 번 보는 할머니로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저만치 옆줄의 누나 옆에 서 있는 엄마에게로 얼른 데려갔다. 손자는 엄마 팔에 꼭 안겨 얼굴을 묻고 엄마 품을 파고든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며느리는 찰싹 파고드는 어린 아들을 꼬옥 껴안아 준다.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집에서는 번개맨 티셔츠를 입고 제 키보다 더 긴 나무봉을 휘두르며 무사 폼을 잡고 노는 녀석이 바깥 행사에서 저렇게 움츠려 드는 것을 보면 아가는 아가다. 연약함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꼭 안아 주고 토닥여 주는 엄마, 따뜻한 며느리의 넉넉한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한참 후 안정을 되찾은 손주는 운동회에는 관심도 없이 잔디 위에 모여 있는 비둘기들을 쫓아 이리저리 쏜살같이 뛰어다니기 바쁘다. 역시 엄마 품만큼 아늑한 곳은 없다. 모성은 위대하다.
선생님들도 획일적인 틀에 끼워 맞추려 아이들을 억압하지 않는 분위기가 참 좋다. 훈육이라는 단어로 강제로 획일화시키던 집단 중심 문화가 가정과 학교 교육 현장에서 많이 사라졌다. 어린 아가들에게는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존중과 배려 없이 마냥 짓눌리기에는 너무 여린 새싹들이다.
전체 진행을 맡은 어린이집 체육 담당 선생님은 오늘의 행사를 잘 이끌어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통제가 어려운 넓은 야외 공간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큰 소리로 재밌는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끼가 넘친다. 거의 아마추어 개그맨 수준이다. 내일 아침에는 목이 다 잠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원장 선생님의 개회 인사가 끝났을 때 한마디 날렸다.
"제가 점수를 매긴다면 95점을 드리겠습니다."
잠깐 뜸을 들인 후 이어지는 다음 말.
"원장님 말씀에는 오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큰 소동 없이 운동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원만하게 다 소화해 내었다. 조부모님들과 부모님, 보호자들은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함께했으며 아침부터 잔뜩 찌푸려 있던 하늘도 끝까지 빗방울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보호자들도 원아들도 모두 만족한 운동회, 1년 중 큰 가을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준비와 진행과 마무리의 모든 과정에서 선생님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교사직이 급여도 만족스럽고 성취감도 높은 안정된 전문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