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을 다시 읽었다. 2011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오영제에 대한 치밀하고도 사실적인 서술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왜곡된 자아상으로 무장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젊은 아내와 어린 딸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그들에게 집착하여 자신의 비뚤어진 성격과 행동의 비참한 희생물로 몰아간다. 상대가 꼼짝달싹할 수 없게 완벽한 자기 통제 아래에 두고 잔인하게 학대한다.
쥴리아 로버츠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 <적과의 동침>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이 두 남자에 대해 떠오르는 첫 느낌은 '섬뜩함'이다.
오영제는 숨도 못 쉴 정도의 긴장감으로 집안 분위기에 살얼음을 깔고 상대를 향해 과민하게 레이더를 곤두세운다. 병적인 신경망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이 와닿으면 바로 폭력을 행사한다. 거의 고문에 해당하는 수위의 폭력이다. 바로 몇 대의 주먹을 휘둘러 일단 화를 풀고 뒤이어 옷을 다 벗기고 준비해 둔 회초리로 알몸을 내리친다. 그럴 때 상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최대의 자기 존엄성 유지 방법은 무저항, 입을 다물고 자기를 놓아 버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여자가 결코 자기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없는 말, 하지만 남자가 끝까지 강요하는 말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모든 고통을 동반하는 폭력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강간 수위의 성폭력으로 철저히 상대의 육체적 정신적 세계를 피폐케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악마적인 행동을 '교정'이라는 낱말로 정의 내리며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의 직업은 치과 의사다.
이곳 세령 마을의 세령강 백릿길을 쥐락펴락했던 대지주의 외아들. 저지대 주민의 밥줄인 세령 평야의 현재 주인. S시에 있는 11개 과 연합 치료 의료 전문 빌딩 메디컬센터의 소유주. 머리 좋고 잘생긴 엘리트 치과 개업의. 오영제의 겉으로 드러난 정체성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당연히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자기가 명령한 대로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조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에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잔인한 복수로 응징, 교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엄청난 혼란이 닥쳤다. 결혼 12년 만에 아내가 사라진 것이다. 아내의 이름은 문하영.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레지던트 시절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는 순간 바로 집착에 가까운 사랑에 빠져 버렸다. 이유는 단 하나, 헐렁한 니트와 낡은 청바지 차림이었지만 그 안에 근사한 몸이 들어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눈에 든 여자였다.
막강한 부를 지닌 엘리트 미남 치과 의사, 내적인 집요함과 치밀함의 소유자, 영제.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은 시간 안에 그녀를 손안에 넣었고 임신을 시켰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는 세령 호수 바로 옆의 숲 안에 저택을 지어 그녀를 들어앉혔다. 옆에는 댐 관리 직원들이 거주하는 101호, 102호 건물이 있었지만 일절 외부와 단절된 곳이었다. 교통수단은 택시와 승용차였지만 그는 아내에게 일체의 경제권을 허용하지 않았고 당연히 승용차 사용도 금지했다. 딸 세령이 S시의 미술 학원에 다닐 때 그 차편으로 요리를 배우러 갈 수 있는 것이 문하영의 유일한 외출 기회였다. 모멸과 학대를 못 이겨 가출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스포터즈를 고용해 뒤를 쫓는 오영제의 집요한 추적에 바로 잡혀 들어왔다. 그 후에 겪게 되는 '교정'은 잔혹했다. 러브 밤잉(love bombing)의 전형적인 희생자가 된 문하영.
