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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4. 2021

 함안을 떠나던 날

 2020년 6월 16일.

 1년 11개월이라는 또 한 토막의 시간들이 과거로 녹아들어 간 이곳 함안.

 사람, 시설, 자연들이 모두 좋았다. 단 한 가지, 아이들과 친구들, 지인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아쉬움만 뺀다면 노후를 이곳에서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주로 남편의 친인척과 이웃, 성당 교우들로 이루어졌다.

  남편의 친척분들이 근처에 꽤 여러 사신. 가장 가까이 지낸 시누 부부와 사촌 동생 부부들을 비롯하여 사촌 누나, 육촌 형님, 외사촌 형님들까지.

 신혼 초, 명절 제사 때나 뵙던 분들도 계시고 처음 뵙는 분도 계셨다. 유명한 감자탕 집을 운영하는 조카 부부의 식당에서 여러 번 만나 식사를 같이 했다.

 내려간 첫해에는 우리가 당번을 맡아 시제 음식도 준비해보고 칭찬도 들었다. 시골집에서 가까운 곳에 부모님의 묘소도 자주 살펴볼 수 있었다.

 큰 농사꾼인 사촌 동생 부부가 생산하는 농작물 판매에도 한몫했다. 질 좋고 가격 착한 농산물들을 서울 친구들이 기쁘게 구입 주었다.

 동서가 말했다.

 "형님, 처음에는 안 그래 보이더니 쭉쭉 완전 고속 도로시네요." 

 고추랑 콩 판매가 꽤 큰 규모로 이뤄지자 동서 부부의 얼굴이 나를 볼 때마다 절로 환한 함박꽃 웃음으로 어났다.


  9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함안 성당. 미사를 비롯한 당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한 명 두 명 교우들과 인연을 맺으며 그들과 나의 삶이 조금씩 서로 엮이기 시작했다. 2째 되는 해에는 결국 반장직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주선하고 연락을 취하고 반장 교육과 모임에 참석하게 되니 아는 얼굴들, 좋아하는 얼굴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보다 5살 연상이신 옆집 형님. 교회를 다니다가 쉬고 계신 중이었다. 나의 권유에 선뜻 성당으로 따라나서셨다. 세례를 받기 전, 예비자 교리를 공부할 때부터  출석 개근은 물론이고 걸어서 10분 거리인 성당으로 혼자 매일 미사를 다니시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최우수 신자가 되셨다. 몇 년 전 심장 수술을 받으셨다는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정기 검진을 다니시는데 교리 공부 날짜와 겹쳐졌다고 걱정하시더니 첫새벽 버스로 상경한 남부 터미널에서  택시를 이용하시는 등 거의 첩보원 활약 수준으로 거동하셔서 그날 저녁 교리 공부 시간에 딱 맞춰 참석하셨다. 그것도 70이 넘으신 분이 혼자서. 형님의 그 열정과 뛰어난 능력에 깜짝 놀랐다.

 41남 중 21남이 해외에 거주한다. 호주, 미국, 폴란드. 세 분 자녀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인사를 시켜 주셔서 얼굴들을 다 알게 되었다. 폴란드 의사와 결혼하여 UN에서 일을 하는 40대 후반 장녀분은 어머니 집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도 아침마다 20킬로 조깅을 하고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돌아온다고 했다. 딸이 돌아간 후 어머니 서랍 속에 천만 원 현금을 넣어 두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하셨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스시집 1,2호를 운영한다는 아들은 정말 표정이 살아 있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1시간씩 어머니랑 국제통화를 한다. 주일미사 후 형님이 만사 제치고 항상 서둘러 집으로 향하시는 이유다. 친구들과 여름 팥빙수 사 먹으라고 아들이 백만 원을 송금해 주었다고 자랑도 하신다. 그 손주가 올해 초 학업 우수자로 대통령상을 받았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인이 들어 있는 상장을 사진 찍어 보내 주셨다. 당신이 매일 바치는 묵주 기도 덕분이라고 기뻐하셨다. 

 해마다 한 명씩은 성당으로 인도하겠다고 각오를 밝히시더니 과연 벌써 두 명을 입교시켰다고 한다 . 

