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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3. 2021

 함안으로 떠나던 날

 결혼 후 열세 번째 이사. 중학교 졸업 이후 50여 년을 떠나 살았던 남편의 고향으로 귀향을 한다. 40여 년 간의 서울 생활을 접고.

 7월 17일 오전 8시, 여름 해는 벌써 따갑게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일찌감치 도착한 이삿짐센터 직원 다섯 명은 5층 우리 집 베란다를 통해 사다리차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12시경 작업이 끝날 때까지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서 관리비랑 공과금 등을 정산하고 부동산에 들러 중개 수수료랑 잔금을 처리했다.


 큰돈이 오고 가는 중요한 거래가 무사히 잘 처리되어 감사했다. 경비 아저씨들이랑 청소 담당 아주머니들, 관리실 직원들과 모두 서로 덕담을 나누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동안 고마웠고 앞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바로 아래층에 사는 레베카 씨가 외출하는 길에 나를 보고 다가왔다. 뜨거운 포옹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일본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레베카 씨와는 5년 가까이 알고 지내오며 그중 2년은 성서 백주간 임원을 함께 맡았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잘 처리해 온 고마운 인연이다. 특히나 어린 우리 두 손주가 넓은 집에서 마음껏 뛰고 놀아도 층간 소음 문제로 단 한 번도 스트레스를 준 일이 없는 고마운 이웃이다. 성당 구역장 세실리아 씨도 찾아와 그 큰 눈에 눈물 뚝뚝 흘리며 아쉬운 작별 포옹을 했다.


  이삿짐센터 차도 짐을 다 싣고 남편과 나도 승용차로 아파트를 출발하려 할 즈음  우리와 이웃 세 짝꿍 부부였던 율리안나 씨랑 안나 씨가 시원한 물이랑 맛있는 샌드위치를 준비해 들고 찾아왔다. 어젯밤에도 만나 내일 점심값이라며 거금이 든 현금 봉투까지 건네준 안나 씨는 결국 눈물을 펑펑 쏟는다.


 "형님은 제게 샘물 같은 존재예요. 제가 제일 힘들 때 형님을 만났는데 그 샘물을 마시고 제가 살아났어요."


 성당 교우로, 이웃으로 알게 된 지 4~5년. 첫눈에 서로 좋아하게 되어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방배동 청권사까지 이어지는 왕복 2시간 거리의 서리풀 둘레길, 반포 허밍웨이를 걸어 현충원을 지나 사당동 남원 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남성 시장에서 장을 봐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매주 수요일 평일 미사 봉헌과 성서 백주간 나눔 시간에 맞추어 오손도손 온갖 이야기 나누며 성당으로 향하던 서래마을 골목길.


 함께했던 추억들이 지나간 시간 속에 풍성하게 수놓아져 있다. 이런 것들이 지금 이 시간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할 줄이야ᆢ. 갖고 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형님 기억하며 잘 간직할게요."


 옆에서 지켜보던 율리안나 씨가 말했다.


 "내, 안나 울 줄 알았다."


 율리안나 씨도 내가 10년 전 목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와서 낯선 곳에서 새 출발 할 때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여고 후배이다.


  함안으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인터넷 중개로 전세 계약을 맺은 5월 31일부터 이삿날인 오늘, 7월 17일까지 두 가지 일들이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지금 전세 살고 있는 집, 전세 놓아둔 우리 집, 함안에 전세 구한 집, 이 세 집들의 계약 처리 문제와 이사에 필요한 갖가지 준비들을 하는 일이 있었다. 또 한 가지 일은 한동안 못 보게 될 사람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일이었다.


  30년 가까이 따뜻한 인연을 맺어온 발산동 단독주택 시절의 세 형님들. 세 명이나 이미 세상을 떠난 발산동 성당 주부 교사회의 7명 교우들. 1986년 세례 받은 직후부터 공항동 성당의 반장, 총무로 만나 여러 인생의 파도를 넘어오면서 지금까지 서로 지켜봐 준 소피아 씨. 30년 지기 이웃사촌 아네스 씨.


 다른 사람 주지 말고 꼭 형님 먹으라며 이 삼복더위에 전복까지 갖춰 넣은 삼계탕을 끓여 온 테클라 씨, 베레나 씨. 1979년 서울로 올라온 이후부터 계속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만나 온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7명의 모임 효우회 친구들. 거주지역 중심으로 모인 여고 동창 모임 칠공회 친구들.


 2002년 여름,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부부댄스 강좌 인연으로 만난 다섯 쌍의 여고동창 부부 모임, 맑음회의 열 명 부부. 매주 한 번씩 만나 3년 동안 121주에 걸쳐 성경을 통독하고 묵상 나눔을 하는 성서백주간 인연으로 만난 여러 팀의 교우 반원들과 봉사자들. 3년 간 함께해 온 새 돌보미 봉사자들. 지금 현재까지 성서 통독 1년 반을 진행해 온 우리 블랙 마돈나 반원들. 서로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나누며 한 식구가 되어 버린 방배 4동 성당 16구역 4반 가족들.


 아이들의 학창 시절 학부모의 인연으로 만나 긴 세월 서로의 역사를 나누어 온 어머니들. 2017년 강남 도서관 자서전 쓰기 강좌 인연으로 만난 일꼬스모 회원들. 그냥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아 믿고 따르며 행복해했던 개개인의 인연들.


