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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Aug 12. 2021

  그 해 여름

  한 때 홀랑 빠져 열광했던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들. 거의 백만 원에 달하는 그분의 저서를 미국 LA에 계시는 목사님 사모님으로부터 어렵게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컴맹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아직 컴퓨터와 아무 인연 없이 사는 나인지라 '환갑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남편에게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책꽂이에 거창하게 세트별로 꽂아놓고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한동안 밑줄 쳐 가며 행복하게 읽었다.

 책을 많이 정리하는 과정에서 몇 권은 개신교 신자인 여동생에게로 가고 애지중지 끼고 있던 나머지는 함안을 떠나올 때 그곳 작은 교회에 기증하고 왔다.


 개신교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 바로 완전 매료되었지만 이미 그분은 고인이 되신 후였다. 개신교 전체 교단은 그분을 '이단'이라고 판결 지어 놓고 있었다. 대형교회 목사님들을 '양복 입은 무당들'이라고 대놓고 수위 높은 발언으로 계속 공격해대시니ᆢ.


 그러나 나에게는 나탄 선지자 같은 고마운 분이셨다.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 받은 지 30년을 넘었지만 기독교 교리에 거의 소경이었던 내 신앙의 세계를 한 줄기 강렬한 불빛으로 밝혀주신 분이다.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미국에 한 달 정도 머물렀을 때 그곳에 살고 있는 조카며느리에게 부탁하여 그분이 사역하셨던 남가주 서머나 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그때의 쓸쓸했던 기분, 이미 그분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의 남은 가족들도 그곳을 떠났다고 했다. 수백 편의 설교 영상 화면을 통해 익히 보았던 그 교회의 강단만이 생소하면서도 또한 익숙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LA의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작고 조용한 교회의 붉은 벽돌담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왔다.


  요한복음과 로마서를 가장 사랑하신다는 그분의 로마서 강해에는 수많은 책과 영화와 음악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 이병헌과 수애가 출연했던 2006년도 상영작  '그 해 여름' 이 있었다. 목사님이 읽어내어 전해주신 메시지가 너무 감명 깊어 바로 TV로 찾아보았다.


  때는 1969년. 서울 부잣집 아들 윤석영은 여름 방학을 맞아 사업 승계 교육을 시키려는 아버지를 피해 수내리라는 마을로 농촌 봉사활동을 간다. 그곳에서 월북하신 아버지가 남겨 놓으신 작은 동네 도서관을 지키는 외로운 아가씨 서정인을 만난다.


 첫눈에 정인에게 끌린 석영은 계속해서 정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정인의 마음도 석영을 향해 점차 흔들려 간다. 반공 이념이 서슬 퍼랬던 시절이라 동네 사람들은 월북한 아버지를 둔 정인을 경원시하지만 정인은 외롭고 힘든 환경에서도 굳세게 그리고 순수하고 맑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느날 원인 불명의 화재로 도서관이 크게 소실되었다. 거처할 곳을 잃은 정인의 처지는 더욱 곤구해진다.


 농활이 끝나던 날, 석영의 끈질긴 권유로 정인도 작은 가방 하나에 자기의 모든 삶을 정리해서 담아 들고 같이 서울로 향한다. 석영의 대학 교정에 먼저 들러 석영이 잠깐 자신의 가방을 정인에게 맡기고 다른 볼일을 보러 간 사이, 정인은 교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데모대의 격랑에 휩싸여 함께 쫓기다가 데모 진압 경찰에게 체포된다.


 소지품을 수색당하는 과정에서 석영이 맡기고 간 가방에서 발견된 불온서적으로 인해 정인은 영락없이 데모 가담자로 몰려 수감된다. 석영은 거의 인연을 끊고 지내던 아버지께 할 수 없이 도움을 청한다. 감옥으로 정인을 면회 온 아버지는 책임지고 나오게 해 줄 테니 대신 자기 아들의 앞길을 막지 말고 떠나가 달라고 통보한다.


 출옥하는 날, 아무것도 모르는 석영은 설레는 마음으로 정인을 마중 나온다. 환한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고 간절한 눈빛으로 앞으로 다시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며 정인의 손을 꼬옥 잡는다. 가슴이 미어지는 정인은 더더욱 간절한 눈빛으로 그러겠노라고 머리를 끄덕인다. 잠시 후 정인은 머리가 아프다고 힘없이 속삭인다. 놀란 석영이 부랴부랴 약국으로 달려간 사이 정인은 가슴 아픈 눈길을 돌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석영의 곁을 떠나 잠적한다.


 애타게 정인을 찾던 석영은 교수가 되어 독신으로 외로이 늙어가고 정인은 자기가 머무는 곳마다 석영과의 추억이 깃든 편백 나뭇잎 엽서를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것이 어떤 인연으로든 석영의 손에 들어가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살아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몇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둘은 결국 해후하지 못한 채 정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아련하고 애틋한 한 토막 사랑 이야기다.

