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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02. 2021

 댄스

 배우자를 영혼의 친구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향해 꺼지지 않는 굳센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던 시절이다.

 200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내가 마흔여덟 살 때의 이야기다.


<댄스>

 나는 남편과 꼭 같이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참 많다. 정원 가득 들꽃 핀 찻집에서 차 마시기, 고즈넉한 숲 속 오솔길 걷기, 아련히 자신을 불태우는 저녁노을 바라보기, 많은 추억들을 생각나게 하는 음악 듣기, 찡하게 가슴을 적셔 오는 영화보기 등등ᆢ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부댄스 같이 하기다. 남편도 나도 춤에는 전혀 문외한이고 특히 나는 몸 놀리는 일에는 몹시 서툰 몸치 쪽에 가까우니 강습부터 먼저 해야 한다. 지역 신문의 문화난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부부 댄스 강습 광고를 볼 때마다 한참 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고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한다. 그렇지만 언감생심. 부모에 효도, 사회에 공헌, 나라에 충성, 이 세 가지가 최고의 가치 기준이라는 남편의 평소 분위기로 보아 입조차 떼지 못할 형편이다.


 "춤이라니, 이젠 별 걸 가지고 다 난리네."

 불을 보듯 분명하게 예상되는 반응이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자 한 자 광고난의 글자들을 뜯어보다가 '그래, 여긴 시간이 안 맞아.'  '여긴 찾아가기가 너무 어려워.' 등등의 핑계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른 기사로 눈길을 돌리곤 했다.


 그런데 드디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기회가 왔다. 챤스! 집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유명 백화점이 문을 열었고 그곳 문화센터에 부부댄스 강좌가 마련되어 있었다. 시간은 토요일 오후 6시 30분. 교습 내용은 블루스와 지르박. '바로 이거야!'

 지만 남편과 대화를 나눌 길이 막막하다. 일언지하에 거절당할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살얼음 얼 것 같은 냉기를 뿜으며 '같이'와  '~~하자'라는 두 낱말을 자기에게 쓰지 말라고 선언한 남편.


 틈틈이 기회를 노리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남편이 밤늦게 귀가한 어느 날, 벼르고 별렀던 말을 꺼냈다. 한 잔 술에 마음이 태평양 같이 넓게 열리고 일식집 정종처럼 따끈따끈 데워져 있던 남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한번 해 보지, 뭐." 하며 호기를 부린다. 나는 그 이튿날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 나가 거금 14만 원을 투자하여 석 달 치 강습을 신청했다.

 

 그 이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치미 뚝 떼고 지냈다. 강습 시작 바로 전날, 이러이러한 일로 내일 부부 댄스 강습을 가야 된다고 하니 남편은 펄쩍 뛴다.

 "미쳤어?"

 "뭐 할 일이 없어 춤이야?"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어?"

 "나는 어디 얽매이는 데는 딱 질색이야."

 "왜 사람을 못살게 굴어!"


 쉽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다시 한번 확인되는 남편의 숨 막히는 반응에 내 머리는 스트레스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

 '저 쪼잔한 인색함이라니ᆢ'

 다 된 밥에 재 뿌릴 수는 없으니 속으로 꾹 참고 증인으로 아이들을 내세우며 나는 뒤로 쏙 빠졌다. 이번에도 둘째의 쫀득쫀득한 설득이 효과를 본다.


 "아빠, 엄마가 그렇게 원하시는데 한 번 가 주세요. 전번에 아빠가 하신다고 그랬어요."

 남편은 슬그머니 표정을 바꾸며 결론을 내린다.

 "그럼 결혼 25주년 기념 선물로 따라가 주지, 뭐."

 그리고 나에게 서슬 퍼렇게 한 마디 덧붙인다.

 "앞으로 술 먹었을 때 뭔가 결정하는 말은 나한테 시키지 마!"

 성은이 망극하기도 하지. 차라리 남편의 딸로 태어났으면 더 좋을 뻔했다.


 이튿날, 강습에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싸늘하게 찬바람 뿜어내는 남편은 가타부타 한마디 말도 없이 침묵을 지킨다. 어제 맨 정신에 내린 결론을 뒤집을 사람은 아니지만 이럴 때 선선히 앞장서 주면 오죽 좋을까? 머릿속은 온갖 걱정스러운 생각들로 잡동사니를 이룬다.

 '어떻게 지각하지 않게 출발할 수 있을까?'

 '뭐라고 말을 꺼낼까?'

 '싸우지 않고 갈 수 있을까?'