  '동생, 동생'하고 부르며 나를 많이 아껴 주셨다. 짬짬이 쑥을 캐어서 쑥떡을 나누고 시골집 텃밭 야채들을 배달해 주는 나에게 부지런하다며 '살고지비'라고 별명 붙여 주셨는데 형님은 완전 '원조 살고지비'시다. 하루가 멀다하고 맛깔진 반찬들을 예쁜 그릇에 깔끔하게 담아 우리집 초인종을 누르셨다.

 올봄에는 아파트 정원 매화나무에 예쁘게 활짝  매화꽃 사진을 보내오셨다. 동글동글 크고 오동통한 매실 150여 따셨다고 . 한  한 잎 스프레이 뿌려가며 벌레들을 닦아 대신 결실이다. 남편분과 함께 그 나무를 심은 지 어느덧 10년 세월이 다 돼 간다고 하셨다.

 공무원으로  퇴직하신 남편분께서는 우리가 이사 가기 바로 전 해에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형님 혼자 사시면서 석 대의 대형 냉장고를 쓰신다. 창원에 사는 두 딸들이 주말마다 와서 어머니를 모시고 공중탕을 다녀온다. 집으로 갈 때는 바리바리 양손에 밑반찬 통들을 가득 들고들 간다. 미국 텍사스 주까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항공 운임료를 물어 가며 노랗게 익은 콩잎 김치와 생도라지 다듬어 말려 빻은 도라지 가루를 보내신다.

 우리가 서울로 향하는 날, 여름날이라 간단한 충무 김밥을 준비하시겠다는 걸 겨우 겨우 말려서 못하시게 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이른 아침 제일 먼저 들른 이는 고려동에서 넓은 농원과 천 평 연밭과 카페를 운영하는 미카엘라 씨다. 직접 만든 유기농 딸기잼 병을 전하며 눈이 촉촉해진다.

 "선생님 생각하면 눈물 나요."

 우리 시골집 텃밭에 있는 취나물, 밭미나리, 더덕 등의 모종을 농원 텃밭 한쪽에다 옮겨 심었는데  '춘곡 텃밭'이라고 팻말 써 붙였다고 했다.

 여항에서 팔백 평 밭농사 지으시는 외사촌 형님 부부께서 깔끔하게 손질하여 말린 메리골드 금잔화 꽃차 한 봉투와 귀한 쥐눈이 콩 봉투를 들고 오셨다. 글라라 씨가 금방 짜서 따끈따끈한 들기름을 세 병이나 들고 오고 여기 와서 처음 알게 된 국민학교 동창 아네스가 아이스 백에 담은 점심 요기거리와 찹쌀과 현미, 산야초 발효 효소 등이 담긴 페트병을 들고 왔다. 함안 성당 사목회장님 부인으로 열심히 활약하고 있다. 사업하는 남편 뒷바라지 일도 엄청나다.

 유기농 밀가루, 치자 국수, 함안 특산품인 파프리카 ᆢ. 함안의 사랑을 담은 먹거리들이 한 보따리 쌓였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서울로의 이사가 좀 더 구체화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큰애네가 분양받은 가재울 새 아파트가 4월 말부터 입주가 가능한데 엄마 아빠를 위해 비워 놓을 테니 일단 그곳으로 이사를 오라는 것이다. 시골집도 정리했고 함안 전세 아파트도 2계약 기간이 끝나가 있었다. 


 모든 일이 만하고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마산에서 오신 이삿짐센터의 사장님 부부를 포함한 일꾼들도 낯선 서울의 한여름 더위 속에서  열심히 짐 부리는 일을 잘해 주셨다. 

 재개발 지역인 서대문구 가재울은 아파트들로 뒤덮여 있었고 넓게 새로 닦인 도로와 깔끔한 상점들로 거리는 신도시 느낌을 주었다.

 아파트 단지 안은 눈길 끄는 멋진 무들도 많고 구석구석 최신식 조명과 조경과 쉼터들을 갖춘 정원들이 훌륭하다. 집이라기보다는 호텔로 여겨지는 가재울 래미안 신축 아파트. 수납도 충분하고 건축자재들도 매끈하다.


 이곳 열여섯 번째 집에서 또 한 번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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