내가 좋아하는 연애소설, 최인호의 <사랑의 기쁨>처럼.


 목사님 말씀은 정인이 석영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가는 곳마다 편백 나뭇잎 엽서로 자신의 변치 않는 사랑을 알리는 것처럼 아버지 하느님도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우리 곁에서 변함없는 당신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계신다는 내용이었다.


 내 추억 속에 가장 진하게 남아 있는 '그 해 여름'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여름방학 거제도 수련회다. 고등학교, 대학교. 7년에 걸쳐 흥사단 소속 아카데미 이념 서클 활동을 했다. 해마다 방학 때면 4박 5일 수련회를 갔다. 여름에는 각 지역별로, 겨울에는 전국 연합으로.


 그 해 여름 수련회 장소는 거제도 구조라였다. 현지 초등학교를 빌려서 운동장에 큰 양은솥을 걸어놓고 장작불을  때 가며 세 끼 식사를 직접 만들 먹었다. 아침 보건체조를 시작으로 주제 강연 발표, 분반 토론 발표, 체육 대회, 희락회, 주민 봉사 활동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참석 인원은 부산에 소재하는 학교의 고등학생, 대학생, 소수의 어른 흥사단원 등 30여 명 정도.


 틈틈이 모여 여러 날에 걸친 사전 준비를 다 끝내고 드디어 구조라로 향하는 날이 되었다. 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배가 출발하는 자갈치 선착장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대학생 선배들이 며칠 동안 구입해서 준비한 쌀이랑 감자랑 된장이랑 야채, 과일 등 4박 5일 수련회 기간 동안 필요한 각종 먹거리와 식자재들도 속속 배달되었다. 자루자루 뭉쳐져 있는 크고 무거운 그 덩치들은 일찌감치 서둘러 여객선 아래쪽 화물칸에 차곡차곡 실어 놓았다.


 이제 우리들이 승선할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궂어지면서 파도가 거세지고 폭우가 쏟아졌다. 변덕스러운 여름 날씨에 여객선은 출항금지에 묶여 버렸다. 임원진들은 노심초사, 설왕설래 의논 끝에 사람들은 일단 버스로 출발하기로 했다. 급히 전세 버스를 알아보고 차를 대절하여 구조라로 향했다. 뱃길보다 훨씬 돌아가는 먼 육지길이라 통금 시간까지 달려도 목적지까지는 도착하지 못했다. 늦은 밤 시간, 버스가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거제도 남망산 공원. 다행히 그곳에는 비는 오지 않았지만 텐트도 없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흩어져 입은 옷 그대로 벤치에서 새우잠을 잤다. 은은한 달빛 아래 하얗고 도톰한 치자꽃의 매혹적인 향기가 대지 가득 자욱이 깔려 있던 여름밤. 사건도 사람도 아닌 그 냄새와 풍경이 지금도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튿날 아침, 다시 버스로 길을 나섰다. 드디어 하루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배들은 배가 도착할 시간을 기다려 선착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반가운 식자재들을 찾아 끙끙거리며 어깨에 짊어지고 양손에 나누어 들고들 돌아왔다.


 커다란 가마솥 앞, 그늘이라고는 없는 땡볕 아래에서 밥을 하고 된장국을 끓여서 팀 별로 들통에 담아 날라 식사를 했다. 숙소는 삐걱대는 마룻바닥인 초등학교 학급 교실. 일어나면 너나없이 운동장 수돗가로 나가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이미 햇볕이 가득한 운동장에서 '하낫 둘~~!!' 아침 체조로 하루를 열었다.


  초등학교 넓고 하얀 흙 운동장 위로 쏟아지던 한여름의 강렬한 햇빛. 그 속에서 팀별로 우승, 준우승을 다투며 열심히 뛰던 각종 운동경기들. 배구, 축구, 피구, 릴레이 달리기, 줄다리기. 참전한 선수들 못지않게 목청껏 응원하던 팀원들. 많이 웃었고 많이 뛰었다. 책걸상을 다 들어낸 마룻바닥에 앉아 흥사단 어른들, 단골로 초빙되는 안병욱, 김형석 교수님의 주제 강연을 듣고 분반 토론과 발표를 했다. 밤에는 어린아이들을 교육하는 어설픈 주민 봉사 활동도 했다. 참 소박하고 순진했던 시절이다.


 그때 우리는 주로 보호받는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고 프로그램을 끌고 가느라 동분서주하던 대학생 선배들의 땀방울들이 참으로 귀하게 보였다. 공동체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열정, 그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축복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했던 '그 해 여름'.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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