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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 블루~!

댄스 본능 폭발

by 서무아

ㅡ 어머님, 11월 8일 토요일에 어린이집 가족 운동회가 있는데 시간 되시면 혹시 같이 참석하실 의향 있으신지요?

작년에는 저희 부모님이 참석했습니다.

올해 어머님께서 같이하시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지난달 며느리가 보내온 카톡 초대장이다. 당연히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팀 색상에 맞는 옷을 입고 온 가족 중에서 베스트 드레스 가족상을 선정할 예정이라는 어린이집 공지 사항도 보내왔다. 두 녀석이 청팀이라니까 푸른색 드레스 코드가 주어졌다.

그날의 베스트 드레스 가족상은 빨강 티셔츠 가족에게 갔다.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어른, 아이들이 원아의 전신사진이 등 뒤에 찍혀 있는 원색의 빨간 티셔츠를 입었다.


운동회 전날, 손녀가 열이 심해서 내일 참석 여부도 불투명하고 엄마가 전염될까 봐 걱정되니 오늘 밤에는 오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아들의 연락이 왔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고 가서 도와주고도 싶었지만 이럴 때는 무조건 아이들의 말을 듣는 것이 상책이다.


이튿날 아침, 다행히 손녀의 상태가 괜찮다는 연락을 받고 준비해 놓은 푸른색 일색의 의상을 갖춰 입고 후다닥 달려갔다. 청바지에 하늘색 셔츠, 하늘색 운동화, 파란 머플러, 거기다 바람이 꽤 있는 흐린 날씨라 푸른 바바리까지 갖췄다. 며느리에게 부탁한 푸른색 선캡까지 쿠팡을 통해 준비되어 있었다. 들어가는 계절상품이라 5,000원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구입했다고 좋아한다. 내 마음에도 쏙 든다.


어른 셋이 아이 둘을 돌보니 나름 여유가 있다. 프로그램 진행 방송에 맞춰 아이들을 참여시키고 어른들도 순서가 되면 사회자의 안내에 따랐다. 아들은 마지막 아빠들 줄다리기 경기에도 참석했다.


낮은 허들 넘기 경기에서 설명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아가들은 앞에 놓인 허들을 넘을 엄두조차 하지 않는지 모두 허들 옆의 좁은 공간을 지나 결승선으로 내달았다. 옆을 지키며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른들은 웃음 연발이었다.

아빠 엄마가 아이들을 바퀴 달린 나무상자에 태우고 한 바퀴 달려서 돌아오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순서이니 앞으로 나오라는 방송이 들린다. 손주들은 엄마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운동장이 아닌 근처 놀이터에서 한참 즐겁게 노는 중이다.

운동장으로 나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섯 명씩 줄을 섰다. 벗어서 발에 걸친 한쪽 신발을 힘껏 날려 보낸다. 10m 정도 떨어진 곳에 깔려 있는 비닐 위에 그려진 동심원. 가장 중앙에 그려져 있는 좁은 과녁에 신발을 벗어던지는 사람이 승자다. 내가 벗어던진 신발은 과녁보다 훨씬 먼 엉뚱한 곳으로 휙 날아갔다. 선생님이 가까이 주워다 놓으셨다. 신발이 한 짝씩 과녁을 벗어날 때마다 사회자도 참가자도 안타까움 반, 즐거움 반의 탄성을 질렀다.

문제는 다음 과제다. 신발을 다시 찾아 신으러 가고 오는 동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일이다.

까짓것, 나오는 대로 몸을 흔들며 가서 상품을 하나씩 받아 들고 신을 찾아 신고 돌아왔다.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린이집에서 나누어 준 커다란 명찰들을 가슴 앞에 달고 경기에 참여했다.

상품은 구포국수자색고구마 310g 한 봉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서 운동회가 끝났다. 외식도 거론되었지만 아이들을 빨리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이 급선무였다.

집에 도착하여 며느리는 아이들을 챙기고 나는 냉장고를 열어 후다닥 점심 식사를 차려냈다. 다행히 밥도 국도 밑반찬들도 충분했다.


모두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대강 설거지까지 끝낸 후 아늑한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다섯 시가 넘었다.

핸드폰에 담긴 운동회 사진들을 세 아이들 부부와 내가 들어 있는 7인 카톡방에 올렸다. 고모랑 고모부들이 댓글들을 달았다. 귀엽다, 수고했다, 예쁘다, 재밌다ᆢ.

며느리랑 아들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이튿날 아침, 며느리 글이 한 편 더 올라왔다.

어머님 어제 고생 많으셨고 덕분에 좋은 추억 만들었습니다. 사진들 감사합니다. 애들이 자꾸 따로 놀아서 정신없이 챙기다 보니 어머님 사진을 거의 못 찍었네요.ㅠㅠ


바로 이어 동영상 한 편이 올라왔다. 아들이 멀리서 찍은 듯 조그마하게 찍힌 내 뒷모습이 들어 있다.

큰딸이 댓글을 달았다.

ㅡ엄마 댄스 본능 폭발하셨군요. 덕분에 웃었습니다.


또 다음날에는 어린이집에서 보내 준 사진들이 올라왔다.

그 밑에 적힌 며느리의 글.

ㅡ어머님 사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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