이 사실을 알게 된 대학 친구가 전기기구 수리상을 운영하는 하영의 친정아버지께 알렸고 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혼 소송에 이기기 위한 사진과 녹취록 등 자료 증거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고가의 귀금속들은 팔아 현금으로 만들어 사서함에 보관해 두었다. 치밀하고 예민한 오영제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가짜 귀금속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차례나 책상 모서리에 아랫배를 박히고 어김없이 성폭력으로 교정을 마무리당한 어느 밤, 하영은 심한 복통으로 임신 3개월의 태아를 유산한다. 그날부터 하영은 가출 준비의 마지막 행동으로 들어갔다. 잡히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이혼을 이혼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섬뜩한 깨달음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결혼 12주년 기념일, 호텔로 외식을 나왔다. 하영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영제의 드러운 성질에 그날도 하영은 여지없이 걸려들었다. 식당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까칠하게 구는 영제를 대신하여 하영이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호텔에 도착해 회초리 대신 젖은 물수건으로 하영의 알몸을 거의 죽을 만큼 때리고 지갑과 핸드폰을 빼앗고 밤늦은 시간 한계령 으슥한 길에 버려둔 채 영제의 차는 집을 향해 떠나버렸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하영은 가족 외출 시 비상금을 구두 안창 밑에 감추어 두었다.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 어두운 한계령 길을 더듬어 비상 대피소를 찾아 전화를 이용해 택시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미 준비해 놓은 모든 여건을 이용해 친구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바로 탈출해 버렸다. 홀로 남은 딸 세령이 마음에 걸렸지만 영제에게 잡히면 죽을 것이라는 공포심에 다른 어떤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굵직한 인물은 최현수다. 소설에서는 '자기 덩치만큼이나 큰 내부적 위험에 처해 있는 인물'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술만 마시면 살림을 뒤엎고 처자식을 죽사발로 만들던 구 척 거한, 월남에서 돌아온 용감한 최 상사, 한 팔이 잘린 상이군인이 그의 아버지였다.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꿈도 산산이 짓밟았다. 생계를 위해 일 나가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 수발을 들어야 하는 12살짜리 아들, 장남 현수가 야구에 시간을 뺏기면 자기의 일상이 불편해지기 때문이었다.
동네에는 수수가 2미터도 넘게 자라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수수밭 가운데에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현수는 아버지가 그 우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밤에 몰래 아버지의 구두를 그 우물에 빠뜨린다. 그 순간 미친 듯이 그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현수야."
"현수야아~~!"
그는 우물이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겁에 질려 도망을 쳤다. 그런데 하필 그날 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실제로 그 우물에 빠져 유명을 달리했다. 엄청난 자책감의 트라우마를 안게 된 현수.
그는 우수한 선천적 자질로 뛰어난 야구 선수가 되었다. 타고난 포수, 그리고 4번 타자. 신들린 것처럼 판을 읽어내는 비범함으로 최박수로 불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왼손잡이인 그에게 공포의 왼팔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의사는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전이현상으로 진단 내렸다. 거기다 달려오는 상대팀 선수의 스파이크에 찍혀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고 만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그의 별이었으며 마지막 공이었다. 그가 주문처럼 외우며 다짐하는 각오가 있었다.
'내 아이한테는 우리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다.'
그러나 삶은 각박했다. 세 번의 수술 끝에 결국 사랑하던 야구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보안업체에 취업하여 세령댐 보안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발령받은 세령댐으로 사전 답사를 떠나던 날, 동료 선수였던 옛날 친구를 찾아가 술을 마시고 핸들을 잡았다. 캄캄한 밤, 세령 댐 숲길에는 자욱한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낯설고 어둡고 안개 낀 산길을 음주 운전하고 있던 현수의 전면 차창으로 갑자기 하얀 물체가 하나 날아와 부딪혔다. '퍽' 소리가 났다. 내려서 살펴보니 흰 잠옷을 입은 어린 소녀였다.
오영제와 문하영의 외동딸 세령. 아버지 영제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잠옷 바람으로 창을 넘어 도망치는 중이었다. 현수는 얼떨결에 차에서 내려 이미 생명이 떠난 소녀의 시체를 들고 정신없이 걷다가 세령댐 호수 위로 시체를 던져 버렸다. 허둥지둥 서울로 다시 돌아온 현수. 며칠 후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취임을 한다.
