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체험성가대
2025년 12월 3일, 다시 옛날 동네로, 예전 본당으로 돌아왔다. 거주지 주소는 옛날 집과 달라졌지만 성당 구역은 같은 지역이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나간 지 2년 반, 엄마에게도 리프레쉬가 필요하다며 나의 거주지 이동을 적극적으로 물색해 오던 아들이 1년 이상 마음 쓰며 추진해 온 곳이다. 일단 평지여야 하고 지인들이 많은 과거 본당 구역 안이면 더 좋겠다는 배려도 포함되었다. 오랜 시간 많은 발품 팔아가며 얻은 정보와 치밀한 준비 끝에 이루어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다.
덕분에 길에서, 성전에서, 마주치며 안부 묻는 10년 지기 교우들의 낯익은 얼굴이 반갑고 다정하다.
오늘은 이사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난 1월 3일 토요일이다. 오전 11시 30분, 지난밤 손주를 재워 준 덕에 편하게 늦잠을 자서 감사하다는 며느리의 인사를 들으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부쩍 몸피가 단단해진 두 돌, 네 돌, 두 손주랑 놀아 주느라 꽤나 노곤하다. 밤에는 두 어깻죽지가 콕콕 신호를 보내왔다. 두 녀석을 번갈아 안아 주고 올려 주고 돌려주며 깔깔거린 후유증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아, 힘들다, 아, 힘들어.'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베로니카 형님 아니세요?"
뒤돌아보니 커다란 맑은 눈동자에 검실검실 밝은 웃음 가득 실은 S다.
"아, 돌아오셨군요. 놀러 갈게요. A랑 같이 갈게요."
언제나 환하게 초긍정의 말을 던지는 S다.
지난 2월에도 그랬다. 다리를 다쳐 6주 만에 깁스를 풀고 목발에 의지해 힘겹게 물리치료를 다녀오는 길에서 마주친 S. 나는 많이 의기소침해 있었고 불안했고 힘들었다. 나를 본 S는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한참 동안 위로의 말을 건넨다.
"형님, 괜찮아요. 잘 나을 거예요. 저는 양쪽을 다 한 번씩 다쳤어요. 그런데 이렇게 잘 다니잖아요.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다친 다리를 함부로 쓰면 괴사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었던 적도 있어요.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우연히 마주친 골목길에서 온 마음 다해 긴 시간 위로해 주던 S, 그 다정함은 우울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오늘도 헤어지면서 상큼한 한마디를 던진다.
"새해, 형님을 뵈니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교적 이전 신고를 하자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반겨 주던 사무실 여직원 B. 이제 성당 활동은 많이 접고 독거노인 가구주로서 조용히 새벽 미사를 다니지만 어둑한 새벽길에서 마주친 낯익은 이들의 환한 웃음은 찬 새벽 공기를 따뜻이 데워준다.
대설에는 팥죽을 먹으면 좋다며 새벽녘에 끓인 팥죽과 시원한 동치미를 들고 와 아파트 문 앞에서 건네고 총총걸음으로 멀어져 간 T. 다정한 뒷모습의 잔영이 오랫동안 눈앞에 머문다.
12월 31일, 저녁 8시 송년미사는 관악구 신림4동에 있는 신사 베드로 성당에서 봉헌했다. 이사 온 후 12월 한 달은 전철을 타고 걸으며 1시간 거리를 정성 들여 다녔다. 비워 놓은 언니집도 둘러본다. 곧 새 세입자가 이사를 올 것이다. 한파에 대비해 꽁꽁 싸매어 놓은 옥외 수도꼭지도 살펴보고 깔끔하게 청소해 놓은 집안 구석구석과 눈에 익은 동네 골목길을 사진으로 남기며 지난봄, 여름, 가을을 되돌아본다. 옥상 텃밭의 풍요로웠던 모습까지 ᆢ.
2025년 4월 10일부터 12월 2일까지 8개월을 머무른 신림 8동. 2024년 2월, 84세로 세상을 떠난 큰언니가 우리 6남매에게 선물로 남겨 준 집이 있는 곳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동생, 연로하신 언니 오빠들의 대표상속자가 되어 이 집을 잘 관리, 처분하는 일이 내게 맡겨졌다. 반년 동안 비워 두었던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관할 구역 성당이 신사베드로성당이었다. 완전히 낯선 곳에서 홀로 조용히 나 자신에게 머무르는 시간, 언니가 남긴 자취들을 자알 정리하고 형제들과 마음 맞추어 앞일을 계획하고 의논하는 소중한 시간을 귀하게 잘 지냈다.
이제 대강의 큰 그림은 그려졌다. 나는 다시 내 집으로 돌아갔고 형제들 모두 한 마음 모아 우리들의 계획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어느 날 성당주보에 실린 공지사항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성탄체험 성가대 모집>
10월 26일 ~12월 31일
그 아래에 적혀 있는 단장님 연락처로 문자를 넣었다.
ㅡ55년생도 가능하나요?
ㅡ일단 와 보세요.
그렇게 해서 체험 성가대 활동이 시작되었다.
매주 일요일 10시에서 10시 50분 성가 연습, 11시 성가대석 미사봉헌, 김밥 식사, 12시 30분부터 2시까지 다음 주 성가 연습.
중 고등학교 시절 반 대항 합창대회 이외에는 합창을 해 본 적 없지만 적극적으로 성가를 불러 보고 싶은 마음이 이 자리로 나를 불렀다. 두 달 남짓, 10회의 주일미사를 비롯하여 성탄전야미사, 성탄미사, 송년미사 등 13회를 함께 연습하고 함께 봉헌했다.
실력이 안 되는 나이 많은 체험단원을 따뜻하게 품어 주고 이끌어 준 아름다운 지휘자 선생님과 친절한 성가대원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25년 12월 31일, 마지막 신사베드로성당에서 봉헌한 밤 8시 송년 미사 후 특별 선물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미사 후 기념 촬영한 단원들 단체 사진을 자석으로 특별제작한 사진판이었다. 뒷면에는 깨알만 한 글씨로 단원들 전체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빽빽이 적혀 있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이 담겨 있다. 단원 S 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우아한 팔찌 두 개도 함께 받았다.
언제든지 생각나면 오셔서 함께 하자는 정다운 인사, 내년 부활절 체험 성가대 때 꼭 오시라는 감동적인 초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성당에서 준비한 떡국떡 한 봉지를 받아 들고 귀가하니 밤 11시다.
2025년, 잊지 못할 성탄선물의 온기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둡고 썰렁한 겨울밤을 따뜻하고 화안하게 밝혀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