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신뢰
매일 새벽미사 봉헌은 오래 전부터 해 보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었다. 작심삼일, 마음먹고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매번 얼마 못 가 흐지부지 막을 내리곤 했다.
늘 미루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일이 2025년 12월 11일, 별다른 결심이나 계획도 없이 불쑥 이루어졌다. 12월 30일인 오늘까지 쭈욱 이어진 걸 보면 새벽 미사 봉헌에 열심인 몇몇 교우분들의 사랑의 기도가 내 마음을 부추기고 두드린 듯하다.
밤새 환한 빛이 감싸고 있는 안전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인적 드물고 겨울바람 싸늘한 새벽길을 총총걸음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환하게 불 밝혀진 성전의 묵직한 문을 밀면 고요한 침묵 속에 두툼한 겨울옷을 입은 뒷모습들이 보인다. 성당을 절반 정도는 채운 듯하다. 남녀의 비율도 반반 정도이다.
복음 말씀을 듣고 성가를 부르고 강론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체를 모신다. 차분하고 경건한 미사가 끝났다. 성전 불이 하나 둘 꺼진다. 여남은 명은 조용한 침묵 속에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이 고요한 평화를 쉬이 떨치고 일어나고 싶지 않다. 그대로 침묵 속에 머문다.
세 아이들 등교 준비와 칼 같이 정확한 남편의 출근 뒷바라지, 어린 손주들 아침 먹이기ᆢ. 긴 시간 참으로 바쁜 아침을 이어왔다. 나이 들어 누리는 이 한적함과 여유가 편하고 고맙다.
마음껏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려 보고 좋아하는 성가 가사도 외우며 이 여유를 즐긴다. 오늘은 성가 218번(주여 당신 종이 여기), 206번(성심의 사랑) 가사를 음미하며 외워 보았다. 애틋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점점 떨어지는 기억력 속에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다 해도 습관처럼 외워서 즐길 수 있는 성가 몇 곡은 있었으면 좋겠다.
집까지 편도 15분 거리, 방금 가사를 외운 성가를 혼자 불러 보며 아직은 인적 드문 이른 아침길을 걷는다.
아파트 현관 앞, 띠디딕~, 현관 비밀번호와 별표를 누른다. 잠깐 불빛이 번쩍 비치더니 이내 먹통이 되어 버린다. 시간 간격을 두고 몇 번 반복해 시도해 보았지만 마찬가지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시간은 오전 7시 20분. 난감할 뿐이다.
1층 경비실로 내려가 사연을 이야기하니 정식 직원들은 9시에 출근한다며 무전기로 여러 차례에 걸쳐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한다. 당직 안보 요원이라는 남자직원이 왔다. 함께 올라가 상황을 살펴 본 뒤 다른 담당자와 통화를 한다. 하지만 아무 도구도 없다 보니 결국 또 한 분이 오셨다. 날카로운 금속 끝으로 어딘가에 접속을 했다. 문이 열렸다. 조금 전까지 먹통이었던 전자판이 살아났다. 그분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고 닫기를 몇 번 반복 시도해 보았다. 정상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점검을 한 번 받아 보라며 연락처를 알려 준다.
9시가 되자 그 번호로 정식 AS를 신청했다. 중요한 사안이니 두 명이 바로 올라왔다. 젊은 여성 두 분이었다. 먼저 건전지 상태를 체크했다. 제작회사에서 서비스로 제공하는 네 개가 아니라 완전 새것으로 여덟 개가 꽉 채워져 있다고 한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어느새 아들의 손길이 거쳐갔나 보다. 6개월 이상 쓸 수 있다고 한다.
건전지 문제는 아니다. 뭔가 시스템이 살짝 꼬인 것 같다는 설명이다.
여러 가지 친절한 설명과 함께 비상시 대처하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 주고 날더러도 직접 해 보라며 실습까지 시킨다. 미비한 부분을 척척 해결해 주며 학습까지 시켜 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1시간 후에는 괜찮으냐고 확인 전화까지 해 왔다. 정말 고마웠고 두 분 멋있었다고 대답했다. 간단한 용건의 전화를 짧게 끝내고 나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못 한 것이 못내 아쉽다.
공감과 친절로 내일인 양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전문가들이 가까이 있어서 참 좋다. 오늘 아침 겪은 난감한 일과 두 시간 남짓 짧은 시간 안에 만난 다섯 명의 사람들, 그들이 보여 준 성실하고 민첩한 응대가 참으로 고마웠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감사를 선물해 주었다.
만약 AI로 해결해야 했다면 이런 소통과 해결이 가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