그곳에 세 번째 주요 등장인물 승환이 있었다. 잠수부 아버지를 둔 가난한 집안의 아들 안승환. 그는 집안의 희망이 되어 형들의 지원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숨 막히는 직장 생활을 2년 만에 끝내고 이곳의 댐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소설 등단작가이기도 하다. 취미로 아버지로부터 배운 잠수를 즐긴다. 어느 날 세령 댐 물속을 유영하다 세령의 시체를 발견하지만 그곳은 잠수 금지 구역이라 비밀을 지킨다.
팀장으로 부임해 온 현수는 매일 술에 빠져 지낸다. 그에 따라 아내의 원망과 비난도 드높아 간다. 사랑할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삶의 통제자로 여겨지는 그의 아내 강은주. 아내에 대한 분노로 온 집안의 살림을 다 부수고 집을 뛰쳐나가려던 어느 날, 급하게 신발을 찾아 신던 그의 눈길이 무심코 어느 한 곳에 꽂혔다. 현관의 신발장 거울. 그 안에 한 얼굴이 있었다. 술에 취하고 분노로 헝클어진 험악한 표정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애비처럼 안 산다며? 살다 보니 넌 별 수 있던?"
직원인 승환은 팀장인 현수의 비정상적인 위기의 행동들을 보게 되자 그를 보살피며 챙겨주는 관계로 한 발 한 발 가까워진다. 보살핌의 손길은 초등학교 5학년인 팀장의 아들 서원에게까지 이어졌다. 현수는 말없이 함께해 주는 승환에게 점점 기대와 믿음을 갖게 된다. 어느 날인가는 자기의 어린 시절 상처를 털어놓기까지 한다.
집요한 오영제는 치밀한 추적 끝에 최현수가 저지른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자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밟으며 복수를 계획한다. 가장 잔인한 복수, 현수의 눈앞에서 그의 아들 서원을 고통스럽게 죽여 가는 복수를 꿈꾸며 계획한다. 영제는 현수를 점점 옥죄어 온다. 드디어 아무도 모르게 영제가 복수를 결심한 날이 왔다.
서원을 유괴, 납치해서 호수 한가운데 한솔등의 소나무에 묶어 두고 점점 댐의 수위를 높여가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아버지 현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현수와 은주, 서원 일가족 모두의 목숨을 딸을 죽인 대가로 받겠다고 나섰다.
먼저 걸림돌로 여겨지는 승환을 마취, 납치해 지하실에 감금해 놓고 현수의 아내 은주를 살해했다. 현수에게도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여 육체적으로 거의 무기력한 상태에 빠뜨린다. 스테인리스 창틀과 강화 유리로 눈두덩을 찍고 코를 박살내고 입술을 짓이기고 이빨을 부러뜨리고 몽치로 손목을 내리쳐 부수는 행위들을 작가는 포악하고도 난폭한 힘의 향연이라고 묘사했다. 죽음 직전에 내몰린 현수에게 마취제를 주사하여 시스템 통제실로 데려왔다. 서원의 가슴팍까지 물이 차올라 있는 모습을 CCTV를 통해 현수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영제가 묶여 있는 현수에게 말한다.
"곧 재미난 쇼를 보게 될 거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순간 눈이 뒤집힌 현수는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 끌어올린 지혜와 허물어 내리는 육체의 남은 힘을 총동원하여 묶여 있는 회전의자 째 영제의 가슴팍을 향해 돌진한다. 영제를 때려눕히고 댐의 수문을 열기 위해 다시 한번 목숨을 건다. 이미 치밀한 영제의 사전 방해 공작이 행해져 있었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안요원으로 가장하여 사택으로 침입한 괴한들에 의해 정신을 잃고 지하실에 납치되어 있었던 승환이 눈을 떴다. 팀장과 서원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묶인 끈을 풀고 지하실을 탈출하여 서원이 있을 만한 곳을 추측해 내었다. 수문을 여는 경우 순식간에 저수위가 되고 수문을 닫으면 몇 시간 내에 수면 5미터 아래로 잠기는 세령 마을 뒷동산 한솔등. 그곳에는 CCTV 카메라와 탐조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이다. 한솔등을 향해 고무보트를 끌고 캄캄하고 차가운 호수 속을 헤엄쳤다.