 무심한 척 시침 떼고 있다가 가까스로 시간 맞춰 남편과 집을 나서는 데 성공했다. 가는 동안에는 둘 다 함구무언. 이것만이 평화를 사수하는 길이니ᆢ

 마루가 깔린 넓은 강의실은 예상외로 춤을 배우러  온 부부들로 만원이었다. 우리는 남녀로 나뉘어 각자 쭈뼛거리며 강당 모퉁이 한 구석에서 첫 수업에 임했다. 멋진 몸매의 매력적인 여선생님이 왕왕초보인 우리들을 능숙한 솜씨로 잘 이끌어 주셨다. 남편도 점잖은 얼굴로 잘 따라 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선생님을 쳐다보며 어설픈 몸놀림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 20분이 다 지나가 버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땀을 닦으며 이제야 겨우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게 웬 일?  여고 동창 친구들이 세 명이나 눈에 뜨인다. 나를 포함하여 동창 네 쌍이 이 시간에 함께한 것이다.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순식간에 삼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년을 함께한 동창으로서의 일치감을 만끽했다. 하하호호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남편들을 소개하며 언제 같이 식사 한번 하자는 약속을 남긴 뒤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비아냥거린다.

 "무슨 친구들이 다들 춤춘다고 야단들이야?"

 이럴 때 가만 있으면 안 되지.

 "이 나이에 부부가 이런 시간 가질 수 있다는 건 그동안 성실히 잘 살아왔다는 증거 아니에요? 말해 봐요, 말해 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자기 바보 아냐?"  

 

 그리고 두 달 후인 오늘 밤, 우리 여덟 명은 드디어 식사를 함께했다. 우리들은 추억과 우정을 나누며 한담을 즐기고 남자들은 술잔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2차 맥주집으로 옮기면서부터 이야기는 무르익었다.

 잘나고 똑똑한 마누라들 때문에 고생한다는 남편들의 하소연에 우리들의 반박이 바로 이어졌다. 설왕설래. 명문여고 출신 마누라들을 모시고 사는 잡문고 출신 남편들은 일찌감치 잔머리 굴리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 부산고를 비롯한 지방의 짱짱한 명문고들이 그 이름도 찬란한 대 경남여고 앞에서는 한 순간 모두 잡문고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어서 펼쳐진 부부 청문회. 아내와 남편 사이에 그동안 쌓여왔던 억울한 사건들에 대한 고발과 해명이 오고 가는 시간. 공격과 방어의 수위가 아슬아슬 위험해지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맥주잔이 불쑥 치켜 올라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그 구호에 맞춰 다 같이 술잔을 부딪치며 또 한 번 와르르 폭소를 터뜨렸다.


 며칠 전, 남편이 갑자기 신경질 가득 담아 살벌하게 물어 왔다.

 "도대체 춤 강습은 언제 끝나는 거야?"

 깜짝 놀란 나는 엉겁결에

 "계속해야죠."

라는 대답을 바로 내뱉었다.

 남편은 성질을 확 부리며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가."

 퉁명스레 한마디 던지고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 절호의 찬스다. 남편이 다음 강습은 신청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린다고 고자질해 버렸다. 천군만마, 내 친구들은 당장 남편을 향해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간 배 밖 나옴증', 그것도 '중증 환자'라는 진단도 함께 내렸다. 그리고 이어진 처방전.

 "워낙 한 인물 하는 우리 동창들은 일찌감치 카바레나 나이트로 진출해 그 바닥에서 이름을 떨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들 현모양처의 길을 걷다 보니 늙어서 남편과 같이 놀아 주려고 이 길을 택했다. 그러니 남편들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

 다른 남편들도 이구동성으로 남편을 설득했다. 안 나오면 집으로 쳐들어간다는 협박도 곁들였다. 밖에서는 배려와 친절과 미소로 무장하는 '젠틀 킴', 남편은 쉽게 항복했다. 이번에도 술김에 이루어진 약속이긴 하지만 눈이 초롱초롱한 아내의 친구들이 증인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결코 장미꽃잎 깔린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ᆢ


 기지와 위트로 좌중을 웃음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톡톡 튀는 친구, 조근조근 논리적인 어조로 자기 생각을 끝까지 다 말하는 차분한 친구, 착하고 순수하게 교과서적인 제안을 일삼는 고마운 친구. 남편분들도 모두 성실하고 겸손하고 상대를 배려해주는 성숙한 사람들이었다. 재밌고도 유익한 이야기가 술과 함께 익어가고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 늦가을 쌀쌀한 추위는 저만큼 쫓겨나 버렸다. 다음 주일에는 강습 후 식사와 단체 영화 관람까지 함께하자는 거창한 약속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있었다.

 아니, 웬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담?

 남편도 지난 삼월 이후 이렇게 많이 웃어 본 적은 처음이라고 상기해 있었다. 오늘이 시월, 그것도 마지막 주말인데ᆢ


 어느새 쉰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이 나이에 부부끼리 서로를 돌아보는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은총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혼자서 자신을 재충전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나누는 시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소중하고 좋은 친구들과 억지춘향 격으로라도 함께해 준 남편이 있어 행복한 밤이었다.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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