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 집 맞아?

사흘 간의 대청소 작전

by 서무아

2026년 2월도 어느새 초순, 중순을 다 지나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오직 일 년 열두 달 중 이 달만 28일밖에 없어서일까요? 아님 민족의 명절인 구정 설날, 17일이 한가운데에 떠억 버티고 있어서일까요? 다른 여느 때보다 더 바삐 시간이 흐른 듯합니다.


한 달 전, 중1, 2가 되는 두 남매를 데리고 둘째는 필리핀의 세부로 떠났습니다. 돌아오는 날인 7일을 사흘 앞둔 2월 4일, 수요일. 둘째네 빈 집을 둘러보았습니다.

오래되고 넓은 1층 빌라 실내는 어둡고 싸늘했습니다. 가족들이 다 떠난 한 달 동안 사위는 바로 옆에 계시는 부모님 아파트에서 막내 대접을 톡톡히 받으며 따뜻하게 잘 지낸다고 했습니다. 항상 일에 파묻혀 지내는 사위에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코로나 때 층간 소음으로 힘들어하는 아들네 5층 아파트와 수십 년, 한 집에서 살아온 사돈어른들의 대형 빌라 1층을 서로 바꾸어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팔순 아버님이 조금 떨어진 환승 전철역까지 꼬박꼬박 태워 주신답니다. 연하고 싹싹하고 착한 저의 사위이니 쉰을 눈앞에 둔 나이인들 본가에서는 얼마나 예쁜 막내아들이겠습니까?

사랑 많으신 사돈 두 분이 소중한 아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모처럼 세 가족이 오손도손 사랑을 주고받는 귀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텅 비어 있는 오래된 집 넓은 마루와 부엌에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가지들과 재활용 쓰레기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떠나기 전날, 손주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재택근무로 바꾸어 해외로 떠나는 일정이니 사무실과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더 해 놓으려 둘째는 얼마나 종종걸음을 쳤을까요? 도우미 도움도 받지 않는 그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걸고 개고 넣고 담고 버리느라 서너 시간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냉장고 속 오래된 야채는 포장지와 내용물을 모두 분리해서 다 비웠습니다. 먹다 남겨 박스째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졸업 축하 쵸코케이크는 제가 가져와 버렸습니다. 식탁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축하 꽃다발은 이미 한차례 시들었지만 그대로 두었습니다.


밖에는 차가운 겨울 저녁 어스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욕탕 두 곳을 살펴보니 벽과 바닥과 욕조와 세면대와 변기, 정신없이 어질러진 많은 물건들이 어수선합니다. 모두 사람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에라, 모르겠다.'


저는 질러 버렸습니다. 입주 청소 전문 업체에 청소 의뢰 예약을 해 버렸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는 여고 선배님의 그림 전시회에 가 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정성 가득 담긴 ' 드로잉 기법'의 독특한 작품들이 200여 평 갤러리를 강렬한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매혹적인 공간으로 변신시켜 놓았습니다. 100호짜리 작품도 80 개가 넘는다는군요.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정면 벽 중앙에는 100호짜리 작품 네 개만 바짝 붙여져 걸려 있었습니다. 마치 한 작품처럼요. 한참 머물렀습니다.

일본 나오시마에서 본 안도 타다오의 지추 미술관이 떠올랐습니다. 정면의 넓은 벽에 태양광을 받으며 모네의 수련 한 폭이 딱 걸려 있었거든요. 사람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았지요. 멋진 큐레이션이었습니다.


여든을 눈앞에 두신 분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고운 자태로 자신의 작품에 담긴 생명의 기운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화가들은 어찌 그리 말씀들을 잘하시는지요. 생각이 많으니 말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시회 첫날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라는 총동창회 회장님은 어제 이미 음식점에다 말을 해 두었다며 서로 밥값을 내겠다는 강력한 경쟁자들을 가볍게 물리치고 열 명이 넘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청소 업체와 약속한 세 시에 맞추느라 헐레벌떡 둘째네 집에 도착하니 그분들은 저만치 차를 대놓고 현관문부터 이미 새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칭 빨리빨리 움직이신다는 70대 남녀 세 분이 각자 적당한 몫의 공간을 차지하고 바로 청소에 돌입했습니다. 70대 분들이 이런 일을 하시리라고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정원 쪽의 넓고 긴 베란다에는 겨울 추위의 스산한 냉기가 가득했습니다. 키 크신 남자 어르신이 철제 사다리 의자 위에서 천정에서 떨어져 내리는 하얀 석회가루부터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팀의 대장이시며 차량 운전사이고 다른 한 분의 남편 되신다고 합니다. 70대 후반이셨습니다.

여자분 두 분은 화장실부터 시작하여 손길 가는 곳마다 반짝반짝 새 집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전기포트에 뜨거운 물을 계속 끓여가며 강력 세제와 다양한 도구들로 구석진 곳의 세밀한 곰팡이 자국까지 꼼꼼히 닦아냈습니다. 저는 하릴없이 서성거릴 뿐이었지요. 오래된 창문들도 묵은 때를 벗고 지저분했던 의자도 새것처럼 바뀌었습니다.


어느덧 시계는 밤 9시. 마치지 못해 너무나 아쉽다고, 이렇게 밖에 못 하고 끝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그분들의 푸념을 한 귀로 흘려가며 마지막 정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뒷단속을 하고 저도 10시가 넘어 귀가했습니다. 아이들은 이틀 후, 밤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둘째네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네 구역, 걸어서 35분 거리입니다. 세제 냄새가 남아 있지는 않나? 떨어진 쓰레기가 있진 않나?전체를 훑어보며 조금 아쉬운 곳이 있어도 눈을 꼭 감아 버렸습니다. 저녁에는 2년 전 돌아가신 큰언니의 제사를 모실 참이었거든요.


저녁 6시에 오시기로 한 큰오빠네 부부와 장조카, 막내 남동생,, 다섯 명이 간략하게 제사를 모셨습니다.

살아생전 긴 세월, 언니가 정성을 쏟아 모셨던 절에서 700만 원을 들여 사십구재를 드렸고 작년 기일에는 70만 원을 내고 제사를 모셨습니다. 올해부터는 집에서 가족들끼리 모여서 지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같았습니다. 제가 이제는 자리를 잡았거든요. 형제들 모두 반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후다닥후다닥 탕국을 끓이고 재워 둔 갈비를 익히고 생선을 구웠습니다. 모든 격식을 초월하여 절 두 번을 드리는 것으로 제사를 모셨습니다. 그것조차도 개신교를 다니는 장조카와 연세 많으시고 다리가 불편하신 큰오빠 부부 두 분은 생략하시고 저랑 막내 남동생 둘만 큰절 두 번을 올렸습니다.

나물이 빠진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감사를 표현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늦게 자기 집으로 퇴근한 사위가 깜짝 놀란 음성으로 전화를 해 왔습니다.

"어머니, 집이 되었어요. 깨끗이 유지하면서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날 손주들은 묵은 때를 확 벗은 깨끗한 현관 밖에서 서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기 우리 집 맞아?"

딸로부터는 고맙다는 말을 거듭거듭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해 봐도 사흘 동안의 이 작전은 참 잘한 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