입이 비닐 테이프로 막히고 몸은 나무 뭉치에 묶여 있는 서원의 목 아래에까지 물이 차 있었다. 어둠과 차가운 물과 바닥을 드러내는 체력. 승환은 안간힘을 다하여 서원을 구해내어 안전한 축사로 향했다. 순간 댐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땅을 뒤흔드는 요동이 있었다. 추위와 두려움에 떠는 서원을 축사에 내려놓고 아버지를 찾아오겠다고 간절하게 다독인 후 승환은 다시 수동 조절 장치가 있는 옥상으로 내달렸다. 만약 현수가 있다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어둠 속에서 폭발하듯 솟구치는 수십 미터 짜리 물기둥이 보였다. 댐 아래 모든 세상은 물에 덮여 버렸다. 관리단, 저지대 마을, 상가, 거리의 가로등 ᆢ.
현수를 찾아낸 승환은 서원의 안전을 알려 주었다. 핸드폰 전화 통화로 서원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현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날이 밝자 세간 모든 매스컴의 주요 인물로 떠오른 현수. 영제와 세령, 아내와 댐 밑 마을 주민 모두를 죽인 살인범의 죄목으로 감옥에서 사형수의 삶을 살게 되었다.
친척집을 떠돌다 찬밥 신세가 된 서원. 어느 날 서원의 전화 한 통으로 승환은 바로 달려와 어린 서원을 거둔다. 미혼인 자기 대신 둘째 형의 양자로 입적시켜 학교 생활을 돕지만 몰래 잠적한 영제의 끈질긴 방해 공작으로 그 어디든 안전하게 정착할 수 없었다. 서원이 뿌리내리는 곳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실린 선데이 주간지를 뿌려놓는 것이다. 승환과 서원은 주로 해안 마을을 떠돌며 잠수부 생활로 생계를 이어간다.
영제의 목표는 현수의 사형 집행일에 그 아들 서원을 함께 죽이는 일이다. 유령 인간으로 살며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는 영제. 현수의 사형 집행일을 알아내기 위해 교도소 봉사활동을 자청하기도 한다. 감옥에서 영제의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현수는 불현듯 깨달았다. 영제가 노리고 있는 일을.
감옥에 있는 현수에게 7년간 끊이지 않고 아들 서원의 소식과 사진을 보내주는 승환. 현수는 그에게 첫 면회를 요청해서 서원이 이 기나긴 밤, 7년의 밤을 끝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자신을 죽이고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 괴물이 된 자신의 삶을 되풀이하지 말도록 도와주기를 청했다.
영제의 딸, 세령의 장례식날 승환에게서 외손녀의 머리핀을 전해 받은 세령의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연락처를 주고 갔다. 그 연락처를 통해 승환은 프랑스에 있는 영제의 아내, 하영에게 이 사건을 기록한 소설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 딸과 자신과 남편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딸에 대한 죄책감과 남편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다시는 이 사건에 연루되고 싶지 않다고 강한 거부감을 느끼던 하영은 소년을 떠올렸다. 세상의 손에 살해당하기 직전인 그 소년, 서원이 자유롭게 되기를 희망하여 하영은 자신과 영제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편지로 적어 보낸다. 나이도, 처해 있는 모습도 딸과 똑같은 소년에 대한 연민과 관용으로 그에게 진실을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오늘 아침, 현수의 아들, 서원은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ㅡ 어제 오후 훼방꾼이 처리됐다.ㅡ
아저씨가 사라진 건 어제 오후였고 아버지 시체를 인수할 날짜는 내일 아침이다. 이제 열아홉 살이 된 서원. 그는 잡혀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영제를 향해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면도날과 레코드 시계와 유서와 수중 랜턴을 갖추고 등대로 향했다. 등대에는 최근에 사람이 묵은 흔적이 있었다. 각본대로 등대의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려는 행동을 취한 순간 뒷덜미를 잡히고 뒷목의 혈을 맞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니 팔과 발목이 묶인 채 영제 앞에 앉혀 있었다. 영제가 말했다.