 결혼으로 독립해 가정을 이룬 세 아이들과 사돈댁들. 그분들과 저녁 식사를 나눈 목동 산들해, 서초동 울돌목, 서래마을 우참판에서의 시간들.


 서울로 이사 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쭈욱 보호자 역할을 맡아 많이도 보살펴 주었던 큰언니와 긴 세월 미운 정 고운 정으로 함께해 온 내 여동생. 바쁜 가운데 수박 들고 멀리서 찾아온 친정 조카. 식탁 위에 슬며시 올려 두고 간  카드 안에는 말로 하면 눈물 날 것 같아 하고 싶은 말을 카드에 다고 적혀 있었다. 나를 눈물 나게 하는 카드였다.


  시간을 쪼개 많은 만남들을 가지면서 다양한 석별의 정들을 나누었다. 2018년 6월, 7월은 정말 마음 아픈 눈물을 많이 흘린 시간들이다. 정작 이별을 이야기하는 만남의 시간과 장소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만나러 가는 길에 혼자 울고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홀로 눈물 흘리면서 슬픔에 함몰되어 버릴 것 같은 두려움까지 생겼다. 단순히 공간적인 거리감에 불과한데도 헤어짐이 왜 이리 힘들게 가슴을 후벼오는지ᆢ.


  그 와중에서 누군가가 건네준 한마디 말을 붙들고 정신을 차렸다.


 "자식 농사 잘 짓고 시골 농사 지으러 가시는군요."


 '그래, 그렇구나. 그런 거지.'


 겨우 마음을 추슬러 가며 특히 마음 약한 남편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도 몇 번은 어쩔 수 없었지만ᆢ.


  알게 모르게 이루어진 숱한 만남과 그 이후 이어진 행복한 사귐의 시간 후에 이렇게 겪게 되는 이별은 참 힘들다. 몸과 마음의 힘을 다 앗아가는 것 같다. 내 옆의 사람들이 주는 힘이 이리도 크고 소중했구나, 평소에 좀 더 살뜰히 챙기지 못했던 무심함도 후회되었다.


 ㅡ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ㅡ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이 이렇게 와닿을 수가 ᆢ.


  세 아이들과 아이들이 이룬 가족들과의 이별이 가장 힘들었지만 이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귀한 것이 무엇이고 지켜야 할 인연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는 값진 경험도 하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 가셔서 슬프다는 네 명의 손주들. 어디 내놓아도 걱정되지 않는 두 사위와 예쁜 며느리. 착한 큰애와 똘똘한 둘째와 의젓한 막내. 가족의 소중함과 그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나의 처신. 그나마 세 아이들 모두 결혼으로 잘 독립했고 우리가 멀리 떠나가도 바로 옆에 시댁과 처가 사돈댁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평소에는 1년에 대여섯 번 정도밖에 들르지 못했던 큰언니네 집도 한 달 새 세 번이나 방문했다. 골목 끝에 불편한 다리로 서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매번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일흔여덟 살 우리 큰언니. 강남 도서관에서 공동으로 발간해 준 자서전 속에 실린 내 글들을 읽고 또 읽는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 마음도 많이 바꾸었다고 한다. 언니도 글을 써 보라고 속지를 두툼히 넣은 파일과 갖가지 필기도구로 가득 채운 필통도 마련해 주었다. 따뜻한 머플러와 예쁜 지갑과 페트병에 넣은 여러 가지 곡식들과 약간의 용돈도 언니를 위해 챙겼다. 언니가 말했다.


 "내가 딸이 없으니까 니가 이렇게 신경을 쓰제?"


 그리고 김서방을 위해 잘한 결정이라며 우리의 귀향을 격려해 주었다. 아끼고 소중히 보관해 오던 박경리 작  <토지> 전집도 책을 좋아하고 잠이 없는 언니에게 맡겼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며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던 여동생과도 이별 식사를 했다.


 "언니야, 내 한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울먹이는 내 여동생. 원당의 전원 식당에서 십전대보 삼계탕을 먹었다.

  이사 바로 전날에는 이런 전화를 해 왔다.


 "언니가 시골 내려간다 해서 많이 슬펐는데 2년 후에 다시 온다 해서 희망이 생겼다. 2년 동안 열심히 잘 살고 있을게~~."


  남편들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일요일에 귀한 시간을 낸 두 딸들과 셋이서 함께했던 서래마을 파리크로와상에서의 점심.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파이팅을 약속했다. 아들 부부와 점심을 같이 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볼라레. 우리를 찾아 먼 길 오기보다 누나네 두 가족들이랑 세 집이 잘 지내라는 부탁을 했다.


 지난 6월 19일, 아들 생일 모임 이후 7월 17일 우리가 서울을 출발하기까지 12명의 모든 가족들이 세 번이나 만났다. 이사 바로 전날 밤에는 아들 부부가 용돈 봉투까지 챙겨 들고 또 찾아왔다. 지난 일요일에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였고 하루 종일 힘든 근무를 마치고 지쳤을 시간인데도 또 찾아온 것이다.


 기도로 기억해야 할 수많은 인연들을 남겨두고 떠나온 서울. 세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느라 옥닥복닥 살아온 40년 서울생활. 자기중심적인 집착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 아프게 경험했다.


 지금의 나이가 많은 것을 내려놓는 것과 맞물려 자꾸 슬퍼질 때도 있지만 잠깐 또 다른 면으로 정신을 차리면 주어진 모든 것이 축복이다. 감사와 순종으로 주어진 이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변함없이 지켜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또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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