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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09. 2021

 원님 덕에 분 나팔

 "머리카락이 굵어지고 풍성해졌네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들르는 동네 단골 미장원의 젊은 원장님이 말했다. 하이 소프라노 톤의 경쾌한 음이 그분 목소리의 특징이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런 것 같죠? 친구들도 그래 보인다고 해요."

 감고 나서 다 말린 머리카락을 손가락 빗으로 쓰윽 쓸어 넘겨보면 손끝에 와닿는 감촉이 제법 튼실하다.

 원장님 설명이 이어진다.

 "머리카락은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하면 숱이 적어지고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굵기가 가늘어지고 수분 섭취가 부족하면 윤기가 없이 푸스스해져요."


 아빠의 발병이 확인된 순간부터 아들이 쉬지 않고 강조해 온 것이 질 좋은 단백질 섭취였다. 그것도 매 끼니마다 빠뜨리지 않고 꼭 챙겨야 된다는 지론이었다.

 나이 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육류 섭취에 점점 소홀해졌다. 생선을 자주 준비하고 달걀도 애용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평상시 우리 집 식탁은 육류 단백질이 부족한 편이었다며 스테이크용 쇠고기를 비롯하여 육류 먹거리들을 주문 배달시키면서 매번 집에 육류 먹거리가 있는지를 물어 확인다. 어떤 때는 냉장고 문을 열어 직접 확인해 다. 평소 말을 아끼는 편인 아들이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정신 바짝 차려 매 끼니마다 육류 중심의 단백질 반찬 준비에 집중했다. 식탁이 조금 허술해 보인다 싶으면 아들의 당부를 생각하고 또 긴장의 끈을 바투어 당겼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시에는 더더욱 그랬다. 약물과 치료의 부작용으로 힘들어하고 바짝 긴장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며 식단 관리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호중구 수치가 내려가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일시 중단해야 했던 5일간이 그 정점이었다.


 식도암 환우 가족 카톡방에 소개된 닭발 곰탕의 효능을 보고 아들이 권해온 대로 닭발 곰탕도 동원하였다. 석 달 동안 18 키로의 닭발을 손질했다. 친지와 친구들이 보내온 바닷장어를 비롯하여 전복,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가자미, 민어 등등 단백질 식자재들의 공급이 계속 이어졌다. 삼시 세 끼, 미처 단백질 먹거리가 준비되지 못한 식탁에는 찐 달걀이 빈자리를 메꾸기도 했다.


 단백질, 단백질~~!!

 단백질 중심의 식단에 정신을 쏟다 보니 솥뚜껑 운전수, 무수리 역할인 나에게도 덩달아 그 혜택이 오게 된 모양이다. 평소 가느다란 편에 속했던 내 머리카락이 탄력을 갖게 되다니, 그것도 이 나이에ᆢ.


 원님 덕에 나팔 분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자연 떡이나 빵이 줄어들고 고단백.

 저탄수화물의 식탁이 되었다.


 어제는 두 달마다 한 번씩 처방받는 고지혈약을 받기 위해 동네 가정의학과 병원을 방문했다.

 콜레스테롤이 많이 높은 수치는 아니었지만 한동안 지켜보시던 대학병원 내분비의학과 교수님은 약을 먹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혈관 보약 먹는다, 생각하고 복용합시다 ."

  5년 전의 일이다. 하루 한 알, 가장 적은 용량인 5 밀리그램 알약을 매일 한 알씩 복용해 왔다.


 그런데 오늘 의사 선생님은 혈액검사 수치가 이 정도면 고지혈약을 끊어도 되겠다고 하신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반가운 말씀^^.  

 강추하는 5만 원짜리 비타민 D 주사도 한 대 덜렁 맞았다.

 발걸음도 가볍게 병원문을 나섰다.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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