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프렌드, 베프. 베프가 꼭 한 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여럿 되는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날 때 그 한 명의 친구는 그 순간 나의 베프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 분위기인 코로나 시국과 내 개인적인 남편의 투병으로 올 한해는 거의 완전히 친구들과 격리된 상태다. 3년 전 시작했던 함안 생활 이후 1년 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주욱 그런 편이다.
해마다 너댓 명이 함께 다니는 2박 3일의 봄 여행. 올해는 5월 무르익은 봄날의 안동 하회 마을 여행이었는데 나는 카톡방을 통해 친구들의 행복한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짬짬이 한두 명씩 잠깐 얼굴 보고 '사회적 거리두기, 네 명 인원 제한'에 맞추어 친구들이 일부러 우리 집 가까이까지 와서 점심을 함께하기도 한다.
요 며칠, 마음 편하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휴가가 생겼다. 바로 전화를 했다.
"우리 운동도 하고 밥도 먹고 추억도 만들자."
"OK"
"편한 신발 신고 속옷도 한 벌 챙겨 와."
"OK"
"열한 시, 서초역 5번 출구에서 만나자."
"OK"
오늘 우리 만남의 주제는 'Carpe Diem', 'Seize the day', '선물로 주어진 오늘 하루에 대한 감사'다.
7월 하순의 오전 열한시는 땡볕 속이다. 그래도 육십대 후반의 할매 둘은 씩씩하게 그 땡볕 아래에서 만났다.
대법원 정문을 지나 횡단보도를 한 번 건너면 서리풀 터널 위로 연결되는 데크길이 바로 나타난다. 완만하게 산보를 즐길 수 있는 경사로와 숨 가쁘게 체력을 키울 수 있는 계단, 두 가지 길이 있다. 우리는 넓고 편한 경사로를 택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숲이 있다니. 경사로에 들어서면 곧바로 온 시야가 초록으로 덮인다.
데크길 끝에는 확 트인 전망대가 있다. 123층 롯데 월드 타워를 비롯하여 예술의 전당, 남산 타워, 북한산 등 서울의 사방천지가 모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은 보너스다.
잠깐 땀을 식히다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서리풀 둘레길을 걷는다. 촉촉하니 젖어 있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오솔길과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키 큰 나무들에게 감사하며 새로운 모퉁이를 돌 때마다 탄성을 내뱉는다.
"와~ 좋다!"
"진짜 좋지?"
"응, 대단해."
"이 여린 풀잎 좀 봐."
"저 반짝이는 나뭇잎 좀 봐."
"앗, 향기로운 꽃내음이네."
입 다물 새 없이 종알거리며 숲길을 걷는다.
몽마르뜨 공원을 지나고 국립 중앙 도서관을 지나 우리 집으로 들어선다. 미리 가동해 둔 에어컨이 식혀 놓은 서늘한 공기가 한순간 피로를 싹 몰아간다. 옷은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친구는 샤워를 하고 내 집복으로 갈아입고 젖은 겉옷을 베란다에 내걸어 말린다.
냉장고 속에 준비된 적당한 먹거리들로 뚝딱뚝딱 가볍게 점심 집밥을 차려 먹는다. 과일도 먹고 차도 마시며 집밥의 편안함을 즐긴다. 떠오르는 대로 주고받는 대화들이 편하다. 사람도 이야기하고 사건도 이야기하고 생각도 이야기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이 화제가 된다. 베란다의 풍성한 화분들도 살펴본다.
베란다 바닥 신문지 위에 말리느라 펼쳐 놓은 마늘을 본 친구. 나의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마늘을 들고 들어와 둘이 마주앉아 한 바가지나 깠다.
또 다음 스케줄이 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전신 마사지 육십 분. 오늘은 할매들이 호강하는 날,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날이다. 나란히 누워 졸기도 하고 "아야, 아야!" 작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끝내기 아쉬운 육십 분을 즐긴다.
같은 스케쥴로 두 명과 이틀을 함께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었던 오늘 하루의 마무리.
우리 동네에서 빼먹으면 아쉬운 허밍웨이를 걸어 보기 위해 전철 4호선과 9호선이 환승되는 동작역까지 함께 걸었다. 걷기 좋아하는 친구여서 가능하다. 마사지로 가벼워진 듯한 다리 감각에 만족하면서 나뭇가지로 뒤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는 길, 걸어서 삼십 분 거리를 가뿐히 걷는다. 오늘 하루 만 보는 느끈히 넘었을 것이다.
개찰구를 통과하고서도 몇 번씩 뒤돌아보며 손 흔드는 친구. 멀어지는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 돌아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즐길 수 있었던 우리의 만남에 감사하며 혼자 다시 되돌아오는 허밍웨이. 넉넉하고 의미 있었던 하루에 감사한다.
안녕, 2021년 한여름 번개팅♡
202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