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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m Jul 07. 2024

심장박동이 주는 즐거움

반려견 ‘루이’를 키우면서

2022년 1월 13일. 내가 태어난 이후 항상 감소하기만 했던 우리 식구는 20년 만에 증가했다. 바로 반려견 루이였다. 루이는 현재 3세이며, 종은 실버푸들이다.

루이의 첫 만남

때는 코로나가 아직은 끝나지 않을 시기, 코로나와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분위기는 싱숭생숭했다. 가족 모두가 힘들고 우울했지만,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우리 아버지였다.


사람들과 같이 놀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던, 현재로 치면 사람한테서 에너지를 얻는 극E 성향인 아버지가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특히 치명적이었다. 또, 원래 5명이었던 가족 중 3명이 서울로 가게 되면서 바글바글하던 집에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 점이 컸다.


점점 아버지의 우울함이 심해지자, 아버지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어머니와 형은 이제 애 다 키웠는데 또 애기 키우는 건 싫다고 반대하셨고, 아버지와 누나는 외롭지 않고 심리적 안정이 든다는 이유로 찬성하였다. 그렇게 나의 선택으로 인해,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나의 찬성 이유는 위에 말했듯이 아버지의 안정을 위해서였다)

긴박했던 강아지 투표 과정 (이미 아버지가 강아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 있었어서 처음 루이를 데리러 왔을 때는 모르지만, 적응이 안 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처음 데리고 온 1달 동안은 불이 꺼지면 무서워해 옆에 이불을 깔고 돌아가면서 잠을 잘 정도였다. 그렇게 2년 동안 배변 훈련, ‘앉아’ 훈련, 목욕, 산책 등을 완료했고, 현재는 안정기에 접은 상태이다.

 데려온지 1달 되었을때 루이

이번에 시간이 나서 본가에 내려가게 되었다. 여전히 루이는 어리냥 부리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날 밤, 다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아버지는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 섞인 말을 우리(자식)들에게 하셨다. '너희들은 얘(루이)한테 감사해야 해. 얘 아니었으면 너희들한테 더 관심 가지고, 왜 전화 안 오는지, 열심히 살고 있는지 하루종일 관심을 가졌을 건데, 얘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네'.


맞는 말이다. 루이를 키우기 전 아버지는 우리에 대해 관심이 너무 많았고, 우리에 대한 걱정을 매일 하시던 분이었다. 하지만, 루이를 키운 뒤부터 루이에 신경 쓰느라 과했던 우리에 대한 관심이 적절하게 쏠리면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좋고. 아버지는 그 관심을 루이한테 쏟으면서 힐링을 하니깐 아버지 나름대로 좋고. 루이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고, 하루 몇 번이라도 관심받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버지한테 많은 관심을 받으니 루이 나름대로 좋고. 이른바 윈-윈 전략이 아니라 윈-윈-윈 전략이 된 기가 막힌 선순환 구조를 띄게 되었다.


최근 고성에 수국을 보러 갔을때 사진. 루이는 벌써 5kg이 나가고, 털 색깔이 은색으로 바뀌었다.

그저께 서울에 올라오기 전, 내가 루이 산책을 맡게 되었다. 아침부터 자고 있던 나를 닦달하여 산책을 가자고 조르더니, 결국 그 제안에 못 이겨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루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부터 이미 조금씩 흥분되어 '크레셴도(점점 세게)'처럼 로비 층에 도착하게 되면 무척 흥분하게 된다. 그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뒤에 도깨비가 쫓아오는 것처럼 쌩하고 뛰어나간다. 그렇게 웃으면서 산책을 하고, 나도 어느샌가 뛰고 싶어 루이랑 같이 달리기 시합도 하며, 집 앞 축구장에 가서 축구장도 한 바퀴 돌았다. 다 뛰고 나니 루이의 심장소리가 나의 목줄에 전달될 정도로 강력하게 뛰었다. 나의 손이 움직일 정도로 강하게 뛰었다. 그 순간, 나는 루이가 주는 기쁨에 대해 루이의 심장소리만큼 강하게 느낀 것이 있었다.


바로, "심장박동이 주는 기쁨"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은 동물들을 키워보았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햄스터나 물고기, 병아리 등 너무 많지도 않게, 또 너무 적지도 않게 동물을 키워보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동물들은 정감이 가지 않았다. 더 자세히는, 교감이 되지 않았다. 사실 초반에는 단지 호기심, '이 생명체는 무엇이지?'라는 것에 접근하였지만,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옮겨져 갔다. 그 동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동물들은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서서히 죽어갔었다.


하지만, 루이만은 달랐다. 루이와의 교감은 너무 잘 되어 있고, 얘도 어떤 '살아있다'라는 점을 느낌을 여러 번 느꼈던 것 같다. 항상 내가 키워왔던 동물(물고기, 병아리)과는 다른 점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는데, 이번 산책을 통해 그것이 "심장박동이 주는 기쁨"임을 내가 알게 되면서부터였던 것을 깨달았다.


루이의 심장박동은 더 끈끈하게 이어져준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추억을 심장박동만큼 카메라로 찍는다.


그런 기쁨을 알게 된 후부터 사람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특히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왜 더 키우는지 이해되게 되었다. 바로 그 심장박동을 느껴서이지 않을까? 그 박동을 한 번이라도 느낀 사람은 중독처럼 다시는 못 빠져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 중에 혹시라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으면 오늘 심장박동을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그 기쁨까지 생각하면서 느껴보면 더 뜻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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