"너는 내일 아침 시신을 인수해서 화장한 뒤 네 아저씨랑 같이 세령으로 갈 거야."
영제는 마취약에 취해 정신을 잃은 승환도 데려다 놓았다.
서원은 영제를 향해 한껏 비아냥거리는 대화를 시도한다. 영제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건드렸다. 그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자백을 받아내어 레코더 시계에 남겼다. 그리고 하영이 편지에서 알려준 방법을 썼다. 하영이 승환에게 보낸 편지 내용들을 읊었다.
홀연히 잠적해 버린 아내, 하영의 이야기에 이성을 잃어버린 영제는 소음기를 단 권총을 꺼내 들고 날뛰었다. 하영이 서원에게 써먹으라고 가르쳐준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건 오영제. 하영이 그 전화를 받자 영제는 광적인 흥분에 휩싸여 버린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묶인 몸을 푸는 데 성공한 승환과 몸이 자유로워진 서원은 영제의 총을 빼앗았고 승환이 연락해 두었던 형사 두 사람이 총을 겨누며 들어섰다. 영제는 체포되었다. 서원과 승환은 현수의 시체를 인수하러 출발했다.
서원은 관 뚜껑에 쓰인 아버지의 수인 번호를 지우고 묘비명을 썼다.
ㅡI believe in the church of baseball. ㅡ
승환의 봉고차를 타고 교도소를 빠져나오는 길. 소식을 듣고 몰려든 취재진이 길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다. 7년 전 그때가 밤이 시작하는 시간이라면 지금은 밤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서원은 차에서 내렸다. 세상이 자신과 아버지를 놓아주기를 희망했다. 포수 마스크를 쓰기 직전 어딘가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반듯하게 잡고 취재진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고 길었던 밤이 빛의 바다로 침몰해 갔다.
책 제목이 말하는 대로 '7년의 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제의 삶은 잔인하고 차가웠으며 현수의 삶은 힘겹고 어지러웠다. 승환의 삶은 차분하고 너그러웠으며 서원의 삶은 무겁고 애처로웠다. 그리고 하영의 삶은 슬프고 가련했다.
상처 입은 자들과의 잘못된 인연에 얽혀 고통받는 사람들. 고통을 주고받기에 급급할 뿐 사랑을 이루어 가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인간들의 적나라한 모습.
작가 정유정은 다시 최신 신간 <완전한 행복>을 펴냈다고 한다. 그 책의 주제도 이 책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 책임이 있으며 무서운 사람들이 숨어서 우리를 가스 라이팅하고 착취하고 조종하는 것이 두렵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극복할 것을 제시한다. 내가 인간들 사이에서 특별하게 행동해도 되고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아기 때 수치심은 주지 않고 적절한 좌절감을 주는 양육자의 건강한 육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자기 성찰 없이 반복되는 뒤틀린 대물림이 주는 폐해와 맞서 그것을 끊어내는 힘.
이 책에서는 승환의 묵묵한 희생과 헌신이 그 역할을 한다. 자기를 똑바로 본다. 그때에 이웃인 옆사람도 보인다. 건강한 자기애와 자존감으로 버릴 것은 버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보듬어 안는 삶, 사랑의 삶을 살아낸다.
그 사랑 안에서 현수가 살아나고 서원이 살아나며 하영이 살아난다. 화려하게 빛나는 삶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삶이다. 건강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는 아름다운 삶이다.
<7년의 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소설이 너무 완벽하여 영화를 따로 보지는 않았다.
정유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싶다.
202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